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배짱 꺾은 애플

애플이 공개한 ‘아이폰11’ 소식에 스마트폰 업계가 술렁였다. 신상 스마트폰을 이전 모델보다 싼 가격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애플은 프리미엄 가격정책을 전략으로 삼고 있다. ‘비싸도 살 사람은 산다’는 게 애플의 배짱전략이었는데, 돌연 가격을 낮춘 이유가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애플이 고집을 꺾은 이유를 살펴봤다.

애플이 아이폰11을 출시했지만 반응은 예전같지 않다.[사진=뉴시스]
애플이 아이폰11을 출시했지만 반응은 예전같지 않다.[사진=뉴시스]

애플 마니아들 사이에서 9월은 ‘축제’와도 같았습니다. 아이폰5(2012년 9월 12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아이폰XS(2018년 9월 12일)까지 매년 9월만 되면 새로운 아이폰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죠.

그때마다 혁신적인 기술도 더해졌습니다. 버튼에 지문인식 기능이 생기고(아이폰5s), 손가락 압력을 인식하는 디스플레이가 탑재됐으며(아이폰6s), 얼굴인식으로 잠금을 해제하는 기능이 추가됐죠(아이폰X). 판매가 시작되면 애플 매장은 아이폰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럴까요? 지난 10일 애플은 ‘아이폰11’ ‘아이폰11프로’ ‘아이폰11프로 맥스’ 등 3가지 모델을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합니다. 공개하기 몇주 전부터 아이폰11이 찍힌 사진이 유포됐는데, 후면 카메라 디자인에 불만을 갖는 소비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큼지막한 렌즈 3개가 모여 있는 생김새를 보고 “인덕션처럼 생겼다”며 조롱 섞인 시선을 쏟아냈습니다.

애플이 아이폰11의 스펙을 공개한 이후에도 소비자들의 실망감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카메라 성능을 제외하면 이전 모델보다 나아진 점을 찾기 어려워서입니다. 메모리(RAM) 용량이 3GB(아이폰XR)에서 4GB로 늘어난 것과 배터리 효율이 좋아진 게 그나마 눈에 띕니다.

전문가들도 아이폰11의 판매가 저조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신한금융투자는 올 하반기 아이폰 신모델의 출하량이 5300만대로 전년 동기(6000만대) 대비 11.6%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하이투자증권도 올해 아이폰 출하량이 1억7000만대로 지난해(2억500만대)보다 크게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가격은 애플답게 여전히 비쌀까요? 놀랍게도 아이폰11(이하 기본모델 기준)의 출고가는 699달러(83만5305원)로 전작 아이폰XR(749달러·89만5055원)보다 더 저렴해졌습니다. 더구나 아이폰XR은 다른 모델에 비해 싼 가격과 낮은 스펙을 갖춘 보급형 모델입니다. 애플은 신상 아이폰에 이전 모델, 그것도 보급형 모델보다 더 싼 가격표를 붙인 셈입니다.

지금까지 애플은 꽤 오랫동안 고가의 ‘프리미엄’ 정책을 일관해 왔습니다. 충성 고객층이 두텁다는 점을 이용했죠. 2012년 출시한 아이폰5C(549달러·65만6055원)를 끝으로 중저가 모델은 더이상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가격은 꾸준히 올렸습니다. 3년 전만 해도 649달러(77만5555원·아이폰7)였던 아이폰 가격은 지난해 하반기에 999달러(119만3805원·아이폰X)까지 치솟았습니다.

고가정책 실패한 애플

하지만 아이폰X시리즈 판매량이 저조하면서 애플도 직격타를 맞았습니다. 2018년 4분기 아이폰 판매량은 6450만대를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11.8% 줄었습니다(가트너).

‘아이폰 위기론’을 보여주는 또다른 통계도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12.1%(2018년 2분기)였던 애플의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올 2분기 10.1%까지 떨어졌습니다. 반면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인 샤오미·화웨이·오포의 총 점유율은 같은 기간 27.8%에서 36.2%로 8.4%포인트 올랐습니다. 이들 중국 제조사가 가성비가 뛰어난 스마트폰을 무기로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는 만큼 애플이 가격을 인하한 건 가성비 시장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애플의 새로운 수입원 ‘애플TV플러스’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애플TV플러스는 유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구독자는 애플 기기로 애플이 제공하는 콘텐트를 시청할 수 있습니다. 고의영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애플TV플러스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이를 탑재한 아이폰 가격을 크게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가격정책은 올해 애플의 기대주가 아이폰11이 아닌 애플TV플러스임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애플의 최대 경쟁상대인 삼성전자는 어떨까요? 애플처럼 중국 기업의 약진에 밀려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삼성전자의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21.0%(2018년 2분기)에서 22.7%(올 2분기)로 되레 1.7%포인트 높아졌습니다.

지난 3월 출시한 ‘갤럭시S10’이 호평을 받았고, 30만~40만원대 중저가 모델인 갤럭시A 시리즈가 유럽 시장에서 선전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2분기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부의 매출도 25조8600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7.9% 증가했습니다.

애플과 다르게 삼성전자는 고가 정책에 더욱 힘을 싣는 듯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9월 판매를 시작한 폴더블폰 ‘갤럭시 폴드’입니다. 출고가가 239만8000원으로 화면이 접히는 최신기술이 적용됐다는 점을 감안해도 가격대가 무척 비쌉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망설이지 않고 지갑을 열었습니다. 국내에선 예약판매로 내놓은 갤럭시폴드 3000개가 하루 만에 완판되기도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8월 출시한 갤럭시노트10은 이전 모델(갤럭시노트9·109만4500원)보다 15만4000원 비싼 124만8500원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내 판매량이 8월 기준 130만대를 넘어섰습니다. 스마트폰 대리점 관계자는 “갤럭시노트10이 몇 안되는 5G 전용 스마트폰인 데다 고사양 스펙이란 장점이 합쳐져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면서 “5G 가입자가 급격히 늘고 있는 만큼 갤럭시노트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아이폰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아이폰11은 현재 미국·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 사전예약으로만 판매되고 있습니다. 공식 판매가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불티나게 팔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고집을 꺾고 가격을 낮춘 애플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시장의 판도가 바뀌었음을 알리는 시그널이기 때문입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IT전문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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