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특허의 ‘악순환’

지난 9월 30일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의 시내면세점 ‘갤러리아면세점63’이 폐점했다. 2016년 문을 연 지 3년 만이다. 한화그룹이라는 대기업이 적자 끝에 면세사업을 접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황금알’을 기대하고 뛰어든 기업은 많지만 과실을 얻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걸 방증하기 때문이다. 11월 시내면세점을 또 늘리는 정부가 현실을 모른다는 평을 듣는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갤러리아면세점63 폐점의 함의를 취재했다. 

여의도 63한화생명빌딩에 입점했던 갤러리아면세점63이 지난 9월 30일 폐점했다. [사진=연합뉴스]
여의도 63한화생명빌딩에 입점했던 갤러리아면세점63이 지난 9월 30일 폐점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9월 30일 오전, 여의도 63한화생명빌딩(63빌딩)으로 향했다. 폐점을 결정한 갤러리아면세점63의 ‘민낯’을 보기 위해서였다. 63빌딩에 들어서기 전 입구 주변에서 만난 이에게 면세점에 가봤는지 물었다. 그는 손을 내저으며 올라가겠다는 기자를 말렸다. “거기 지금 아무것도 없어요. 매대고 뭐고 싹 빠졌다니까. 갈 필요 없어요.”

9월 30일은 갤러리아면세점63의 공식 폐점일이였다. 상품 구매는 9월 27일 먼저 종료됐다. 매장 내 매대는 구매 종료일 전후로 철수했다. 폐점 당일은 매장 정리와 함께 남은 제품의 공항 인도만 진행됐다. 이 면세점은 한때 여의도 랜드마크 63빌딩에서 황금알을 낳으리란 희망을 품었지만 사업기간(5년)마저 채우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갤러리아면세점63은 한화그룹의 유통계열사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운영했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의 면세점 철수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2월에도 제주공항 면세점을 조기종료했다(사업권 만료일 2018년 4월). 2016년 오픈한 갤러리아면세점63은 누적적자만 1100억원이 넘는다. 회사 측은 “당분간 면세사업을 추진할 계획이 없다”며 “내년 2월 문을 여는 갤러리아 광교점(백화점)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쨌거나 참 이상한 일이다. 유통에서 가장 중요한 건 ‘브랜드 파워’다. 샤넬 등 유명 브랜드를 유인해야 하는 면세점은 특히 그렇다. 갤러리아면세점63은 한화와 갤러리아라는 강력한 브랜드가 합쳐진 면세점이었다. 63빌딩이라는 상징적인 장소도 ‘큰 힘’이었다. 그런데도 갤러리아면세점63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 채 문을 닫고 말았다. 우리가 이 면세점의 폐점 이유를 냉정하게 짚어봐야 하는 이유다. 

회사 측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경쟁업체 증가 등 예상치 못한 외부 변수에 일일이 대응하는 게 어려웠다”고 진단했다. 일견 옳은 분석이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2016년 사드 등은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에 의존하던 면세점에 타격을 입혔다.

유커가 가파르게 줄자, 이들을 노리고 2015년 시장에 진입한 신세계DF(신세계면세점), HDC신라면세점(신라아이파크면세점),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갤러리아면세점63), 두산(두타), 하나투어(SM면세점) 등 5곳은 출혈경쟁을 벌였다.[※ 참고: 정부는 2015년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 5개를 내줬다.] 

문제는 갤러리아면세점63이 이런 변수 탓에 폐점했느냐다. 유커가 줄고 경쟁자가 늘어서 폐점했다면, 다른 면세점도 ‘죽음의 바다’에 함께 빠졌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2015~2016년 면세시장에 뛰어든 기업 중 신세계면세점과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은 성장세를 탔다. 특히 신세계면세점은 빅3(롯데·신라·신세계)에 포함되면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외부변수 외에도 다른 문제점이 있었다는 얘기다. 

대기업도 생존하기 어려운 시장 

대체 그건 뭘까. 답을 찾기 위해선 면세시장의 특수성을 살펴봐야 한다. 면세시장은 1980년 특허를 받은 롯데면세점과 1986년 특허를 획득한 신라면세점이 20년 넘게 지배해왔다. 오랜 기간만큼 이들은 몸집을 키웠고, 기득권이 됐다. 실제로 롯데면세점(41%·이하 2018년 기준)과 신라면세점(28%)의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70%에 육박한다.

이쯤 되면 면세시장은 롯데와 신라의 ‘아성’이라고 해석하는 게 맞다. 정재완 한남대(무역학과) 교수는 “(면세시장에 먼저 진출한) 롯데와 신라는 오랜 세월 축적해온 노하우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며 “시장 상황과 명품 유치 등이 실적을 좌우하는 면세산업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신규 업체가 이들(롯데·신라)의 경쟁력을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갤러리아면세점63과 비슷한 시기에 시장에 뛰어든 신세계면세점은 어떻게 성공한 걸까. 답은 간단하다. 백화점의 힘이다. 무엇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있는 명동에 면세점을 만들어 ‘오프라인 채널’을 하나로 잇는 데 성공했다. 이는 신세계면세점의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데 한몫했고, 명품을 유혹해냈다. 

2015년 이후 사업권을 취득한 업체 중 신세계만이 샤넬·에르메스·루이비통을 전부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백화점이란 강력한 유통망을 갖고 있지 않다면 면세점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애기다. 한편에선 갤러리아면세점63 역시 ‘갤러리아’라는 백화점이 주축이 아니었냐고 반론을 편다. 

하지만 한화 측은 신세계와 같은 전략을 쓰지 않았다. 갤러리아백화점이 있는 압구정동이 아닌 ‘여의도’를 선택했다. 아쿠아리움·전망대 등이 있어 관광객의 체류시간이 긴 것으로 유명한 63빌딩을 노린 수手였다.

하지만 이 전략은 갤러리아백화점의 유통망과 면세점을 분절하는 역효과를 내는 데 그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뜩이나 줄어든 유커는 여의도로 넘어오지 않았다.[※ 참고: 신세계면세점과 같은 전략을 취한 곳은 HDC신라면세점과 현대면세점이다. 용산아이파크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을 면세점을 잇는 축으로 활용했다.] 

한 시내면세점 관계자는 “면세업계 분위기가 바뀌면서 63빌딩의 메리트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유커는 여행사가 내려준 면세점에서만 빠르게 구매했다. 이때는 면세점 주위에 관광버스가 들어설 넓은 부지를 갖췄는지가 중요했다. 하지만 관광객이 아닌 따이공代工(중국인 보따리상)이 중심이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장사꾼인 이들은 잘 팔리는 브랜드가 입점한 면세점들을 찾아다닌다. 주위에 다른 면세점이 없는 여의도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도 시내면세점 또 …

면세점 업계의 말을 들어보자. “면세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면세점을 오랫동안 운영했다는 건 남들이 잘 모르는 노하우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도 좋다는 것이다. 그게 1~2년 안에 만들어지겠는가. 정부가 특허권을 남발할 때 유통업체 사람들이 이 시장을 너무 우습게봤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가 시내면세점을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오는 11월 시내면세점 특허권 6개(서울 3개, 인천 1개, 광주 1개, 중소·중견기업 대상 충남 1개)를 발급한다. 서울 시내에만 면세점이 총 16개가 되는 셈이다. 국내 면세점 매출은 지난 8월 2조1845억원을 기록하는 등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질적 성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위험해 보인다. 

한 후발주자 면세점 관계자의 말이다. “면세점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사라진지 오래다. 신규 시내면세점 특허가 나와도 과연 입찰하는 기업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처럼 갤러리아면세점63의 폐점은 함의含意가 크다. 국내 면세점 시장의 일그러진 민낯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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