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폰 구입한 당신도 호갱입니다”

“갤럭시노트10을 공짜로 드립니다.” A씨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평생을 ‘스마트폰 호갱’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공짜폰’을 손에 쥐었지만 A씨의 요즘 일상은 행복하지 않다. 차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라던 5G는 불통이 되기 일쑤고, 매달 내야 하는 통신요금이 생각보다 높기 때문이다. 공짜폰을 산 A씨는 정말 현명한 소비자였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직장인 A씨의 갤럭시노트10 구입기를 따라가봤다. 

A씨는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노트10을 사실상 공짜로 샀다. 하지만 고가요금제의 덫에 걸리는 우를 범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A씨는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노트10을 사실상 공짜로 샀다. 하지만 고가요금제의 덫에 걸리는 우를 범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 9월 12일 오후, 30대 직장인 A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휴대전화 개통했던 대리점입니다. 통신요금 6만원 이상 나오는 고객일 경우 갤럭시노트10 공짜로 드립니다. 희망하시면 문자 남겨주십시오.” 

문자를 읽은 A씨는 복잡미묘한 감정에 빠졌다. 이유가 있었다. 3개월 전 동생이 ‘갤럭시S10 5G’의 개통 소식을 알렸을 땐 마냥 부럽기만 했다. 그럼에도 지갑을 열지 않았다. 신형 스마트폰이 나올 때마다 말솜씨 좋은 판매점 직원에 이끌려 계약을 맺고 호되게 고생한 기억 때문이었다. 스마트폰 교체주기가 잦다 보니, 쓰지도 않는 여러 대의 단말기 할부금을 한꺼번에 낸 적이 많았다.

그랬다. A씨는 ‘호갱’이었다. 아이폰과 갤럭시 시리즈가 세상을 뒤흔들던 시기, A씨는 그 비싼 단말기를 출고가 그대로 샀다. 카페나 밴드 등 폐쇄적인 온라인 공간에서 암암리에 퍼지던 단말기 지원금의 존재를 나중에야 알아챈 그는 혼자서만 속을 끓였다. 그전까진 첨단 IT제품들을 바로 구매해야 성질이 풀리는 ‘얼리어답터’라고 자부했지만 나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이때부터 A씨는 최신 스마트폰 욕심을 버렸다. 신박한 기능을 쫓기보단 적당한 성능의 중저가 단말기를 구입했다. 단말기 지원금을 받는 대신 통신요금 할인을 받는 ‘선택약정할인’으로 이동통신 계약을 맺었다. 

판매자의 달콤한 제안

A씨가 고가 스마트폰에 욕심을 버린 데에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의 영향도 컸다. 이 법은 이통사가 공시한 지원금과 판매점의 15% 추가지원금 외에 단말기 구입가를 보조해주는 행위를 모두 ‘불법’으로 간주한다. 

A씨도 남들처럼 지원금을 잔뜩 받고 스마트폰을 공짜로 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단통법이 시행된 2014년 이후엔 법정 지원금 이상을 얹어주는 판매점을 찾는 게 어려워졌다. 그래서 A씨의 눈엔 이 은밀한 문자 메시지가 남다르게 보였다. 갤럭시노트10은 출고가만 124만8500원에 달하는 최신 스마트폰이었다. 

각종 첨단기술이 집약된 최고의 기종이었다. 그럼에도 이통사가 정한 법정지원금은 50만원을 밑돌았다. 지원금으로 단말기 값을 깎아도 70만원을 훌쩍 넘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걸 공짜로 살 수 있다니. 결국 이 문자는 불법지원금을 주겠다는 걸 암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A씨는 답장을 보냈다. “희망합니다.” 불법지원금의 폐해가 심각하다고 주장하는 건 호갱의 입에서나 나오는 얘기다. 혜택을 보는 ‘일부 소비자’의 범주에 A씨가 포함된다면,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다. 

몇분 뒤 A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신분증 사본을 들고 사무실을 방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주소는 경기도였다. “내가 지금 쓰는 휴대전화를 개통했던 대리점은 서울이었는데….”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호갱 신세를 탈출할 수 있다는 욕심이 앞섰다. A씨는 주소지로 발길을 옮겼다. 겉으론 일반 휴대전화 판매점의 모습이었다. “문자를 받고 왔는데요….” 판매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A씨가 의자에 앉자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판매자와의 소통은 대화 대신 필담으로 했다. 지원금 관련 숫자를 언급할 땐 특히 민감했다. 몇개의 숫자를 쓰고 난 후 A씨가 이해를 했다는 표정을 지으면, 판매자는 그 숫자를 흔적도 없이 지웠다.

판매자는 A씨에게 “불법지원금을 신고하는 ‘폰파라치’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심한 곳에서 실제로 구매를 할 땐 폰파라치나 경찰ㆍ공무원이 아니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 명함이나 재직증명서 등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어찌됐든 판매자의 제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갤럭시노트10 5G 단말기의 출고가 124만8500원에서 법정 지원금(48만3000원)의 차액 76만5500원을 A씨가 현금으로 완납해 단말기를 구입하면, 3일 뒤 A씨가 낸 만큼의 돈을 다시 현금으로 되돌려주겠다.” 

좀 더 쉽게 설명해보자. 판매자는 전산에 A씨가 법정지원금만 받고 나머지 금액을 현금으로 완납했다고 기록한다. 이후 A씨가 낸 단말기 값을 따로 현금으로 돌려준다. 페이백, 이른바 ‘현금완납 개통’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A씨는 최신 스마트폰을 단돈 0원에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A씨에겐 현금 70만원이 없었다. 그러자 판매자는 ‘플랜B’를 제안했다. “현금완납 대신 2년 할부 계약을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페이백 규모가 10만원가량 줄어든다.” 뒤탈 없는 현금완납 대신 할부계약을 선택하는 만큼 불법지원금이 줄어드는 페널티를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A씨는 ‘OK’ 사인을 냈다. 계산기를 두드릴 필요도 없었다. 값도 비싸고 성능도 훌륭한 갤럭시노트10을 단돈 10만원에 살 수 있게 됐는데, 이것저것 따질 필요 없었다. 여기에 새로운 차원의 통신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다니. 만족할 수밖에 없는 계약이었다.

속 터지게 안 터지는 5G

3일 뒤 A씨는 약속대로 현금 66만원을 돌려받았다. 이어 갤럭시노트10 단말기도 배송 받았다. A씨는 뿌듯했다. 최신 공짜폰을 부러운 시선으로만 보다가, 직접 손에 쥐게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공짜폰에 행복해야 할 A씨는 금세 속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단말기 디스플레이 상단의 5G 표시가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5G를 수신할 수 없는 지역에 들어섰을 땐 더 당혹스러웠다. 5G에서 LTE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네트워크가 잠시 끊겼다.

A씨는 5G 세계에 먼저 발을 들인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5G 잘돼?” “아니, 잘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5G 쓰고 있잖아 지금.” “아니 나는 안 써. 설정에 들어가면 ‘LTE 우선모드’라고 있어. 그거 체크하면 돼.” 

5G 신호가 상당히 불안정한 만큼, LTE 신호를 먼저 잡는 ‘LTE 우선모드’를 설정해두라는 충고였다. 실제로 모드를 바꾸니 스마트폰 사용이 훨씬 안정적이었다. 빠른 통신 서비스를 경험하고 싶었지만, 불안정한 서비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단 이게 나아보였다. 하지만 ‘LTE 우선모드를 사용하는데, 비싼 통신요금을 낼 필요가 뭐가 있지’라는 의문이 생겼다. 

A씨는 그제야 계산기를 꺼냈다. 휴대전화를 바꾸기 전, A씨가 내던 단말기 할부금을 더한 전체 통신요금은 월 6만5320원이었다. 매달 60GB가량의 데이터를 쓰는 A씨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써야 안심이 됐다. 그래서 6만9000원의 LTE 무제한 요금제을 선택했고, 선택약정 요금할인(-1만7260원)에 단말기 할부금 1만4580원을 더해서 나온 요금이었다.

하지만 5G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난 뒤 A씨의 요금은 월 12만2893원이다. 5G 무제한 요금제 8만9000원에, 단말기 할부금 3만3893원을 더한 값이었다. 월 통신요금이 6만원가량 오른 셈이었다. 

물론 A씨는 판매점에서 66만원의 페이백을 받긴 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2년간 매달 6만원을 더 내는 건 호갱 신세를 탈출했다고 보기 어렵다. 66만원 깎자고 144만원(추가 통신비 월 6만원×24개월)을 더 지출한 셈이기 때문이다. A씨는 “계약할 땐 왜 몰랐을까”라며 자책했다. 

따지고 보면 단말기 값이 공짜였던 것도 아니다. 66만원을 페이백으로 돌려받은 A씨는 ‘사실상’ 단말기 값을 10만원만 낸 것이지, 전산상에는 76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그래서 연 5.9%에 달하는 단말기 할부이자도 A씨의 몫이었다. 

고가 요금제와 약정의 덫

이동통신시장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A씨가 혜택을 받은 게 아니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A씨에게 66만원의 불법지원금을 쥐어준 판매점 역시 손해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법지원금의 출처는 이통사가 각 판매점에 지급하는 판매 장려금(인센티브)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2017년 1월부터 8월까지 이통3사의 판매점 인센티브 지급액을 분석한 결과, “평균 59.6%의 인센티브가 페이백 재원으로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그렇더라도 이통사는 불법을 저지른 게 아니다. 페이백은 불법이지만, 인센티브는 합법이기 때문이다. 결국 A씨를 합법적으로 ‘호갱’으로 만드는 큰손은 이통사였던 셈이다. 

5G 가입자 경쟁을 벌이는 이동통신시장에서 불법지원금 지급은 은밀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사진=뉴시스]
5G 가입자 경쟁을 벌이는 이동통신시장에서 불법지원금 지급은 은밀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사진=뉴시스]

그렇다면 A씨에게 간접적으로 불법지원금을 쥐어준 이통사는 손해를 봤을까. 아니다. A씨가 더 내야 하는 144만원의 통신요금이 이통사의 수익이다. 여기에 6개월 내에 다른 요금제로 바꾸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안전장치까지 있다. 

이통사로선 돈도 벌고, 손님도 묶을 수 있는 셈이다. 6개월 이후엔 저렴한 요금제로 바꿀 수 있지만, A씨는 고가 요금제를 2년간 유지하는 조건으로 기기 값을 할인받았다. 요금제를 낮추면 그만큼 할부로 내는 기기값이 늘어난다. A씨가 쉽게 요금제를 낮추기 어려운 이유다. 

단말기를 공짜로 받으면서 남는 장사를 한 줄 알았던 건, A씨의 착각이었다. 어쩌면 한국의 이동통신 소비자인 국민 모두가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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