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범위만 넓혀도 답 보이는데…

수출이 크게 늘지 않았다. 수입은 눈에 띄게 줄었다. 무역수지는 흑자다. 지난 2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9월 수출입 동향’ 자료의 요지다. 일부에선 ‘불황형 무역흑자’라는 우려를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정작 산자부는 ‘올해 들어 무역수지 최고치’라고 진단했다. ‘정부 정책 덕분’이라는 평가도 빼놓지 않았다. 제대로 된 분석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답을 풀어봤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9월 수출입 동향’을 살펴본 후 “수출 활력 회복 조짐이 발견됐다”고 분석했다.[사진=연합뉴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9월 수출입 동향’을 살펴본 후 “수출 활력 회복 조짐이 발견됐다”고 분석했다.[사진=연합뉴스]

“미중 무역분쟁의 장기화, 반도체 단가 회복 지연과 유가 변동성 확대 등 세계 무역환경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어려운 여건에도 지난 8월보다는 다소 개선됐다. 9월 수출 단가 하락에도 전체 물량은 견조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일평균 수출과 무역수지가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수출 활력 회복 조짐도 발견됐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일 ‘9월 수출입 동향’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9월 수출 실적은 8월보다 개선됐다. 9월 전체 수출액은 447억1200만 달러로 8월(441억2900만 달러)보다 1.32% 늘었다. 일평균 수출액(21억8000만 달러)과 무역수지(59억7300만 달러)가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맞다. 

성 장관은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정부의 공치사’를 덧붙였다. “올해 초부터 ‘무역 전략 조정회의’를 즉각 가동해 수출 총력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민관합동·범부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다. 범부처 ‘경제 활력 대책회의’를 통해 ‘수출 활력 제고 대책(3월)’ ‘소비재 수출 활성화 방안(6월)’ ‘수출시장 구조혁신 방안(9월)’ 등을 순차적으로 발표하는 등 부처 간 지원체계를 견고히 가동했다. 향후 단기 수출 활력 제고와 함께 우리 수출의 근본적 경쟁력 강화와 수출 체질 개선을 위한 수출구조 4대(기업·시장·품목·인프라) 혁신을 지속 추진하겠다.”

성 장관의 얘기를 종합하면 대략 이렇다. ‘현재 무역환경은 매우 좋지 않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무역 성과는 괜찮은 편이다. 수출 활력이 회복되고 있다는 시그널도 있다. 그 배경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과 노력이 있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 자화자찬을 한 거나 다름없다. 산자부 자료엔 이렇게 해석할 만한 분석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산자부 “수출 활력” 홍보

산자부는 크게 6개 항목으로 수출입 동향을 분석했는데, 그 항목들 안에는 “9월 수출 전월보다 개선” “9월 일평균 수출 올해 최고 기록, 7월부터 지속 상승 중” “9월 무역수지 올해 최고 수준 기록, 수출 호조 시기인 2018년 평균 무역수지(58억 달러)보다 높은 수준” “1~9월 누적 물량도 증가” “신수출성장품목 호조세” “시장 다변화 노력 영향으로 신북방지역 수출 증가” 등의 문구들이 넘쳐난다. 

 

이 분석들만을 놓고 보면 현재 한국의 수출입 현황은 희망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먼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9월까지 지난 13개월간 월별 수출입 실적을 놓고 비교해보면 9월 수출액은 4번째로 적다. 특히 지난 5월 이후부터는 매월 수출액이 조금씩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는 수준이다. 수출 증감률 추이(전년 동월 대비)는 10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9월엔 -11.7%였다. 

무역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수입도 봐야 한다. 9월 수입액은 387억4000만 달러다. 수출과 같은 기간을 놓고 월별 수입액을 비교해보면 올해 2월(366억1000만 달러)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다. 수입 증감률 추이 역시 올해 4월을 제외하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수입 현황에서 한가지 주목할 점은 원유·석유제품·가스·석탄 등 주요 에너지 자원의 수입량 감소가 눈에 띈다는 거다. 8월과 비교할 때 원유 수입량은 21.4%, 석유제품은 18.7%, 가스는 21.5%, 석탄은 30.5% 줄었다. 전년 동월 대비로도 확연히 감소했다. 이는 에너지 수요의 감소가 수치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는데, 가능성은 여러 가지다. 먼저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늘었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신재생에너지의 1차 에너지 대비 공급 비중은 5.8%에 불과했다. 전년 대비 0.3%포인트 오른 수준이다. 

수입액 보면 불황 우려

그렇다면 기업들이 평균보다 에너지를 덜 쓰고 있다는 건데, 이는 제조업 침체와 연관 지을 수 있다. ‘소비위축→시장침체→제조업 생산량 감소→에너지 수입량 감소→경기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됐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거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제조업 생산은 전월 대비 1.5% 감소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3.0% 줄었다. 

 

이쯤 되면 불안한 단어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불황형 무역흑자’다. 물론 섣불리 판단하긴 힘들다. 문제는 월별 수출입 실적 현황을 조금만 더 유심히 들여다보면 낙관보다는 우려가 더 상황에 맞을 듯한데, 산자부와 주무 장관은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것도 모자라 공치사까지 하고 있다는 거다. 

김익성 동덕여대(EU통상) 교수는 “우리나라는 수출로 소득을 얻고, 이 소득을 수입에 사용하는 구조”라면서 “따라서 수입 감소는 수출 감소로 인한 소비 감소의 방증일 수도 있어 결코 한국 경제에 긍정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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