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수호정책연구소 백동일 대표의 작심토로

▲ 2005년 6월 미국에서 국가기밀 유출죄로 수감됐다가 풀려난 로버트 김(오른쪽)이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모습. 사건 당사자였던 백동일 대표와 포옹을 하고 있다.
1996년 한미 양국 간에 스파이 사건이 터졌다. 미국 해군 정보국 소속 로버트 김(김채곤)이 군사첩보를 한국군에 전달한 것이 미 연방수사국(FBI)에 포착됐다. 당시 로버트 김으로부터 첩보를 전달 받은 사람은 주미대사관 해군무관이었던 예비역 대령 백동일씨다.

국가수호정책연구소 백동일 대표는 로버트 김 사건에 대해 “무관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금도 가슴에 큰 돌덩어리를 얹고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 일을 평생 어떻게 잊겠느냐”며 “로버트 김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 됐다는 죄책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백 대표와 로버트 김은 사건이 있은 후에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6월 로버트 김이 한국에 입국했을 때도 한 걸음에 달려가 그를 맞았다.

백 대표는 당시를 소회하며 “로버트 김과 그의 아내가 건강이 많이 나빠져 걱정이 크다”며 “스파이 사건으로 충격이 너무 컸던 것 같아 마음이 내내 불편하다”고 전했다. 백 대표는 사관학교를 포함해 군 생활 32년 중 28년을 대북 첩보자료 수집과 북한 동향을 살피는 데 보냈다.  주미대사관에서 해군무관으로 재직 중일 때도 대북정보를 수집하느라 대부분의 날을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해군무관은 제독으로 진급할 수 있는 주요 보직 중 하나다.

그가 여러 건의 첩보들을 한국정부에 보내던 중 1995년 미국 해군정보국에 근무하는 로버트 김을 만났다. 정기적으로 열리던 한미 해군 정보교류 회의에서다. 백 대표는 로버트 김에게 한국의 첩보수준 등을 이야기하며 자료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로버트 김은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을 온 시민권자였지만 고국의 사정을 이해했다. 백 대표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후 백 대표는 약 10개월간 로버트 김과 만나 북한 군사사항을 위주로 한 대북첩보자료들을 입수할 수 있었다. 백 대표에 따르면 로버트 김은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단 1센트를 요구하지도 받지도 않았다. 오히려 백 대표가 고마운 마음에 식사를 하자고 하거나, 골프를 한 번 치자고 해도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로버트 김의 활동은 FBI에 노출됐다. 1996년 9월 FBI에 ‘국가기밀 취득 음모죄’ 혐의로 체포됐다. 미국 알렉산드리아 법정에서 징역 9년에 보호관찰 3년을 언도 받았다. 백 대표도 바로 송환됐고, 4년 뒤 군복을 벗었다. 사건이 발생한 후 백 대표는 백방으로 로버트 김 구명운동에 뛰어들었다. 직접 부시 대통령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버시바우 주한미대사 등에 형기 단축을 위한 노력을 펼쳤다.

하지만 당시 한미관계는 북미간 제네바핵협정체결로 불편한 상태였고 형기 단축은 쉽지 않았다.
세월은 세월대로 흘러갔다. 로버트 김은 모범적인 수형 생활로 8년의 징역과 1년의 보호관찰로 감형을 받았다. 2005년 10월, 그는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됐다. 백 대표는 “그가 자유의 몸이 됐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절골지통의 회한과 가족의 고통, 파탄난 가정경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 대표는 “물의는 컸지만 후회는 없다”는 말로 심정을 대신했다. 국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그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후손이나 가족들에게 그 가치를 되찾을 수 있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또 “국민 없는 국가는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며 “국가가 없는 국민을 만들지 않으려면 엉뚱한 곳에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이런 분들을 보듬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버트 김 사건을 겪은 후 우리 정부가 가지고 있는 첩보 능력의 한계도 절감했다. 그는 “미국은 우주, 공중, 지상, 수상, 수중 할 것 없이 적들을 다 감시할 수 있다”며 “그런데 우리는 저 조그만 북한마저도 제대로 한 눈에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데이터베이스와 첩보수집에 대한 시스템, 휴민트(정보원)도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며 “이런 것들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예산확보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백 대표가 이 같은 말을 하는 이유는 현대 전쟁에서 정보가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전은 정보전이고, 적의 동태를 모르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우방국 간의 정보 교환 협조 체계도 중요하다”며 “로버트 김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정보 공조 체계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로버트 김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백 대표는 로버트 김 사건 이후 국가안보 체계 구축을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로버트 김 사건으로 해군 제독의 꿈을 접어야 했던 그가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Issue in Issue | 미니 인터뷰

“첩보능력은 국력의 바로미터”

현재 각 나라들의 첩보활동 상황은 어떤가.
✚ 지구상 어느 국가 없이 정보, 첩보활동이 활발하다. 특히 선진국 일수록 더욱 치열하다. 국력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현대 국가는 독자적 능력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이다. 국력이 필요한 이유다. 이전투구하고 반국가적이며, 친 공산주의적인 처신들은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실제로 정보를 수집하면서 큰 사실들을 파악했을 때 느끼는 두려움도 있을 것 같다.
✚ 첩보는 공개출처에 의한 첩보, 비공개출처에 의한 첩보로 크게 나뉜다. 85~90%에 달하는 공개첩보는 대북정책수립에 기여하는 바가 아주 미미하다. 그러기에 비공개첩보를 수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보, 첩보 수집 체계는 수직적 라인이 구축된다. 가치있는 첩보를 수집하면 수직적 라인의 신뢰가 더욱 돈독해지고 그만큼 책임도 커진다. ‘희생은 성과로 보상된다’는 정보계의 말이 있다. 위험이 있는 만큼 기대 밖의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폭격 등 북의 도발이 있었다. 우리의 대처는 어떻게 해야 하나.
✚ 연평도 포격사건에서 우리는 천금 같은 기회를 놓쳤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들을 두고 보더라도 그렇다. 씻을 수 없는 오점을 크게 남겼다.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10배, 20배의 응징을 했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당시 단 1초도 주저할 것 없는 결단으로 적의 포진을 박살냈어야 했다. 그 효과는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해군작전사령관과 2함대사령관에게 간곡히 권고했다. ‘유사한 일이 또 일어날 수 있으니 영웅 한 번 돼 봐라’고 말이다. ‘절대로 확전은 없을 것이니 무조건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다.

우리나라의 안보의식 상황은 어떤가.
✚ 지난 두 정부(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안보관이 해이해졌다. 무슨 배경에서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적을 두고 그들과 부화뇌동하고, 지금도 그 잔재들이 더 날 뛰고, 그런 상황에서 정부는 그런 작태들을 수수방관한 것은 아닌지 모호하다. 안보는 생명과 같은 절체절명의 대명제인데도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소위 이적단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 제대로 된 안보와 기초교육, 엄정한 법치만이 이 나라가 살길이다. 이적단체들에 대해서는 하루 빨리 보안법을 보완해 법이 정하는 대로 철저히 집행해야 한다. 전교조•좌파교육감•민노총•진보당 같은 무리들은 아마도 통일이 되면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안보균형자적 역할을 위해서도 하루빨리 통일이 돼야 한다. 저들 때문에 가슴에 피멍이 드는 분들이 적지 않다. 나라가 골병이 들고 있다. 하루빨리 치유돼야 한다. 소원이다.
김주현 기자 hahaha @ itvfm.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