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없애려면…

그동안 직장 내 괴롭힘은 개인 간 문제로 치부돼 왔다. 괴롭힘을 당해도 마땅히 도움 받을 곳이 없으니, 괴롭힘을 그저 견디는 직장인이 많았다. 그런데 지난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일부 피해 근로자들이 용기를 갖고 목소리를 내 피해사실을 알린 덕분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정착하는 데도 피해 근로자가 목소리를 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노윤호 변호사의 기록記錄, 두번째 편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두달만에 800건가량의 신고가 접수됐다.[사진=뉴시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두달만에 800건가량의 신고가 접수됐다.[사진=뉴시스]

얼마 전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제목의 TV 드라마가 방영됐다. 웹툰이 원작인 이 드라마는 ‘내 곁에 있는 타인이 지옥이 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런데 타인이 지옥이 될 수 있는 건 드라마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일삼는 직장상사, 직장동료는 피해 근로자에게 그야말로 ‘지옥’이다. 

직장 내 괴롭힘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가 된 사건이 있다. 지난해 2월 한 대형병원 간호사가 ‘태움’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태움이란 단어는 병원 간호사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다.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에게 업무상 지시나 교육을 명목으로 가하는 정신적ㆍ육체적 괴롭힘을 의미한다. 태움이란 단어의 유래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것이라니, 얼마나 끔찍한가.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자신을 간호사라고 밝힌 이가 쓴 글이 올라왔다. 자신이 직접 겪었던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글이었다. 해당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이 단순한 갈등을 넘어서, 얼마나 저열하게 이뤄지는지 또 그로 인해 피해자가 당하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가늠해보기 위해서다. 

우선 빅5 병원에서 간호사 절반 이상이 1년 안에 그만둠. 스테이션 안에서 환자 앞에서 혼내 인격적으로 말살. 자기 잘못도 뒤집어씌우기. 말도 안 되게 많은 분량을 말도 안 되게 짧은 시간에 끝내게 하기.(마치 100m를 3초 안에 뛰게 하고, 학교에서 안 배웠냐는 식) 사람이 1분이라도 쉬는 꼴을 못 봄.

처음부터 수량을 알고 있는데, 틀리게 말하고 수량 체크하라고 시킴.(총 800개인데 780개라고 말하고 빈 20개를 찾아내라는 식) 피해자가 혼자면 부모 욕하고, 커플이면 애인 욕하고, 임신하면 배속의 아기를 욕함. 캐비넷에서 태움하는 애 물건 다 꺼내고 꺼지라고 함.

가슴팍, 배 때리기, 물 채워서 얼린 고무장갑으로 때리기. 물어봤을 때 말 안하면 말 안 한다고, 벙어리냐고 추궁하고, 말 하면 ‘이 x, 입싼 x’이라고 ‘입을 xx 버리고 싶다’고 말함. 차트판은 흉기임. 정수리 찍기, 귀 찍기, 코 꼬집기 등. 탕비실에서 다 보고 있는데 ‘나 OO(피해자) 때문에 짜증났잖아. 죽여 버릴 뻔 했어 진짜’라며 모두 앞에서 망신주기.

그런데 이런 직장 내 괴롭힘은 나와 거리가 먼 일부 사람들이 겪는 일이 아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 결과(2017년), 직장인 10명 중 6명(66.3%)이 ‘최근 5년 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이들 중 절반(30.4%)가량이 2회 이상 괴롭힘을 겪었다. 상습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직장인도 전체의 7.0%에 달했다. 

하지만 그동안 직장 내 괴롭힘은 피해 근로자와 가해 근로자 개인 간의 갈등으로 치부돼 왔다. 회사에서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개인 문제이니 개인 사이에서 해결하라”며 쉬쉬하고 감추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제 직장 내 괴롭힘은 개인 간의 갈등이 아니다. 지난 7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ㆍ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법률 용어가 됐고, 제도권 내에서 다뤄지게 됐다. 근로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줄뿐만 아니라 생명까지 빼앗아갈 수 있는 직장 내 괴롭힘이 중대한 문제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셈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사용자에게 고발할 수 있다.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해야 한다.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에는 피해 근로자가 요청하면 근무 장소 변경, 배치 전환, 유급 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간호사 사회에 만연한 태움 문화에 희생 당하는 피해자가 적지 않다.[사진=연합뉴스]
간호사 사회에 만연한 태움 문화에 희생 당하는 피해자가 적지 않다.[사진=연합뉴스]

이뿐만이 아니다. 가해 근로자에게도 징계, 근무 장소 변경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만약 피해 근로자나 신고자에게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개선할 점 많은 금지법 

물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가해 근로자를 직접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또 어느 범주까지 직장 내 괴롭힘에 포함할 건지 판단 기준도 모호하다. 하루아침에 모든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느리지만 하나씩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분명 의미가 있다.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귀 기울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법과 제도도 마련됐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피해를 입은 근로자들이 용기를 갖고 목소리를 낸 결과다. 피해 근로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고 신고해야 회사도, 법과 제도도 그들을 도울 수 있다. 부디 용기를 내시길 응원한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yhnoh@aprillaw.co.kr | 더스쿠프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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