LGㆍ삼성 가치 없는 비방전

LG전자와 삼성전자가 TV 기술을 놓고 치열한 비방전을 벌이고 있다. LG전자가 포문을 열고, 삼성전자가 맞받아쳤다. 하지만 두 기업이 서로를 향해 날선 비난을 쏟아낸 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중요한 건 이런 논쟁이 소비자들에게 무슨 의미를 주느냐다. 삼성과 LG는 “기업에는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시킬 의무가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전례를 살펴보면 영양가 없는 헤게모니 싸움에 그칠 공산이 크다. 더스쿠프(The SCOOP)가 LG와 삼성의 의미 없는 패권전쟁을 취재했다. 

LG전자와 삼성전자의 비방전 이면에는 헤게모니를 먼저 구축하려는 속내가 담겨 있다.[사진=연합뉴스]
LG전자와 삼성전자의 비방전 이면에는 헤게모니를 먼저 구축하려는 속내가 담겨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17일 여의도 LG트윈타워와 서초구에 있는 삼성전자 서울R&D캠퍼스에 이목이 쏠렸다. 오전엔 LG전자가, 오후엔 삼성전자가 각각 TV 기술설명회를 열었기 때문이었다. 명목상으론 TV 기술력을 설명하는 자리였지만 사실상 서로의 제품을 깎아내리는 ‘비방전’에 가까웠다. 서로의 제품을 비교 시연하며 상대 TV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은 물론, 서슴없이 상대 제품을 해체할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

비방전에 불을 지핀 건 LG전자다. 지난 6~11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IFA2019’에 참석한 LG전자는 삼성전자의 대표 제품 ‘QLED 8K TV’를 향해 “진짜 8K TV가 아니다”면서 날선 비난을 쏟아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LG전자는 OLED TV 광고를 통해서도 삼성전자 QLED TV를 노골적으로 깎아내렸다. 8K, OLED, QLED 논쟁, 대체 소비자와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해상도 논쟁 = 먼저 해상도부터 얘기해보자. 해상도는 쉽게 말해 TV화면이 얼마나 깨끗하고 선명한지를 따지는 것이다. 이는 한 화면이 얼마나 많은 화소로 이뤄져 있는지를 통해 가늠할 수 있는데, QLED 8K TV에 붙은 8K(K=1000)가 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8K는 가로 7680개, 세로 4320개 화소로 이뤄져 있다는 뜻이다. 이전까지 해상도가 가장 높은 TV는 흔히 UHD(Ultra High Definition)급이라고 부르는 4K(3840×2160) TV였다. 8K는 4K보다 화소 수가 4배 많다. 그만큼 TV화질에서도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의 QLED 8K TV는 화소수로 따지면 8K 해상도가 맞다. 그럼에도 LG전자가 “진짜 8K TV가 아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국제디스플레이계측위원회(ICDM)가 정한 선명도(CM) 기준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CM값이 50%를 넘어야 8K로 인정된다. 화소가 아무리 많아도 선명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QLED 8K TV의 CM값은 12%에 불과하다. LG전자의 주장대로라면 8K TV라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주장은 다르다. “CM값으로 TV 화질을 측정하는 건 지금은 쓰지 않는 과거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ICDM은 2016년 ‘CM은 최신 디스플레이에 적용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평가 방법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LG전자가 다시 맞받아쳤다. “새로운 평가 방법이 필요한 디스플레이라는 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구성의 화소를 갖는 TV를 말한다. 하지만 8K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LG전자가 옳은지, 삼성전자의 주장이 맞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당연히 답을 내리기도 어렵다. 

■자발광 논쟁 = 또다른 쟁점은 자발광自發光 여부다. 디스플레이가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느냐는 말인데, 이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꼽히는 OLED와 LCD 패널을 구분 짓는 가장 큰 척도다. LCD는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백라이트유닛(BLU)이 필수다. 문제는 BLU를 탑재하면 두꺼워지거나 형태(폴더블·롤러블 등)를 변형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화소별로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없어 명암비도 떨어진다.

LG전자의 OLED TV엔 말 그대로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 패널이 탑재된다. 반면, 삼성전자의 QLED TV는 퀀텀닷 필름을 입혀 성능을 끌어올리긴 했지만 기반은 LCD 패널이다. LG전자로선 한단계 앞선 기술로 평가 받는 OLED TV가 LCD를 기반으로 한 QLED TV와 동일 선상에서 비교되는 게 못마땅할 수 있다. 

특히 ‘QLED’라는 제품명 때문에 소비자가 혼동할 수 있다는 건 LG전자가 줄곧 지적해온 말이다. LG전자가 이번 기술설명회에서 QLED TV를 해체해 퀀텀닷 필름을 들어 보이며 “QD-LCD가 옳은 표현”이라고 재차 강조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의미 없는 논쟁 = 사실 LG전자와 삼성전자가 서로의 제품을 놓고 비방전을 펼친 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삼성전자는 2016년 이번 해상도 논쟁과 마찬가지로 LG전자의 4K TV를 두고 선명도가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LG전자가 앞서 OLED TV를 내놨을 때는 “엄밀히 말해 진짜 OLED TV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2011년에도 두 기업은 서로의 3D TV를 놓고 비난을 쏟아냈었다. 

두 기업의 논쟁이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비방전이라도 가치가 있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비판은 영양가 없는 난타전에 그쳤다. 두 기업이 신경전을 펼쳤던 3D TV가 소리 소문 없이 시장에서 사라진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당장 8K 논쟁만 봐도 그렇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8K 기술을 놓고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는 없다. 기술적인 얘기는 제외하고서라도 8K 콘텐트 시장이 개화開花하는 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8K TV가 있어도 이를 받쳐줄 콘텐트가 없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8K 콘텐트가 대중화하기 어려운 이유는 장비에 있다. 8K 촬영 장비를 갖추기 위한 비용은 생각보다 크다. 8K 콘텐트 시장이 개화하려면 외주 제작사들이 장비를 갖춰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실제로 콘텐트제작사 상당수는 8K 장비를 도입하는 대신 ‘업스케일링 기술’로 낮은 해상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OLED와 QLED를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다. OLED는 분명 앞선 기술이다. 하지만 시장에선 QLED TV의 판매량이 더 높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올 상반기 삼성전자의 QLED TV는 212만대, LG전자의 OLED TV는 122만대가 팔렸다. QLED TV의 판매량이 더 많은 것은 QLED가 LCD 기반이라는 걸 몰랐기 때문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가격과 색재현율, 수명 등 장단점을 깐깐하게 비교해 내린 결정일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형태를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다는 OLED 패널의 장점이 언제 구현되고, 효용성이 얼마나 클지도 평범한 소비자로선 예측할 수 없다. LG전자와 삼성전자의 기술 우위 논쟁이 소비자들로선 딴 세상 얘기로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LG전자와 삼성전자가 때만 되면 비방전을 펼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헤게모니(주도권)를 구축하려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더 이상 LCD에서 강조할 게 없다보니 8K를 일찍 부각한 면이 있다. LG전자는 OLED의 장점을 부각하려면 LCD의 단점을 얘기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LCD 기술이 가장 뛰어난 삼성전자를 겨냥할 수밖에 없다.”

8K가 맞느냐 아니냐를 두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강도 높은 설전을 벌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8K가 맞느냐 아니냐를 두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강도 높은 설전을 벌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LG전자와 삼성전자의 이번 논쟁도 이런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 연구위원은 “LG전자가 확실한 우위를 갖고 있는 분야가 TV였지만 QLED가 빠르게 부상하면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면서 “특히 OLED 패널을 제공하는 LG디스플레이로선 적자를 기록하고 희망퇴직까지 받고 있어 이 시장을 뺏기면 문제가 크기 때문에 주도권을 되찾는 게 급선무일 것”이라고 말했다. 

8K와 OLED는 분명 TV시장의 차세대 기술이다. 이 기술을 선점하는 기업이 미래 TV시장을 선도할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기술력이 전부는 아니다. 소비자가 기술력만 보고 제품을 선택해 왔다면 상대적으로 성능이 떨어지는 하드웨어로 글로벌 시장을 평정한 아이폰의 사례를 설명하기 힘들다. LG전자와 삼성전자의 비방전, 대체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 이 뻔한 패권전쟁에 소비자는 있는가.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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