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측 실패의 파급효과

가계의 대출 비용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에서 금융위원회가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을 출시했다. 경기침체 때문인지 예상보다 많은 신청자가 몰렸다. 그만큼 가계부채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너무 많은 신청자가 몰린 탓에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의 수혜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수도권 신청자가 애먼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논란도 커지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서민형 안심전환대출 접수가 9월 29일 마감됐다. 숱한 논란에도 예상보다 많은 신청자가 몰렸다.[사진=연합뉴스]
서민형 안심전환대출 접수가 9월 29일 마감됐다. 숱한 논란에도 예상보다 많은 신청자가 몰렸다.[사진=연합뉴스]

“서민과 주택 실수요자들의 금융비용 부담을 경감하겠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8월 23일 야심차게 출시한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의 신청이 9월 29일 마감됐다.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은 말 그대로 서민들이 보유한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전환하겠다는 취지의 정책금융상품이다. 골자는 이렇다. “변동금리와 준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최저 1%대 저금리의 고정금리 상품으로 전환한다.” 

물론 자격요건이 있다. 부부합산소득이 8500만원 이하(2자녀 이상 부부는 1억원)이고, 시가 9억원 이하의 주택을 1채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만 5억원 한도 내에서 서민형 안심전환대출로 전환할 수 있다. 정책 모기지론이나 고정금리 대출을 받은 사람은 제외된다. 대출금리는 1.85~2.20% 사이에서 산정될 전망이다.

2015년 금융당국이 출시했던 안심전환대출과 기본 골격은 같다. 다만, 자격요건에 소득 수준이 추가되면서 ‘서민형’이라는 말이 붙었다. 그래서인지 출시 전부터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을 두고 말이 많았다. 안심전환대출은 사실상 실패한 정책상품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당국이 안심전환대출을 출시한 이후 기준금리가 인하됐고 그 결과,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안심전환대출의 고정금리보다 낮아졌기 때문이다.[※참고 : 2015년 안심전환대출의 금리 수준은 2.53~2.65%였다. 이듬해 시중은행 대출상품의 금리는 이보다 낮은 2.62%에서 형성됐다.] 

 

문제는 이번에도 기준금리가 인하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금융전문가들은 국내외 경기가 둔화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한국은행이 앞으로 두번 이상 기준금리를 낮출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런 우려에도 서민형 안심전환대출 신청 건수는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 서민형 안심전환대출 신청이 마감된 다음날인 지난 30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총 신청건수는 63만4875건에 달했다. 대출금액으로 따지면 73조9253억원이다. 

문제는 수요가 예상을 크게 웃돈 탓에 또다른 논란이 터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금융위가 ▲예상 수요 ▲주택금융공사의 재원여력 등을 감안해 산출한 총 대출한도는 20조원이다. 총 신청대출금액이 70조원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50조여원이 제외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수요 예측 실패한 금융위원회

그렇다면 금융위는 20조원이란 한도 안에서 대환 받을 사람을 솎아내야 한다. 선정 기준은 주택가격이다. 집값이 낮은 신청자부터 뽑는다는 거다. 금융위의 계산대로라면 집값이 2억1000만~2억8000만원을 넘는 신청자들은 당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자격요건에 미치지 못하거나 자진해서 포기하는 신청자가 없으면 2억1000만원, 미달자나 포기자가 40%(금융위가 예상한 최대치) 발생하면 2억8000만원이다. 당첨자수는 약 27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총 신청자수 63만4875명 중 절반이 넘는 36만여명이 탈락된다는 얘기다.

이 가운덴 수도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포함될 공산이 크다. 2억1000만~2억8000만원의 집값 기준 때문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수도권 주택의 평균매매가격은 4억2708만원이었다. 

금융위는 “자격 요건이 강화되고, 기준금리가 추가 인하될 가능성을 고려해 수요를 예측했지만 신청자 수가 예상보다 3.5배가량 많았던 걸 인정한다”면서도 “다만, 간소화 신청이 많았기 때문에 자격요건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예견된 결과라는 주장도 많다. 2015년 안심전환대출을 출시했을 때에도 신청자는 34만5000여명, 대출금액은 총 33조9000억원에 달했다. 온라인 신청이 가능해진 지금 신청자가 2배가량 급등한 건 어쩌면 수순이다.

더구나 2015년엔 제2금융권 대출을 안심전환대출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이번엔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층도 대환할 수 있도록 제2금융권 대출을 포함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2019년 안심전환대출의 수요 예측에 사실상 실패했다. 

이름만 서민형인 안심전환대출

업계 관계자는 “2015년 때보다 더 많은 신청자가 몰릴 만한 요인이 있었음에도 이를 대비하지 않은 건 금융위의 잘못”이라면서 “재원 여력이나 채권 시장에 미칠 영향이 우려됐다면 애초에 자격요건을 높여 수요가 몰리지 않도록 제한했어야 했는데 희망고문만 한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2억원대 이하 주택 보유자만 혜택을 받게 된다면 사실상 수도권에 거주하는 이들은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수도권 거주자들은 되레 역차별을 받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맥락에서 가계의 금융비용부담을 완화하겠다는 당초 목적을 위해선 대출한도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경영학부) 교수는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의 목적은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꿔 변동금리와 고정금리의 비중을 균형 있게 맞추겠다는 건데, 수급이 맞지 않다보니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만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당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대출한도를 늘리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고 설명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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