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신주 가이드라인 설정해
박삼구 일가 상대적으로 초조해져

아시아나항공 매각 작업이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가장 중요한 매각가격의 가이드라인이 공개됐는데, 완주 여부를 고심하는 후보자가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몸값이 예상보다 비싸다는 게 이유다. ‘연내 매각’을 꼭 달성해야 하는 원주인 금호그룹은 초조할 수밖에 없다. 반면 매각 주도권을 쥔 채권단은 여유로운 모습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산은이 제시한 아시아나 신주 8000억원 가이드라인의 함의를 따져봤다.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비용이 시장 예상치보다 높아졌다.[사진=뉴시스]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비용이 시장 예상치보다 높아졌다.[사진=뉴시스]

“신주 유상증자 금액으로 최소 8000억원은 써내야 한다.” 최근 아시아나항공 인수후보자에 이런 내용이 담긴 본입찰 안내서가 전달됐다. 덕분에 국내 2위 국적항공사의 몸값을 가늠할 수 있게 됐다. 업계에선 그간 적정 매각가를 둘러싸고 제각각의 전망을 내놓고 있었다. 채권단이나 금호그룹이 ‘통매각’ ‘SI 단독 입찰 불가’ 등의 인수전 룰을 설명한 적은 있어도, 가격을 두고는 말을 아껴왔기 때문이다.

자, 이제 본입찰 안내서에 적힌 신주 가격을 바탕으로 몸값을 다시 계산해보자.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금호산업이 보유한 지분 6868만8063주(구주)와 제3자 유상증자로 발행하는 신주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아시아나항공의 시가총액은 1조1327억원(10월 23일 기준) 수준으로, 매각 대상 지분(31.05%)의 시장가치는 3571억원이다. 여기에 최소 8000억원으로 정해진 신주 인수가와 여러 자회사가 포함된 경영권 지분에 따른 프리미엄까지 덧붙이면 몸값은 1조5000억원 내외로 추정된다.

이는 IB 업계가 예상한 매각가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다. 무엇보다 인수후보자 입장에선 신주 규모가 구주 인수 규모보다 높게 책정된 건 반가운 일이다. 후보자 모두 아시아나항공을 빠르게 정상화하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고 있어서다. 이는 구주에 치르는 돈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고스란히 금호그룹의 지갑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반면 신주 발행에 투입된 자금은 용도를 다르다. 재무구조 개선에 활용할 수 있다. 부채비율을 낮추면서도 지배력은 높일 수 있는 일석이조의 카드다. 당초 업계에선 31.05%의 구주만 인수해도 경영권을 얻을 수 있는 만큼, 신주 발행 규모가 높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8000억원의 가이드라인을 받아든 인수후보자들은 당혹스러운 눈치다. M&A 업계 관계자는 “구주 가격은 그대로인데, 신주 발행 규모의 기준만 높아진 상황”이라면서 “결국 본입찰은 8000억원 플러스 알파를 얼마를 더 써내느냐가 관건이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후보자들이 당황한 이유는 또 있다. 업계에 따르면 채권단은 본입찰 안내서에 신주 인수 발행으로 아시아나항공에 들어간 자금을 전부 회수하겠다는 의지를 시사했다. 실제로 가이드라인 8000억원은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에 수혈한 자금 규모와 같다.

채권단이 지난 4월 꺼낸 긴급 자금지원 카드를 보자. 유동성 위기에 처한 아시아나항공의 순조로운 매각작업을 돕기 위해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하는 5000억원 규모의 영구채(30년 만기 전환사채)를 매입했다.


아시아나 연내 매각 가능할까

영구채는 차입금이지만, 만기가 30년으로 긴 만큼 재무제표에는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잡힌다. 덕분에 당시 1000%를 웃돌 것으로 점쳐지던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을 끌어내렸다. 나머지는 대출과 보증 형식으로 지원했다. 이중 아시아나항공은 연말까지 3000억원가량을 산업은행에서 빌릴 계획이다. 영구채 매입 비용 5000억원을 더하면 딱 8000억원이다.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후보자들은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에 수혈한 자금은 당장 갚아야 할 돈이 아닌 ‘조율 가능한 옵션’으로 보고 있었을 공산이 크다. 그래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이후 인수구조나 금액 등을 협의할 계획이었을 거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조기회수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만큼, 계산이 복잡해졌다. 결과적으론 최소 2조~3조원의 딜이 될 것이다.”

신주 발행의 1원칙이 ‘채권단 자금 회수’라면 아시아나항공의 몸값은 다시 따져야 한다. 가령 신주 비용 8000억원 중 5000억원이 곧바로 영구채 조기상환에 투입되면, 자본이 줄어 아시아나항공 부채비율은 악화된다. 언급했듯 영구채는 재무제표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계상되기 때문이다.

결국 인수 후에도 추가 증자가 불가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채권단이 긴급 지원한 돈이 아니더라도 아시아나항공이 갚아야 할 부채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5000억원의 영구채 지원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했어도 올해 상반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659.5%)은 여전히 높다. 당장 신용등급 하락이 걱정이다. 아시아나항공은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신용평가에서 비우량 신용등급인 BBB-(하향 검토)를 받고 있다. 한 등급만 떨어져도 투기 등급이다. 가뜩이나 항공 업황도 나쁜 만큼, 추가 증자가 작은 규모여선 곤란하다.

신주 가이드라인 결정은 매각을 주도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하다. 표면적으론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인 금호그룹과 그 오너 일가가 매각전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매각이 결정된 지난 4월 “매각 주체는 법률적으로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이라고 못 박았다. 매각 공고가 난 7월에는 금호그룹 오너일가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이 나서 “매각 주도권은 금호그룹에 있다”고 밝혔다.

따져보면 단순한 이유다. ‘감사의견 한정’ 사태를 계기로 매각이 진행되긴 했지만, 아시아나항공은 정상기업이다. 빚이 많고 경영 상황이 어려울 뿐 워크아웃에 빠지거나 법정관리에 돌입한 게 아니다. 반면 산업은행은 자금을 빌려줬을 뿐이다. 매각전에 적극 개입할 명분과 수단이 부족하다.

“최소 2조~3조원의 딜”

하지만 신주 발행 비용이 8000억원으로 결정된 지금은 다르다. 구주 값을 최대한 많이 받아야 하는 금호그룹이지만, 후보자들의 관심은 ‘신주 발행 규모’에만 쏠려있을 공산이 크다. 채권단은 지원자금을 충분히 회수하고도 재무구조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의 대규모 신주 발행을 원한다. 대기업 그룹이 빠진 후보자들 중 이를 충족할 기업이 있는지는 미지수다.

어차피 산업은행은 급할 게 없다. 연내 매각이 무산되면 금호그룹이 보유한 구주를 채권단이 임의로 매도할 수 있다. ‘연내 매각 성공’을 위한 허들만 더 높아진 셈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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