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반도체 낙관론 vs 비관론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되살아날 기미가 감지된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주종목이 ‘메모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호재임에 분명하다. 그렇다고 과도한 낙관론에 빠지면 곤란하다. 기다리던 봄비가 한번에 언 땅을 녹일 수 없듯 메모리반도체의 부활을 의심할 만한 통계적 근거와 징후는 여전히 숱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반등했다. 하지만 반도체 업황이 개선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반등했다. 하지만 반도체 업황이 개선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반도체가 바닥을 찍고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증권업계에서 침체의 늪에 빠져있는 국내 반도체에 청신호가 들어왔다는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뒷받침하는 시그널도 적지 않다. 국내 두 반도체 공룡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살아나기 시작한 건 긍정적인 징조다. 

올해 1월 4일 3만7450원(종가 기준)까지 떨어졌던 삼성전자 주가는 9월 24일 4만9500원으로 반등했다. 반도체산업이 호황기를 지나던 지난해 상반기 주가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SK하이닉스 주가도 같은 기간 5만8300원에서 8만3400원으로 43.1% 뛰어올랐다. 

주가를 끌어올린 건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회복될 거란 기대감이다.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투자자가 9월(1~25일) 들어서만 각각 2326억원, 6956억원 상당의 삼성전자 주식을 순매수했는데, 증권업계에선 “메모리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찍고 반등할 거란 신호”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도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동의했다. 시기로 봤을 때 IT기업들이 2020년 출시할 제품들을 준비할 때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기업들이 축적해놨던 반도체 재고가 소진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또다른 이유도 있다.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신산업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거란 점도 메모리반도체의 부활을 기대하게 만든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016년부터 이어진 호황을 견인한 건 데이터센터였다”면서 “인텔이 생산에 차질을 빚었던 데이터센터용 CPU를 다시 생산할 거란 점, 미국ㆍ중국에도 5G가 도입되면 콘텐트 용량 증가로 데이터센터를 확장해야 한다는 점 등에서 메모리반도체 수요는 늘어날 공산이 크다”고 설명했다. 데이터센터는 컴퓨터 시스템, 통신장비, 저장장치 등이 설치된 시설로 D램과 낸드플래시를 비롯한 메모리반도체를 필요로 한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강점은 메모리반도체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의 전망에 따르면 올 3분기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한 점유율은 약 74%에 이른다. 최근 시스템반도체 육성론이 뜨겁지만 당장 실적을 내기 위해선 메모리반도체가 살아나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메모리반도체 부활을 알리는 시그널은 더 할 나위 없는 호재다.

하지만 낙관론을 펴기엔 다소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기대를 걸 만한 요인이 많은 건 분명하지만, 아직 실물지표에선 눈에 띄는 반전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년 동기 대비 반도체 수출 증감률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관세청의 수출입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월 반도체 수출액 증감률은 -30.7%, 9월(1~20일)은 -39.8%로 올해 들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도체 업황을 가늠할 지표 중 하나인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큰 폭으로 하락하던 D램 가격은 8월 들어 하락폭이 줄었고, 낸드플래시는 소폭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아직 반등의 기미라고 보긴 어렵다. 일본수출규제에 따른 반작용일 수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7월 일본이 반도체 소재의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메모리반도체 가격의 하락세가 주춤했다”면서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가격을 끌어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가 완화되고, 반도체 공급에 이상이 없으면 반도체 가격이 다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거다.

현재 일본은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제조공정에 쓰이는 규제 품목 3가지(플루오린 폴리이미드ㆍ포토레지스트ㆍ고순도 불화수소) 중 포토레지스트는 수출을 허가했다. 나머지 2개 품목은 오는 10월 4일(7월 4일 규제 발표 이후 90일)까지 일본 정부가 규제 사유를 명확히 밝히지 못하면 수출이 허가될 가능성도 있다. 

메모리반도체 업황이 완연한 회복세를 띤다고 해도 리스크가 남는다. 2016~2018년 이어진 반도체 초호황 때처럼 국내 기업들이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독식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첫째 문제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다. 최근 중국 반도체기업 칭화유니淸華紫光그룹의 자회사 양쯔메모리(YMTC)는 64단 낸드플래시의 양산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2020년엔 128단 낸드플래시도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기업들이 생산하는 128단 낸드플래시와는 기술ㆍ성능 격차가 있지만 가볍게 넘길 만한 문제는 아니다. 김양팽 연구위원은 “중국 제품이 성능이 떨어지더라도 보급형ㆍ저가형 시장에선 충분히 먹힐 수 있다”면서 “특히 화웨이가 중국산 반도체를 쓰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삼성과 애플 다음으로 규모가 큰 화웨이를 뺏기는 건 상당한 타격이다”고 말했다.

미국의 시스템반도체 강자 인텔이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인텔은 지난 9월 26일 메모리기술 포럼 ‘메모리&스토리지 데이 2019’를 열고 144단 낸드플래시 기술을 소개했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현 제품보다 한단계 앞선 기술의 제품이다. 인텔이 메모리반도체를 안정적인 수율로 양산할 수 있다면 국내 기업들엔 위협이 될 공산이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인텔이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본격 진출하려는 것인지, 제품 단가를 낮추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면서 “아직은 지켜봐야 하겠지만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주종목인 메모리반도체. 이를 둘러싸고 기대도, 우려도 많다. 중요한 건 과도한 낙관론과 비관론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대 요인과 리스크 등 모든 변수를 대비해야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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