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불공정 채용 논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고용세습’ 통로가 됐다.” 감사원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일부 비정규직이 불공정 채용된 후 정규직으로 전환됐다고 발표하자 나오는 비판이다. ‘고용세습’이란 말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정규직 전환이 ‘불공정 채용’의 통로가 된 건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과정의 공정은 정의의 기본 요소이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서울교통공사 불공정 채용 논란을 들여다봤다. 

정규직 전환에 목숨을 걸고 투쟁한 진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공정 채용 사례를 보면서 자괴감을 느낀다.[사진=뉴시스]
정규직 전환에 목숨을 걸고 투쟁한 진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공정 채용 사례를 보면서 자괴감을 느낀다.[사진=뉴시스]

“무기계약직을 일반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졸속으로 처리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 아닌가. 더구나 무기계약직은 이미 정규직인데, 일반직으로 전환하는 게 타당한가(자유한국당).” “감사원이 무기계약직의 일반직 전환 과정을 문제 삼은 걸 동의할 수 없다. ‘중규직(차별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을 공정하게 처우하려는 정책이다. 감사원의 이해가 부족했다(박원순 서울시장).” 17일 국정감사 도중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고받은 논박이다. 

그런데 이 논박은 핵심을 벗어나 있다. 그럼 사실관계부터 명확히 하고, 논란의 핵심이 무엇인지 따져 보자. 9월 30일 감사원은 5개 공기업ㆍ공공기관(서울교통공사ㆍ한국토지주택공사ㆍ한전KPSㆍ한국산업인력공단ㆍ인천국제공항공사)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관리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5개 기관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 비정규직 3048명 가운데 333명(10.9%)이 내부 임직원과 친인척(4촌 이내) 관계였다. 이들 중 일부는 정규직 전환 전에 불공정한 방법으로 기간제나 무기계약직에 채용됐다.” 

각 기관의 불공정 채용 수법도 다양했다. ▲위탁업체 직원을 직접고용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던 공사 임직원들이 위탁업체 관계자들에게 친인척의 입사를 청탁 ▲비정규직 공채에선 직원들이 면접관으로 참여해 친인척에게 최고점 부여 ▲채용담당자에게 자녀 등의 채용 청탁 ▲채용공고 절차조차 없이 직원의 친인척 채용 ▲채용절차가 필요한 계약직에 결원이 생겼음에도 직원의 친인척을 채용절차가 필요 없는 일용직 노동자로 채용 등이다. 당연히 감사원의 지적은 ‘왜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불공정 입사자들을 합리적으로 걸러내지 않았느냐’에 맞춰졌다. 

불공정 채용 지적한 감사원

2017년 7월 서울교통공사 등 11개 투자ㆍ출연기관에서 근무하는 무기계약직 2442명을 일반직으로 전면 전환한(무기계약직 제로화 정책) 서울시는 당연히 발끈했다. [※참고 : 무기계약직은 비정규직과 달리 고용은 안정돼 있지만, 완전한 정규직과는 여러 면에서 차별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반쪽짜리 정규직으로 통한다. 그래서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서울교통공사의 정책과 나머지 4개 기관(비정규직→무기계약직)의 정책은 성격이 다르다.]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보다 한발 앞서 나간 서울시의 정책에 따라 서울교통공사는 2017년 9월부터 12월까지 넉달간 노사합의를 거쳐 지난해 3월 무기계약직 1285명을 일반직 신규채용 방식으로 일괄 전환했다. 근무기간 3년 미만(1012명)은 7급보, 3년 이상(273명)은 7급으로 구분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 말부터 언론을 통해 서울교통공사 일반직 전환 대상자 일부가 애초에 불공정하게 비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채용됐고, 이후 일반직으로 전환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책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감사원에 먼저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이후 감사원은 ‘(채용)과정상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냈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감사원 결과에 발끈하고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시는 현재 감사원 감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시의 공식입장을 읽어보자. “친인척 채용비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채용비리의 위법성도 확인되지 않았다. 감사원이 구체적인 비위사실 적시나 별도의 징계처분을 내리지도 않았다.” 서울시는 일부 불공정 채용을 ‘친인척 채용비리’가 아니라 ‘개인의 일탈’로 판단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재감사를 요청했다. 참고로 감사원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시가 발끈한 이유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감사원이 지적한 ‘친인척 관계’ ‘불공정 채용’ 등 두가지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먼저 ‘친인척 관계’ 문제부터 보자. 흥미로운 건 이 키워드는 ‘불공정 채용’과 붙으면 마치 ‘친인척 관계=불공정 채용’이라는 공식을 연상시킨다는 거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일반직 전환 대상자가 기존 직원과 친인척 관계에 있다고 해서 이들을 모두 불공정 채용으로 보는 건 무리”라고 설명했다. 직장 내 결혼 등이 있을 수도 있으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사실 과거 현장직군에선 결원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인력을 대체하기 위해 내부 직원의 친인척이나 지인이 임시로 투입하는 관행이 종종 있었다. 일자리가 넘쳐나던 시절엔 별 문제가 안 됐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이런 관행은 ‘불공정 채용’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문제는 서울교통공사에서 최근까지도 이런 관행이 있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통계를 보면 그렇다. 먼저 일반직 전환 대상자 1285명 중 내부에 친인척이 있는 근로자는 192명이다. 비율로 따지면 14.9%, 10명 중 1.5명가량은 친인척으로 얽혀있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이런 친인척이 근속연수 3년 미만인 근로자 중에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거다. 친인척이 있는 근로자 192명 중 67.2%에 해당하는 129명의 근속연수가 3년 미만이다. 이는 채용과정에서 ‘친인척 찬스’가 작동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보수언론이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고용세습’이다. 

둘째는 ‘불공정 채용’ 문제다. 이 부분 역시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반박할 여지가 많지 않다. 임시 투입됐든 오래 근무했든 일부에서 불공정 채용과정이 있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위탁업체 직원을 직접고용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던 공사 임직원들이 위탁업체 관계자들에게 친인척의 입사를 청탁한 일도 있어서다. 다만, 이 문제가 근로자만의 잘못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불공정 채용이 판을 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올해 초 발표한 ‘공공기관 채용실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1205개 공공기관에서 적발된 채용비리가 182건이었고, 수사를 의뢰한 것만도 36건이었다. 대부분 신규채용 과정(86.8%)에서 일어났다. 채용비리 연루자는 대부분 임원(2.4%)보다는 직원(97.6%)이 많았다. 이는 공기업ㆍ공공기관의 도덕성 하락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서울교통공사에 ‘너희만 잘못했어’라고 비난의 화살을 쏘기엔 불공정 경쟁 문화가 지나치게 확산돼 있는 셈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감사원 결과에 불복한다면서 재감사를 요청했다.[사진=뉴시스]
박원순 서울시장은 감사원 결과에 불복한다면서 재감사를 요청했다.[사진=뉴시스]

결국 서울교통공사 정규직 전환 정책의 문제는 하나로 귀결된다. 친인척이 됐든 지인이 됐든 ‘불공정 채용’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공정 채용’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제2 혹은 제3의 서울교통공사는 언제나 등장할 수 있다는 거다. 실제로 다양한 공공기관 심지어 고용노동부에서조차 채용비리 사례가 적발되고 있다. 

정규직 전환, 무임승차 막아야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 역시 감사원 결과를 “100% 틀렸다”고 주장해선 안 된다. 진영이나 해석이 달라도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다음이 있다. 김성희 고려대(노동대학원) 교수는 “사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내용면에서나 정책 추진 과정에서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서 “물론 현실적인 제약도 고려해야겠지만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다양한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하면서 가야 정규직 전환 정책의 효과도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비정규직 노조 간부인 A씨는 이번 감사원 결과를 확인한 후 “몹시 답답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득권층에 의해 벌어지는 불공정 경쟁이 이미 사회 전반에 퍼져 있고, 이는 매우 공공연하다. 이번에 조국 사태로 인해 알게 된 것처럼 그다지 잘못됐다는 인식마저 없다. 여기에다 공기업ㆍ공공기관(원청)과 외주업체와의 관계는 철저히 주고받으며 돕는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를 청산하지 않고 진행되는 정규직 전환 정책은 온 힘을 다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해온 사람들 속에 기득권이 무임승차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과 같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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