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개발자 시대

산업이 디지털로 급격히 전환하면서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개발자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경력 많은 개발자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솟고, 실무에 투입할 만한 개발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가트너가 이런 인력난을 해결할 솔루션을 제시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누구나 개발자가 될 수 있는 시대’를 만드는 거다.

가트너는 “미래엔 전문 개발자보다 시민 개발자의 수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트너는 “미래엔 전문 개발자보다 시민 개발자의 수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4차 산업혁명의 시대, IT를 기반으로 한 융복합 산업이 성장하면서 많은 기업들이 고민에 빠졌다. IT 개발 인력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업계에선 우수한 개발자를 확보하려는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다른 업종의 업체나 경쟁업체 간 개발자를 뺏고 빼앗기는 일이 빈번해졌다. 고액 연봉을 제시하는 일은 예사고,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해 어떻게든 회사로 모시려고 안간힘이다. 컴퓨터공학과가 인기학과로 자리매김하고, 코딩(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짜기) 조기교육 열풍이 거센 것도 이 때문이다.

그만큼 디지털화를 꿈꾸는 기업에는 개발자의 수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면 이를 관리하는 부서가 생기고, 그에 따른 여러 업무가 늘어나는 건 기업의 생리다. 이는 애플리케이션(앱)이나 IT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디지털 서비스를 내놓으려면, 그만큼의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개발자 구인난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천재적인 코딩 실력을 자랑하는 S급 인재나 명문대 석ㆍ박사 출신 A급 인재를 구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앞으로도 개발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경력 개발자의 가치는 치솟을 공산이 크다. 글로벌 IT 자문기관 가트너는 이 문제를 해결할 흥미로운 솔루션을 제시했다. 바로 ‘시민 개발자(Citizen Developers)’다. 가트너의 전망은 다음과 같다. “2023년엔 대기업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시민 개발자의 수는 전문 개발자 수보다 최소 4배는 많아질 것이다.”

시민 개발자도 낯선데, 이들이 미래 개발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니, 대체 무슨 얘기일까. 시민 개발자는 말 그대로 석ㆍ박사 학위가 없거나 컴퓨터공학 전공이 아님에도 개발 능력이 있는 비非전문 개발자다.

사실 요새는 누구나 코딩을 배울 필요는 없다. 아주 낮은 수준의 코딩으로 앱이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로 코드(Low code)’, 또는 아예 코딩이 필요하지 않은 노 코드(No code) 솔루션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코딩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앱이나 간단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런 시민 개발자를 기업 비즈니스에 끌어들였을 때의 장점은 명료하다. 전문 개발자가 그냥 지나쳐 버리는 문제도 시민 개발자에겐 금방 드러난다. 이들은 해당 기업의 서비스나 앱을 주로 사용하는 시민이다. 문제점과 그에 따른 보완책, 추가사항이 뭔지를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개발자로서의 자부심도 갖게 돼, 해당 기업의 열성적인 팬이 될 가능성도 높다.

전문가만큼 역량을 갖추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부족한 개발자 수요를 채우기에도 적합하다. 서비스를 두고 서로 마음껏 뜯어보며 집단지성을 발휘해 개선해 나가는 건 아무리 뛰어난 개발자를 영입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시민 개발자를 포섭하기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은 재빠르다. 가트너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의 41.0%는 이미 시민 개발자와의 협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시민 개발자의 등장

물론 시민 개발자와 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무턱대고 기업의 중요 개발 영역을 일반 시민에게 넘겨줄 순 없어서다. 전문 개발자도 아니고, 풀타임으로 고용하는 것도 아니다보니 이들 조직을 관리하는 일에도 한계가 있다. 시민들의 참여가 많으면, 그만큼 보안에도 취약해진다는 점도 문제다. 많은 기업들이 아직까지 ‘시민 개발자와의 협업’을 망설이는 이유다. 이들과 서로 윈윈하면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가트너의 세가지 솔루션을 들어보자.

첫째, ‘섀도 IT 영역’을 줄여야 한다. 섀도 IT란 기업의 IT 책임자가 파악하지 못하는 개발 부문을 뜻한다. 시민 개발자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섀도 IT 영역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를 줄이기 위해선 시민 개발자의 역할 분담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시민 개발자의 권한을 무한대로 늘리면 업무 중첩과 불분명한 책임 소재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땐 IT 사업부 리더가 직접 시민 개발자와 소통하면서 활동 구역을 정해주는 게 좋다.

한 대형 보험회사의 예를 들어보자. 이 회사는 시민 개발자와 함께 로 코드 플랫폼을 활용한 해커톤(개발자가 모여 마라톤 하듯 쉬지 않고 아이디어를 내 이를 프로그램을 만드는 활동)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서 일부 시민 개발자가 회사 내에서 쓸 수 있는 유용한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앱을 만들었다.

이 앱이 해커톤뿐만 아니라 다른 조직에도 쓰일 조짐을 보이자, 회사는 개발 권한을 자사 IT팀으로 옮겼다. 시민 개발자가 섭섭하지 않게 이들의 공로를 충분히 보상해주면서 말이다. 이처럼 시민 개발자의 가능성을 인정하되, 그 한계를 뚜렷하게 그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섀도 IT 영역’이 줄어든다.

두번째로 필요한 일은 ‘실천 공동체(Community Of Practice)’의 육성이다. COP란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드는 소규모 모임이다. 시민 개발자라고 다 똑같은 개발자가 아니다. 그중엔 전문가만큼은 아니더라도 뛰어난 개발 역량을 갖추고 리더십을 보유한 이들이 있다. 시민 개발자끼리 COP를 만들면 그런 인재는 금세 눈에 띄기 마련이다.

이들은 시민 개발자이면서도 나머지 개발자를 교육하고 이끌 가능성이 높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 커뮤니티에 활동하는 이들 중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따로 선정해 ‘MVP’란 칭호를 부여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MS는 MVP로 선정된 이들에게 여러 혜택을 준다. 이들에게 자부심과 커뮤니티를 관리할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시민 개발자가 스스로를 교육하고 통제하면 기업의 개발 활동도 수월해질 공산이 크다. 기업의 IT 부서가 이들을 일일이 관리할 순 없는 노릇이라서다.

세번째로 필요한 건, 시민 개발자에게 적합한 업무 도구를 쥐여주는 거다. 시장에 로우코드, 노코드 솔루션이 많다고 “아무 제품이나 쓰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기업 경영진들은 시민 개발자가 지금 활용하는 도구가 불편한 요소는 없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 

요새 유행한다는 업무 형태인 ‘BYOD (Bring Your Own Deviceㆍ개인 모바일 기기를 업무에 활용하는 것)’도 시민 개발자에겐 금물이다. 이는 섀도 IT의 영역만 늘릴 게 뻔하다. 아무리 시민이라고 해도, 기업 비즈니스에 참여할 때만큼은 진지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 그런 시민 개발자를 육성하는 건 기업이 미래에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제이슨 웡 가트너 VP 애널리스트 | 더스쿠프
정리=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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