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에 담았더라구… 유튜브 타임슬립

1980~1990년대 분식점에서 떡볶이와 어묵 국물을 담아주던 초록색 멜라민 그릇. 최근 멜라민 그릇을 구입하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 옛 추억을 떠올리는 30~40대 소비자뿐만 아니라 새롭고 재밌어서 멜라민 그릇에 손을 뻗는 20대 젊은층도 많다. 값싸고 흔하던 멜라민 그릇이 밥상에까지 오르게 된 셈이다. 그런데 멜라민 그릇이 어떻게 젊은층에게 알려졌는지 궁금하다. 답은 간단하다. 유튜브 효과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분식점 초록색 그릇이 대박난 이유를 분석했다. 

뉴트로 열풍을 타고 다양한 과거의 물건이 인기를 끌고 있다.[사진=롯데쇼핑 제공]
뉴트로 열풍을 타고 다양한 과거의 물건이 인기를 끌고 있다.[사진=롯데쇼핑 제공]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이는 매직 접시.”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 올라온 멜라민 그릇 구매 후기다. 1980~1990년대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담아주던, 값싸고 흔한 멜라민 그릇이 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뿐만 아니라 대형유통업체도 이 그릇 판매에 나섰다. 롯데마트(롯데쇼핑)는 지난 5월 멜라민 그릇ㆍ소쿠리ㆍ꽃무늬 물컵 등 ‘레트로 주방용품’ 판매에 나섰는데, 이후 식기류 매출액이 월 평균 13%가량 증가했다. 

옛날 그 떡볶이집은 프랜차이즈 분식점으로 바뀌었지만 향수를 간직한 소비자들이 접시에 손을 뻗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부 김승연(37)씨도 최근 집들이를 위해 멜라민 접시를 구입했다. 김씨는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공유하면 재밌을 것 같아 구입했다”면서 “가격도 저렴한 데다 이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으면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친 현대인 추억에서 위안


실제로 멜라민 그릇의 판매 가격은 개당 2000원 안팎이다. 불황의 시대에 1만원 한 장이면 식탁을 채우고 추억도 소환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아이템인 셈이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실질적으로는 가격이 저렴해서 좋은 건데 ‘옛날 것’이라는 구입할 명분까지 있다 보니 소비자에게 인기를 끄는 것으로 풀이된다.”

곽금주 서울대(심리학) 교수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성취지향적으로 살아가다 보니, 어릴적 좋았던 추억이 깃든 물건에서 안정감과 편안함을 찾고자 하는 소비자가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멜라민 그릇을 추억할 만한 30~40대가 소비 주축으로 떠올랐을 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복고풍이나 레트로(Retrospectㆍ과거의 재현), 뉴트로(New-troㆍ복고의 재해석) 트렌드는 세대돌림일 뿐 새로울 게 없다는 거다. 

실제로 1990년대엔 ‘1960~1970년대의 것’들이 다시 주목받았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1960~1970년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뭉툭한 통굽 구두가 인기를 얻고 있다” “1970년대 스타일의 원색 비키니 수영복이 인기 상품으로 떠올랐다”는 등의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TV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1982년 방영됐던 ‘미래소년코난(KBS)’ ‘은하철도999(KBS)’는 1996년 복고열풍을 타고 다시 전파를 탔다. ‘소고기국 대신 먹던 소고기라면(1960년대)’에 향수를 가진 사람들을 겨냥해 소고기라면이 재출시된 것도 1990년대 이후다. 김경자 가톨릭대(소비자학) 교수는 “복고 트렌드는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다”면서 “다만 그 시대에 누가 주요 소비층이냐에 따라 트렌드도 달라지게 마련이다”고 말했다.

그런데 멜라민 그릇의 열풍에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여기에 손을 뻗친 건 3040세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롯데마트에선 멜라민 그릇의 30대 이하 연령대 구입 비중이 40%가량에 달했다. 이들은 왜 써보지도 않았고 기억에도 없는 멜라민 그릇을 구입하는 걸까.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경향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의 물건이 젊은층에게 신선하고 재밌는 것으로 다가온 셈이다. 곽금주 교수는 “정보화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10~20대는 정보지향적 성향이 강하다”면서 “단순히 새로운 것보다는 스토리와 히스토리가 있는 물건을 더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경기도 성남시 판교점 문화홀에서 열린 ‘뉴트로 체험전’의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 4월 경기도 성남시 판교점 문화홀에서 열린 ‘뉴트로 체험전’의 모습. [사진=뉴시스]

다른 분석도 있다. 과거를 볼 수 있는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경험을 한 게 멜라민 그릇 구매로 이어졌다는 거다. 실제로 1990년대 TV프로그램을 젊은층이 선호하는 짤막한 영상으로 편집해 내보내는 유튜브 채널은 숱하다. 지상파 방송사도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앞다퉈 과거 콘텐트를 내보내고 있다. 예컨대 SBS는 지난 8월부터 유튜브 채널 ‘SBS KPOP Classic’을 통해 1990년대 ‘SBS 인기가요’를 실시간 스트리밍하고 있다. 이 채널은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현재 구독자 수가 17만명을 넘어섰다. 

곽 교수는 “과거 혼자 찾아보고 즐기던 옛 콘텐트를 이제 함께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다”면서 “결국 트렌드는 동조현상이라는 점에서 온라인 매체가 뉴트로가 확산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세대, 과거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세대가 맞물리면서 뉴트로 열풍은 꾸준히 지속될 전망이다.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은 그 발화점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멜라민 그릇, 그 다음은 무엇일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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