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로봇 현주소

공장에서나 볼 수 있던 로봇이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요리로봇’이라 이름 붙은 기계들이 사람 대신 커피를 만들고, 치킨을 튀긴다. 튀김요리처럼 위험한 업무를 대신하고, 고객에겐 저렴한 가격이라는 메리트도 제공한다. 그렇다면 요리로봇이 사람의 끼니를 책임지는 시대가 올까. 아직까진 걸음마 단계라는 지적이 많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요리로봇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로봇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려주는 매장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로봇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려주는 매장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로봇이 커피를 내려주고, 치킨을 튀겨주는 시대가 다가왔다. 미국 실리콘밸리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로봇이 내려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여럿이다. 지난 16일 로봇 바리스타가 있는 성수동 ‘카페봇’을 찾았다. 8월에 문을 연 이곳은 산업용 로봇 전문업체 티로보틱스가 운영하는 곳이다. 이름에 걸맞게 건물 외관부터 번쩍이는 메탈 느낌으로 지어졌다. 

내부 분위기도 독특했다. 벽면에는 핑크라군(멕시코 칸쿤 지역의 붉은 호수)을 콘셉트로 한 시시각각 변하는 디지털 아트가 펼쳐지고 있었다. 널찍한 카운터에는 커피를 내리는 로봇 ‘드립봇(drip bot)’과 케이크에 그림을 그려주는 ‘디저트봇(dessert bot)’이 자리하고 있었다. 카운터 뒤편에는 칵테일을 만드는 ‘드링크봇(drink bot)’이 거꾸로 매달린 술병들과 함께 있었다. 

하지만 종이로 된 메뉴판이나 주문 방식은 일반 카페와 다르지 않았다. 드립 커피를 주문하자, 직원이 드리퍼 필터 위에 원두를 담고 레일 위에 올렸다. 그러자 드립봇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봇팔이 내려와 메탈 호스에서 나오는 물을 원두에 부었다. 

사람 바리스타처럼 물줄기를 이리저리 돌리며 골고루 드리핑을 했다. 완성된 커피는 다시 직원이 가져다 머그잔에 담아 제공했다. 로봇과 사람의 콜라보였다. 매장을 찾은 김성아(23)씨는 “SNS에서 로봇카페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궁금해서 찾아왔다”면서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이 된 것 같아 신기하다”고 말했다. 티로보틱스 관계자는 “일반적인 산업용 로봇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면서 “그래서 이곳을 로봇과 사람이 협업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공간으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커피뿐만이 아니다. 대구광역시에는 ‘로봇치킨’이라 불리는 치킨전문점 ‘디떽’이 최근 문을 열었다. 66㎡(약 20평) 남짓한 매장 주방의 안주인은 로봇이다. 주방 선반에 고정된 로봇이 사람 팔처럼 움직이며 치킨을 튀긴다. 직원이 재료를 준비해주면, 조리는 로봇이 담당하는 식이다. 

부위별로 튀기는 시간이 다르게 설정돼 있어 직원은 버튼만 누르면 된다. 로봇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비어있는 바스켓에 치킨을 넣어 튀기고, 적정 시간이 지나면 꺼내 기름을 털어낸다. 무엇보다 유증기와 뜨거운 기름 탓에 위험한 튀김 업무를 사람 대신 로봇이 한다는 게 장점이다. 이 로봇은 두산로보틱스가 생산하고, 디떽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위험한 튀김 업무에서 해방 

원정훈 디떽 대표는 “반복적이고 고된 업무를 로봇이 대신하도록 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서 “위생문제, 내구성 등을 보완하고 향후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결합해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런 요리로봇 시장에 진출한 건 중소기업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6~11일 독일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IFA 2019’에서 요리로봇 ‘삼성봇 셰프’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AI 기반의 로봇팔로 다양한 요리 도구를 장착할 수 있다. 사람을 도와 식재료 준비, 양념 추가, 레시피 안내 등을 할 수 있다. 

자영업자의 임대료‧인건비 부담 때문에 요리로봇 수요가 증가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자영업자의 임대료‧인건비 부담 때문에 요리로봇 수요가 증가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그렇다면 로봇이 사람의 끼니를 책임지는 날이 올까. 외식업 시장이 임대료ㆍ인건비 부담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요리로봇이 활성화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미국에서도 요리로봇이 확산하는 추세다. 이혜진 코트라 실리콘밸리무역관은 ‘미국 푸드로봇을 만나보다’란 보고서를 통해 올해 요리로봇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하는 한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외식업계 역시 높은 인건비와 임대료 문제를 겪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요리로봇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에서 로봇에 앞서 요리를 돕는 자동화기계가 확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 대형마트나 대형음식점에서 주로 사용하던 김밥ㆍ초밥기계 등의 소매판매가 증가한 건 대표적인 예다. 관련 기계를 생산ㆍ판매하는 럭키엔지니어링의 김칠현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 음식 만드는 일에 기계를 써야 하느냐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엔 조금 달라졌다. 인건비 부담과 인력난을 겪는 자영업자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원가 절감을 할 수 있는 데다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갈 길 먼 요리로봇

소비자에게 메리트가 없는 것도 아니다. 가격 경쟁력은 요리로봇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예컨대 다날이 운영하는 로봇카페 비트(b;eat)의 경우, 주문부터 음료 픽업까지 무인 시스템으로 이뤄진다. 6.6㎡(약 2평) 규모의 부스 안에 로봇과 커피머신 등이 들어있다. 고객이 키오스크나 모바일 앱으로 음료를 주문하면 로봇이 제공한다.

음료 가격은 아메리카노(이하 롯데월드몰점 기준ㆍ2000원), 카페라떼(2500원) 등으로 커피 전문점 대비 저렴하다. 다날 관계자는 “다날이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 달콤커피와 동일한 퀄리티의 음료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무인 시스템이지만 관리자가 하루 한번씩 점검하고 원격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리로봇의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많다. 정부가 나서서 식품ㆍ외식 분야에 로봇 도입(로봇산업 발전방안ㆍ2019년 3월)을 장려하고 있지만, 현재 국내 식음료 산업에 활용되는 로봇은 1000대가량(이하 2017년 누적 기준)으로 전체의 0.4%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요리로봇의 비싼 가격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자영업 시장에서 요리로봇이 확산할 수 있도록 단가를 낮추는 게 업계의 과제”라면서 “공장이 아닌 생활공간에서 사용하는 만큼 안전성과 내구성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리로봇이라고 하기엔 아직 민망한 기술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보여주기 위한 콘텐트에 불과하다는 일침이다. 로봇카페를 방문한 노영훈(25)씨는 “호기심에 한번쯤은 오겠지만 로봇이라고 하기엔 단순한 동작에 불과하고, 볼거리 이상의 무언가를 찾기는 어려웠다”고 꼬집었다. 요리로봇, 신드롬을 일으키기엔 아직 갈길이 멀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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