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폭탄’ 심지에 불이 붙진 않았지만…
‘D-폭탄’ 심지에 불이 붙진 않았지만…
  • 강서구 기자
  • 호수 356
  • 승인 2019.09.2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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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 우려 어떻게 봐야 할까

8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한국경제에 ‘D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기저효과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전문가들도 한번 마이너스로 떨어진 물가상승률이 디플레이션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하지만 저물가·저성장 기조가 계속되는 건 심각한 문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디플레이션 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D(디플레이션)의 공포를 냉정하게 해부해봤다. 

8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사진=연합뉴스 ]
8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사진=연합뉴스 ]

한국경제가 디플레이션 터널의 입구에 도착한 걸까.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일까. 8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0.038%)’를 기록하면서 시장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D(디플레이션·Deflation)의 공포가 커지고 있어서다. 경기침체에 ‘디플레이션’ 우려가 덧붙여진 셈이다.

한국은행은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한편에선 생산성 향상·유통구조 혁신으로 나타난 ‘착한 디플레이션’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도 물가상승률이 한번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으로 D의 공포를 운운하는 건 과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는 “물가상승세가 상당 기간 지속될 때를 인플레이션이라 한다”며 “디플레이션도 같은 개념이다”고 말했다. 그는 “8월 물가상승률을 가지고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건 성급한 판단”이라며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소비물가까지 떨어지자 시장이 과민하게 반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소영 서울대(경제학) 교수도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긴 했지만 디플레이션이라고 하긴 어렵다”며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이 저물가를 부추겼다는 의견도 있다. 7~8월 여름철 전기요금 누진세 완화 정책, 1차례 연장된 유류세 감면 정책(5~8월) 등이 물가상승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승훈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9월 물가상승률은 유류세·전기료 인하효과 소멸, 추석에 따른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0.6%(전월 대비) 내외로 전망된다”며 “농산물 가격의 급등세가 지난해 9월까지 이어졌다는 걸 생각하면 전년 대비 물가상승률은 0.2% 정도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정부정책 효과가 사라지면 2020년 물가상승률은 연 1.3%대로 상승할 공산이 크다”며 “물가상승률 하락은 올해 8월과 9월에 국한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저물가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일시적인 영향을 받아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한국경제의 현주소가 불안한 건 사실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8일 발표한 ‘KDI 경제동향 9월호’에서 “우리 경제는 대내외 수요가 위축되며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0%대를 유지하는 것은 성장률이 낮아지는 가운데 수요 부족이 지속돼 물가가 하락한 것이다.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KDI의 분석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소비심리가 얼어붙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소매판매액은 전년 동월 대비 0.3% 줄었다. 가전제품과 승용차를 비롯한 내구재 판매액과 의복 등 준내구재 판매액이 각각 3.4%, 0.4% 감소했다.


한은이 발표한 ‘8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8월 소비지출전망 CSI(100이하 부진)는 전월 대비 2포인트 하락한 105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최저치로 떨어진 수치다. 지출 증가를 의미하는 100을 넘긴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지만 소비가 실제로 늘어날진 지켜봐야 한다. 경기부진에 대비해 지출을 쉽게 줄일 수 있는 여행비(92→87), 의류비(94→93), 외식비(91→90) 등이 일제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수치가 증가한 것은 주거비(102→103)가 유일했다. 가계가 허리띠를 더 졸라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경기가 좋아질 요인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한국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은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 연속 뒷걸음질쳤다. 대외환경도 녹록지 않다. 미중 무역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중국은 6%대 성장을 유지하는 게 힘겨워 보인다. 미국 역시 18일(현지시간) 기준금리 또 떨어뜨리면서 경기침체에 대비하고 있다.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우는 징조도 숱하다. 현금 유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인 M1(현금통화+수시입출금·저축성예금) 통화 증가율은 해가 갈수록 둔화하고 있다. 2016년 15.4%를 기록했던 M1(평균잔액) 증가율은 지난해 4.9%로 떨어졌고 올 7월에는 3.8%로 하락했다. 소비뿐만 아니라 모든 경제활동의 물가 압력을 나타내는 GDP디플레이터(명목 GDP÷실질 GDP) 는 올 2분기 -0.7%로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 수치가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1999년 2분기 이후 처음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물가에서의 소비가 줄면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디플레이션 초입은 아니더라도 디플레이션으로 향해 가고 있는 분석을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김상봉 한성대(경제학) 교수는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이 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디플레이션에 따른 장기불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재정정책·금융정책과 함께 과감한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이너스 기록한 소비자물가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올해 469조600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지만 물가와 경기는 하락세를 걷고 있어서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매우 공격적인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며 “올해와 내년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최소 0.5%포인트 금리인하가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통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만한 상황이냐는 거다. 박 애널리스트는 우려감을 내비쳤다. 150조원에 이른 가계부채가 통화정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통화정책이 어렵다면 소비와 투자가 회복되길 기대해야 하는데, 가능성이 높지 않다. 소비 회복은 교역조건이 정상화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투자는 반도체 경기 사이클이 회복됐다는 확신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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