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총수들의 잇단 위기론

기업 현장에서 위기론이 흘러나온다. 경제 상황이 그만큼 불확실하다는 방증이다.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조국 블랙홀’에서 빠져나와 민생을 살펴야 한다.[사진=뉴시스]
기업 현장에서 위기론이 흘러나온다. 경제 상황이 그만큼 불확실하다는 방증이다.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조국 블랙홀’에서 빠져나와 민생을 살펴야 한다.[사진=뉴시스]

“어느 기업도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삼성 이재용).” “이런 종류의 지정학적 위기는 처음이다(SK 최태원).”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의 위기다(LG 구광모).” “그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성이 커진 시기다(GS 허창수).”

주요 그룹 총수들이 현장경영 행보에서 최근 경제상황을 잇따라 ‘위기’로 규정하며 전략적 대응을 주문하고 나섰다. 의례적인 독려 차원으로 보기엔 표현이 절박하고, 실제로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자못 크다.

장기화하는 미중 무역전쟁, 일본의 수출규제, 환율ㆍ유가불안 등 대외변수에다 저성장, 저물가(내지 디플레이션 우려), 저출산ㆍ고령화, 신산업 육성 지연, ‘조국 사태’로 인한 정치ㆍ사회적 갈등과 북한 변수 등 내부 악재가 겹친 탓이다. 더구나 이런 위기를 초래한 요인들이 단기 악재가 아닌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기인한 중장기 과제라서 기업 총수들을 긴장케 만든다.

기업인만 위기의식을 느끼는 게 아니다. 국내외 경제연구기관이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걱정스럽다. LG경제연구원은 내년 성장률을 1.8%로 내다봤다. 앞서 모건스탠리는 1.7%, 국가미래연구원은 1.9%로 전망했다. 

LG경제연구원은 “저성장ㆍ저물가ㆍ저금리의 ‘3저低 위기’에 저출산까지 겹치면서 성장동력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 주요 기업들의 신용등급 및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할 것임을 내비쳤다.

출생아 수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데다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하면서 잠재성장률(한 나라의 자본과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해 이룰 수 있는 성장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미 현실화한 저물가 현상에 향후 물가가 더 떨어지리란 심리가 퍼지면서 소비를 미루는 경향까지 나타나면 장기불황에 빠져들 수 있다.

상황이 이럼에도 정부는 재정을 투입해 만든 노인 공공알바로 늘어난 취업자 수를 내세우며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낙관론에 젖어 있다. 경제부처 발표자료를 보면 나쁜 덫에 빠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수치가 괜찮게 나온 ‘보기 좋은’ 지표는 부풀리고, 언짢은 지표는 이전 정부부터 악화된 것이라고 변명한다.

경제팀의 안이한 인식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넉달 만인 2017년 9월 경기가 정점을 찍고 하강하기 시작했는데도 경기정점에 대한 판단을 미루는 일까지 빚어냈다. 지난 6월 국가통계위원회를 열어 최근 경기순환의 정점을 공식 판정하려다 석달이나 늦췄다.

2017년 9월 이후 수그러든 경기하강 국면(수축기)은 벌써 24개월째다. 앞에 언급한 대내외 변수로 볼 때 이번 수축기는 역대 경기순환 중 최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또한 정부 출범 직후 경기가 꺾였는데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및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주52시간 근로제 도입 등 경제에 부담을 주는 정책을 강행해 경기하강을 더 가파르게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위기론을 언급한 기업 총수들은 물론 적잖은 경제연구기관과 학자들은 현 경기상황을 ‘L자형 경기침체’로 규정한다. 과거처럼 경기의 상승과 하락 국면이 비교적 짧게 반복되는 ‘U자형’이 아닌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하리란 전망이다. 글로벌 대기업 총수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이 이럴진데 내수 의존도가 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훨씬 심각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 현장에서 제기되는 위기론을 흘려듣지 않아야 한다. 작금의 경제 불확실성은 정치ㆍ외교 상황 등 기업들이 어쩌기 힘든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기업의 노력만으로 헤쳐 나가기 어렵다.

그런데 정치권은 두달째 조국 블랙홀에 빠져 있다. ‘조국 구하기(여당)’와 ‘조국 끌어내리기(야당)’ 전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오죽하면 국내 최대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이 한국 경제를 ‘버려지고 잊힌 자식’으로 명명했을까.  

경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다. 전장에서도 사업 기회를 잡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자 기업인의 도전정신이다. 정부는 안이한 낙관론에서 벗어나 경제활력을 살리기 위한 규제혁파와 노동개혁, 산업 구조조정에 매진하라. 정치권도 진영 감정에 매몰된 ‘조국 대전’에서 빠져나와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안 심의 및 처리 등 국회 기능 회복에 나서라.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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