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흥미로운 변신

상사商社가 할 줄 아는 게 ‘트레이딩’이 전부였다는 건 옛날 얘기다. 이제는 망고농장을 가꾸고,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자동차를 빌려주기도 한다. 주요 사업이었던 트레이딩에서 벗어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는 거다. 리스크도 있지만 기대요인도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상사의 흥미로운 변신을 취재했다. 

제조기업들이 수출 역량을 강화하면서 트레이딩이 주력이었던 상사들이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조기업들이 수출 역량을 강화하면서 트레이딩이 주력이었던 상사들이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때 이런 명제가 있었다. “종합상사 매출을 보면 해당 그룹의 수출량이 나온다.” 1970~1990년대 종합상사가 수출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던 때의 얘기다. 틀린 말은 아니다. 과거엔 상사가 그룹 계열사들의 수출입 업무를 도맡아 했기 때문이다. 상사가 제품을 사줄 구매자를 찾고, 제품을 보내고, 대금을 받아주는 것은 물론, 사후관리까지 책임졌다는 거다. 상사는 말 그대로 ‘트레이딩 전문가’였다. 

하지만 요즘엔 상사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수출액 순위 상위권을 휩쓸던 상사들이 2000년대 들어 차트에서 아예 사라진 건 단적인 예다. 상사들의 속사정이 달라졌기 때문인데, 이유는 별 다른 게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제조업체들이 비용을 절감하고, 수출 역량을 강화하면서 직접 수출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출입 업무를 대신 해주고 수수료를 받던 상사의 역할이 급격하게 축소됐다는 얘기다. 상사들이 주요 사업이었던 트레이딩 비중을 낮추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종합상사들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면 트레이딩에 국한하지 않고 사업다각화에 힘쓰고 있다는 흔적이 드러나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건 ‘자원 개발’과 ‘오거나이징’ 사업이다. 자원 개발이란 광구 개발에 직접 참여해 석탄이나 석유ㆍ천연가스를 비롯한 자원을 발굴해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자원 개발을 통해 톡톡한 효과를 보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2010년 미얀마 가스전 개발에 착수해 2013년 7월 판매를 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매출은 2013년 17조1087억원에서 이듬해 20조4078억원으로 부쩍 커졌다. 

 

오거나이징은 발전소ㆍ플랜트 공사 등의 프로젝트를 기획ㆍ운영하는 건데, 쉽게 말하면 물건이 아닌 프로젝트를 트레이딩하는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가령, 발전소 건설 프로젝트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상사는 금융을 조달하고 발전소를 짓는 데 필요한 건설사ㆍ기자재업체 등 참여자를 확보해 발주를 따내는 식이다.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관리ㆍ조율하는 역할을 맡는 것은 물론, 지분을 투자해 직접 발전소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자원 개발이나 오거나이징 사업에도 리스크가 없진 않다. 무엇보다 자원 개발은 원자재 가격의 변동에 따라 실적이 크게 좌우될 수 있다. 사업장이 해외에 있다 보니 현지 이슈가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예멘에 있는 현대종합상사의 액화천연가스(LNG) 가스전은 내전으로 인해 2015년부터 생산이 중단된 상태다. 언제 재가동될지도 미지수지만 매해 들어가는 수억원대의 관리비도 만만치 않다. 

LG상사도 비슷한 이유로 잠정 중단된 사업이 있다. 지난 2016년 LG상사는 LG전자와 LG화학, LG이노텍 등 계열사의 기술력을 모아 이란과 함께 전기차를 개발하겠다는 사업을 야심차게 추진했으나, 이란이 경제제재를 받으면서 3년째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오거나이징 사업도 불안요소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상사 한 관계자는 “통상 상사를 끼고 하는 프로젝트는 안정성이 낮아 리스크가 큰 곳이 많은데, 발주처가 딴죽을 걸거나 공사기간이 늦춰지기 시작하면 감당해야 할 충당금이 상당하다”면서 “최근엔 안정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면 잘 안하려고 하는데, 건설사들도 비용 절감을 위해 스스로 수주에 나서는 곳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상사들은 안정적인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식량 자원’과 ‘신재생 에너지’ 분야는 상사들이 집중 투자하고 있는 새 먹거리다. LG상사와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선택한 식량 자원은 ‘팜(palm)’이다. 팜 열매에서 추출하는 팜오일을 생산하겠다는 건데, LG상사는 2009년 처음 팜 사업에 진출한 이후 지난해엔 인도네시아에 있는 2개 팜 농장을 추가로 인수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팜 농장과 더불어 지난 9월 우크라이나에 곡물 수출터미널을 세우면서 식량 사업을 확장했고, 현대종합상사는 캄보디아에 있는 망고농장에서 수확한 망고를 오는 11월부터 본격 수출할 계획이다. 반면 삼성물산은 지난해 캐나다에 풍력ㆍ태양광 발전 단지를 완공하며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기업별로 차별화된 사업전략을 내세우고 있는 곳도 있다. SK네트웍스는 렌털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2016년 동양매직, 올해 AJ렌터카를 인수하며 자동차ㆍ가전렌털 사업 규모를 키웠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종합상사라는 과거의 형태에 얽매이기보단 세계 경제가 성장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읽어내야 한다”면서 “이런 맥락에서 홈케어와 모빌리티를 중심으로 한 공유경제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다”고 설명했다.

그밖에 완성된 자동차를 분해했다가 현지에서 다시 조립해 판매하는 KD사업도 현대종합상사만의 사업 아이템이다. 현대종합상사 관계자는 “일부 국가에선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자동차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그런 곳에선 KD사업을 통해 자동차를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상사는 카카오 산하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의 운영자로 참여해 새로운 먹거리를 물색 중이다. 

 

현대종합상사는 망고사업을 미래 성장동력 중 하나로 삼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현대종합상사는 망고사업을 미래 성장동력 중 하나로 삼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직 상사들의 실적에서 트레이딩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상사들이 발굴하고 있는 먹거리가 확실한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거다. 그럼에도 상사의 변화는 흥미롭다. 수출 대행을 통해 수수료를 받던 게 주요 사업이었다면 이제는 직접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상사의 트레이딩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전개해야 한다”면서 “과거 남의 물건을 트레이딩해 수수료를 받는 구조로는 비전이 없기 때문에 이제는 상사가 직접 제품을 생산해 트레이딩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보면 이는 리스크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상사의 변신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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