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LG화학은 왜 공시 가이드라인 무시하나 
[단독] LG화학은 왜 공시 가이드라인 무시하나 
  • 김정덕·고준영 기자
  • 호수 357
  • 승인 2019.10.0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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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의 모순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제약ㆍ바이오 기업의 공시를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공시 모범사례’란 이름의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었는데,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취소, 코오롱티슈진의 인보사 허가 취소, 신라젠의 신약 임상시험 중단 등 제약ㆍ바이오 시장을 흔들 만한 대형 사건이 줄줄이 터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조치였다.

성과는 예상보다 긍정적이었다. 제약ㆍ바이오 상장사 중 매출 상위 20개 기업이 올해 반기보고서에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을 적용했다. 하지만 이를 따르지 않는 대기업도 있다. LG화학이 대표적이다. 제약ㆍ바이오를 담당하는 생명과학 부문의 매출 비중이 적고, 보도ㆍIR자료를 통해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타당한 주장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단독취재했다. 

LG화학은 제약ㆍ바이오 사업을 하고 있지만, 금감원 공시는 요리조리 피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LG화학은 제약ㆍ바이오 사업을 하고 있지만, 금감원 공시는 요리조리 피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주식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제약ㆍ바이오 업종의 위치는 매우 독특하다. 당장 적자를 면치 못하는 기업이더라도 종종 원금의 몇배에 달하는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가져다준다. 의약품 하나만 잘 만들어내면 순식간에 우량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어서다. 그런 면에서 제약ㆍ바이오 업종은 주식투자자들에게 ‘한방’을 선물할 수 있는 꽤 매력적인 투자처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크다. 잘못된 정보로 투자하거나, 개발 중인 의약품이 중단되면 가파르게 치솟았던 주가가 하루아침에 바닥을 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동안 투자자들이 이런 위험성을 알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제약ㆍ바이오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정보를 굳이 공개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8월 “제약ㆍ바이오 산업이 투자자들의 관심으로 급성장하고 있지만, 신약개발과 관련된 중요 정보나 투자위험을 알려주는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면서 ‘제약ㆍ바이오 기업의 공시실태 및 투자자 보호방안’을 내놓은 건 이런 이유에서다. 금감원은 투자자가 정보를 손쉽게 얻고, 기업 간 비교가 수월하도록 ‘공시 모범사례’도 제시했다.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인데, 세부적인 내용들이 많이 있지만 크게 보면 세가지로 압축된다. ▲주요 계약 공개 ▲연구개발 인력 공개 ▲연구개발 현황 공개다. 

금감원 안내 대상서 빠진 LG화학

이런 ‘공시 모범사례’를 기준으로 주요 계약의 내용을 참고하면 기업이 기술 수출ㆍ수입을 통해 매출을 얼마나 올렸고, 향후 얼마나 벌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다. 계약조건이 구체적일수록 리스크를 파악하기도 쉽다. ‘연구개발 인력’이 공개되면 임상시험의 성공률을 가늠해볼 수 있다. 개발 중인 의약품을 연구한 이력이 있는 핵심인력이 많을수록 임상시험 성공 가능성도 높다. ‘연구개발 현황’ 공개는 특히 중요하다. 현재 임상이 몇단계까지 진행됐는지, 해당 의약품 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경쟁약품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알 수 있어서다. 

LG화학 생명과학 부문의 연간 매출은 제약업계 전체로 보면 꽤 높은 수준이다.[사진=뉴시스]
LG화학 생명과학 부문의 연간 매출은 제약업계 전체로 보면 꽤 높은 수준이다.[사진=뉴시스]

물론 제약ㆍ바이오 기업들이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할 의무는 없다. 권고사항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건 제약ㆍ바이오 상장사 중 매출 상위 20개 기업은 올해 반기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을 따랐다는 점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투자자 보호에 소극적인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면서 “따라서 내용상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최대한 많은 내용을 반영하려 노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가이드라인을 반영하려는 기업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소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권고사항이다 보니 여전히 반영을 안 하는 곳들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권고를 반영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취소, 코오롱티슈진의 인보사 허가 취소, 신라젠의 신약 임상시험 중단 등의 사태가 잇따르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면서 “대기업들도 솔선수범하는 만큼 더 많이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금감원 가이드라인을 완전히 무시한 채 제약ㆍ바이오 사업을 버젓이 펼치는 대기업이 있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LG화학이다. 이 회사는 주요 사업영역이 제약ㆍ바이오인 LG생명과학을 2017년 1월 흡수합병했다. 하지만 LG화학은 2018년 사업보고서, 2019년 분기보고서, 2019년 반기보고서에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을 반영하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첫째 원인은 제도적 허점이다. 금감원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거래소가 한국표준산업분류 코드에 따라 업종을 분류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의료용 물질 및 의약품 제조업’과 ‘연구개발업’에 속하는 기업들에만 가이드라인을 안내했다.

그런데 LG화학의 업종은 ‘합성고무 및 플라스틱 물질 제조업’이다. 그래서 가이드라인을 안내해야 할 기업에서 LG화학을 제외했다.” 금감원이 기업의 실제 사업 내용을 따져 보지 않고 서류만으로 일처리를 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또 어떤 기업들이 대상에서 빠져있을지 알 수 없다. 

둘째 원인은 LG화학의 의도적 ‘모르쇠’다. A기업은 LG화학과 마찬가지로 제약ㆍ바이오 업종으로 분류되지 않아 금감원 안내를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공시절차를 밟았다. 반면 LG화학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LG화학의 주요 사업은 석유화학과 배터리 분야다. 생명과학 사업은 전체 매출의 2% 수준에 불과하다. 사업보고서를 작성할 때 생명과학 분야에만 구구절절 내용을 집어넣을 수는 없지 않은가.” 생명과학 사업의 비중이 워낙 작기 때문에 공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언뜻 그럴듯한 이유로 보이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다. 

생명과학 매출은 업계 9위

LG화학의 총매출 대비 생명과학 부문 매출 비중이 적은 건 맞지만, 매출액 규모로만 보면 5711억원(2018년 기준)으로 꽤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제약ㆍ바이오 업종을 영위하는 코스피ㆍ코스닥 상장사 중 매출액 상위 8위(지주사 제외)인 제일약품(6271억원) 다음으로 높다.

순위별 매출 편차가 굉장히 많이 나는 것도 아니다. 유한양행(1위)의 매출은 1조5188억원, 녹십자(2위)는 1조3349억원, 광동제약(3위) 1조1802억원, 대웅제약(4위) 1조314억원, 한미약품(5위) 1조160억원 등이다. 셀트리온(6위)과 종근당(7위), 제일약품(8위)이 각각 9821억원과 9562억원, 6271억원이다. 매출 비중만을 운운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LG화학 관계자는 이런 이유도 내놨다. “LG화학은 금감원 공시는 아니더라도 보도자료와 IR자료 등을 통해 금감원에서 권고한 내용을 대부분 알리고 있다. 물론 라이선스 인아웃 관련 내용은 적시하지 않지만 주요 임상단계는 공시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과제들이 초기단계여서 당장의 기업가치에 영향을 줄 만한 게 없다.”

타당한 주장일까. 먼저 다른 방법을 통해 알리고 있다는 주장부터 보자. 공시자료는 공식적으로 제3자(회계법인)의 검토를 마친 것으로, 잘못 기재하면 처벌까지 각오해야 한다. 금감원에 제출하며, 기업구조가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사라지지도 않는다. 따라서 거짓말을 끼워 넣기도 쉽지 않다. 금감원이 공시에 내용을 넣으라고 권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보도자료와 IR자료가 공시자료의 비교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LG화학이 주장한 것처럼 보도자료나 IR자료에 금감원이 권고한 내용을 공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LG화학이 공개한 건 연구개발 담당조직 현황과 이미 완료된 연구개발 실적에 불과하다. 어쨌거나 “신약개발 관련 임상단계와 적응증(어떤 질병에 쓰이는지)은 공시하고 있다”는 게 LG화학 측의 입장이지만 거기에 신약의 품목명, 제품 특성, 경쟁제품, 시장규모 등의 내용은 없다.  

금감원 가이드라인 외면하는 LG화학

더 큰 문제는 어떤 이유에서건 LG화학이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을 따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LG화학 관계자는 “향후 중요 이벤트가 발생하거나 신약과제들의 단계가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인다면 투자자들에게 더욱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 적극 소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중에 이슈가 생기면’ 하겠다는 건데, 그러면 투자자 보호의 실효성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LG화학이 금감원 가이드라인 적용을 늦춰선 안 되는 이유다. 

익명을 원한 한 애널리스트는 “제약ㆍ바이오 사업은 언제 신약개발에 성공해 핵심사업 자리를 꿰찰지 알 수 없다는 게 매력”이라면서 “따라서 생명과학 부문이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현재의 상황만으로 판단하는 건 곤란하다”고 꼬집었다. LG화학이 들어야 할 조언이다. 
김정덕ㆍ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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