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연속 마이너스(-) 물가

디플레이션까진 아니더라도 준準디플레이션은 맞다는 진단이 나온다. 정부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은 물론 정치권도 긴장해야 한다. 지금은 숫자 대결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사진=뉴시스]
디플레이션까진 아니더라도 준準디플레이션은 맞다는 진단이 나온다. 정부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은 물론 정치권도 긴장해야 한다. 지금은 숫자 대결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사진=뉴시스]

경제는 흔히 인체로 비유된다. 체온으로 몸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듯 물가는 경기를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다. 얼굴 등에 금방 나타나는 고열보다 무서운 것이 저체온증이다. 경제도 과열돼 물가가 오르면 금방 느끼고 대응하지만, 경제 활력이 떨어져 물가가 하락하고 소비가 위축되는 경제 저체온 증상은 한동안 알아차리지 못한 채 디플레이션이라는 중증으로 악화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경제가 바로 이 저체온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9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0.4% 하락했다. 8월(-0.04%)에 이어 두달 연속 마이너스 상승률을 기록했다. 1956년 물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D(디플레이션)의 공포’ 거론 빈도가 부쩍 높아졌다. 디플레이션은 단순한 저물가가 아닌 ‘경기침체와 맞물린’ 지속적인 물가하락을 의미한다. 

정부는 확대해석을 경계하며 낙관론을 편다. 지난해 농산물 가격이 급등했던 것과 비교되는 기저효과에 고교 3학년 대상 무상교육 시행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수요가 부진해 장기간,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물가하락이 아닌 공급 및 정책 요인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설명과 다른 조짐이 적지 않다. 정부가 공급 요인으로 지목한 농산물이나 석유류 등 일시적 가격하락 품목을 제외해도 물가수준이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가장 낮다. 내수경기를 가늠하는 ‘경제체온계’로 불리는 근원물가가 지난 9월 전년 동월 대비 0.6% 상승에 그쳤다. 공급 요인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큰 농산물과 석유류 등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수요 측면의 기조적인 물가 추세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이런 근원물가가 하락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소비가 위축되고 있음이다.

20년 전 1999년에는 외환위기라는 외부 충격으로 근원물가가 마이너스로 급강하했다가 1년여 만에 4%대로 급반등했다. 그런데 최근 근원물가는 뚜렷한 악재가 없는 상황에서 점진적으로 가라앉고 있어 반등 모멘텀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비슷한 징후는 한은이 1년 후 물가가 어떨지 물어 조사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에서도 엿보인다. 9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1.8%로 2002년 통계 조사 이후 가장 낮게 나타났다. 2013년 9월 이후 줄곧 2%대를 유지하던 것이 처음 1%대로 내려앉았다. 정부가 연말에는 반등할 것이라며 제시하는 물가상승률조차 0% 중후반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실물경제다. 1분기 0.4% 역성장에 이어 2분기 성장률도 1.0%에 머물렀다.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5분기 연속 내리막인 가운데 해외투자는 2분기 연속 최대치를 경신했다. 수출은 지난해 12월부터 10달 연속 감소했다. 

이미 현재의 저물가 기조는 경기침체와 함께 하고있음을 알 수 있다. 경기침체 속 저물가는 전형적인 디플레이션 전조 증상이다. 아직 디플레이션 단계는 아니라도 준準디플레이션 상황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배경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전 총재는 인플레이션을 아라비안나이트 ‘램프의 요정’에, 디플레이션은 ‘식인 괴물’에 비유했다. 인플레이션은 말이 통하는 램프의 요정, 지니(Genie)처럼 대응이 가능하지만, 디플레이션은 말이 통하지 않는 식인 괴물, 오거(Ogre)처럼 대응이 쉽지 않으니 사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저체온 증상을 경고하는 체온계의 빨간 불이 깜박이는데, 디플레이션 신호가 아니라고 부인만 하고 있어선 안 된다. 그럴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보기 좋은 지표만 내세우며 낙관론에 빠져 허송하다가는 ‘D의 공포’가 현실화하고 만다. ‘가격하락 기대감 확산→소비 위축→재고 누적ㆍ생산 감소→근로자 감원’으로 이어지는 축소ㆍ위축 경제로의 악순환이 나타나면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져들 수 있다.  

정부는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중증에 빠지기 전에 저물가의 구조적 원인을 면밀하게 점검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재정과 통화정책을 더욱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집행해야 한다. 과감한 규제개혁과 노동시장 유연화 작업으로 성장동력을 살리고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도 긴요하다.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 등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잠재성장률이 주저앉는 가운데 ‘R(Recessionㆍ경기침체)의 공포’와 ‘D의 공포’가 함께 엄습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은 물론 정치권도 긴장해야 한다. 지금 ‘서초동 대 광화문’식 세 대결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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