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SK이노 5년 전 합의서, 누가 어겼고 누가 들췄나
LG화학-SK이노 5년 전 합의서, 누가 어겼고 누가 들췄나
  • 김다린 기자
  • 호수 361
  • 승인 2019.10.29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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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국제소송
누굴 위한 다툼인가

올해 초 ‘인력 빼가기’ 문제로 다투던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이번엔 특허를 둘러싼 소송을 벌이고 있다. 갈등의 정도가 심상치 않다. 5년 전 양사가 비밀리에 작성했던 합의서까지 공개될 정도로 치열하다. 또 진흙탕 싸움이다. 양사가 올해 국내외에서 서로 제기한 소송만 총 5건이다. 국민들이 궁금한 건 이게 대체 누굴 위한 소송이냐는 거다.  더스쿠프(The SCOOP)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5년 전 밀실 합의서에 숨은 함의를 취재했다. 

전기차 배터리는 성장 산업이란 점에서 법적분쟁은 양사 모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사진=연합뉴스]
전기차 배터리는 성장 산업이란 점에서 법적분쟁은 양사 모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사진=연합뉴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3건, 한국에서 2건의 맞소송이 붙었다. 급기야 베일에 싸여있던 양사 경영진이 서명했던 합의서까지 공개됐다. 대체 무슨 사연이 숨어 있는 걸까. 

시계추를 지난 9월로 돌려보자. 당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걸었다. 소장이 접수된 곳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즉각 반박문을 냈다. “LG화학이 부제소不提訴 합의를 어겼다. 5년 전 양사는 대상 특허를 두고 국내외에서 쟁송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인력 유출 문제로 맞소송 중이던 두 기업이 이번엔 특허 문제로 충돌한 셈이었다. 그렇다면 합의서가 등장한 배경부터 살펴보자. 2011년 12월,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자신들의 분리막 기술인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냈다. SK이노베이션은 특허심판원에 특허무효소송을 제기하면서 맞대응했다. LG화학의 SRS 기술이 새로운 게 없으니 특허를 취소해달라는 취지였다. 

5년 전 합의서의 진실

소송 양상이 복잡했던 만큼 결론도 유야무야로 마무리됐다. 2014년 10월 양사는 소를 취하하고 합의서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이 공개한 당시 합의서 골자는 다음과 같다. “양사는 앞으로 10년간 대상 특허를 두고 국내외에서 쟁송을 하지 않는다.” 서로 소송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부제소 합의였다.

LG화학이 지난 9월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자 SK이노베이션이 발끈하면서 합의문을 공개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ITC 등 국제소송의 대상인 특허가 합의문의 특허와 똑같은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LG화학의 입장은 당연히 다르다. “소송을 걸지 않기로 약속한 특허와 ITC 등에 제기한 국제소송 특허는 별개다. 그땐 한국 특허였고, 지금은 미국 특허다. 특허독립, 속지주의 원칙도 모르는가.”

서로 다른 주장은 두 기업의 명예와 직결된다. LG화학의 주장이 옳다면 SK이노베이션은 ‘특허침해’라는 소송의 본질을 호도하는 비겁한 기업으로 전락한다. 반대로 SK이노베이션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LG화학은 신의를 팽개친 믿을 수 없는 기업이 된다.

부담은 양쪽 모두에 있다. 분리막 생산은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부의 핵심사업이다. 특허침해 판결로 수출길이 막히면 미래 성장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SK이노베이션의 주장이 옳다면, LG화학은 ‘합의를 어기는 걸 알면서도 무리한 소송’을 제기한 셈이 된다. 

LG화학 측엔 권영수 LG그룹 부회장이란 변수도 있다. 논란의 합의서에 5년 전 서명한 주인공이 권영수 부회장이기 때문이다. LG의 2인자로 불리는 권 부회장은 당시 LG화학 사장(전기사업본부)이었다. 그런 그가 부제소 합의 내용을 몰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까. 두개의 등록번호(특허청 심사를 받은 후 특허성을 인정받고 부여되는 번호)를 통해 사실에 가까이 가보자. 첫번째는 등록번호 KR00775310의 한국 특허다. 5년 전 합의서에서 양측이 “소송하지 않겠다”면서 입을 맞췄던 바로 그 특허다.

두번째는 등록번호 US07662517의 미국 특허다. 언뜻 봐도 특허번호가 다르다. 당연하다. 한국 특허와 미국 특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SK이노베이션은 왜 ‘똑같은 특허’라고 주장하는 걸까. 두개 모두 LG화학의 분리막 제조기술인 SRS가 근간이어서다. 

실제로 특허를 설명하는 문서인 ‘공고자료’를 보면, 두 특허는 쌍둥이라고 볼 여지가 많다. 먼저 특허가 지목하는 발명 이름이 같다. ‘유ㆍ무기 복합 다공성 분리막 및 이를 이용한 전기 화학소자(한국 특허)’ ‘OrganicㆍInorganic Composite Microporous Membrane And Electrochemical Device Preapred Thereby(미국 특허)’. 한국 특허의 명칭을 영어로 번역하면 미국 특허의 명칭이다. 

요약문ㆍ발명자 명단도 동일

발명자 명단도 같다. LG화학 연구원 6명의 명단이 순서까지 똑같이 기재돼 있다. 기술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대표 도면(Representative drawing)도 같은 사진을 썼다. 두 특허의 공고 모두 분리막을 어떤 방식으로 코팅했는지를 간단한 그림으로 나타냈다.

요약문도 붕어빵이다. 한국 특허 공고가 ‘폴리올레핀 계열 분리막 기재(a)’와 ‘상기 기재의 표면 및 상기 기재에 존재하는 기공부 일부로 구성된 군(b)’으로 설명했는데, 미국 특허 공고 역시 같은 방식으로 풀어썼다.

공고에 쓰인 도면과 사진도 총 9장으로 일치한다. 가령 일반 분리막과 SRS 분리막을 각각 150도 온도에서 1시간 방치한 후의 결과를 찍은 사진인 도면5의 경우, 미국 특허 공고에 그대로 등록됐다. 심지어 실험번호와 분리막이 구겨진 부문까지 똑같다.

발명을 상세히 설명하는 명세서(Description)도 마찬가지다. 일반 분리막이 녹는 임계 온도는 120~140도 정도인데, LG화학의 SRS은 200도의 열도 버틸 수 있다는 게 요지다. 발명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한 실시예도 똑같다. 가령 실시예의 1항은 ‘분리막 제조’ ‘양극 제조’ ‘음극 제조’ ‘배터리 제조’ 순으로 기술했는데, 미국 공고 역시 그렇게 작성했다.

이후 6항목의 실시예를 설명하는 것도 같은 내용과 같은 순서로 구성돼 있다. 2개 항목의 비교예와 6개 항목의 실험예도 같은 내용이다. 정리하자면, 미국의 특허 공고자료는 한국 특허 공고자료를 영문으로 번역한 자료란 얘기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선권 번호도 두 특허를 똑같다고 볼 수 있는 근거다. LG화학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미국 특허의 우선권 정보(Foreign application priority data) 항목엔 한국 특허의 우선권 출원번호(10-2004-0110400, 10-2004-0110402)와 우선권 출원일(2004년 12월 22일)이 적혀있다. 

이는 미국 특허가 한국 특허의 출원일인 2004년 12월 22일부터 효력을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LG화학이 미국 특허를 출원한 날짜는 그보다 1년 뒤인 2005년 12월 22일이다. 이렇게 우선권으로 묶여있는 특허를 업계는 ‘패밀리특허’라고 부른다. 정리하자면 한국의 특허와 미국의 특허는 모자母子 관계인 셈이다. 그렇다면 LG화학은 왜 두 특허가 다르다고 강조하는 걸까. 

이유가 있다. 두 특허의 청구범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다. 한국 특허 청구범위는 16항이고, 미국의 청구범위는 18항이다. 익명을 원한 미국 특허 전문 변리사는 “두 특허의 청구범위를 1대1로 비교하면 대부분의 항목이 일치하지만, 미국 특허의 경우 소재 설명을 자세하게 첨부했다는 점에서 다르다”면서 “청구범위가 특허권자가 희망하는 독점의 범위를 설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두 특허가 다르다는 LG화학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어이없는 주장일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같은 발명이라도 각국 특허청의 심사 실무에 따라 청구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추가된 청구범위도 기존 청구범위를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한 항목일 뿐이다. 16항이냐 18항이냐는 기계적인 다름일 뿐이다.” 

이처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주장은 사사건건 부딪친다. 중요한 건 두 기업은 5년 전에도  이 문제를 두고 다퉜고, 그때의 어설픈 합의가 갈등의 불씨가 됐다는 점이다. 당시 상황은 두 회사 모두에 나빴다. LG화학은 특허침해소송 1심에서 패소(2014년 2월)했고, SK이노베이션은 특허무효소송에서 2심까지 승소를 이어가다 대법원이 파기환송 결정(2013년 11월)을 내리면서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 치열한 다투던 두 회사가 서둘러 합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기업에 소송전은 실익이 없는 싸움이었던 거다. 

문제는 합의서를 작성한 이후 LG화학도, SK이노베이션도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LG화학은 올해 특허침해 소송을 준비하면서도 합의서 논란이 불거질 걸 모르지 않았을 거다. 과거 소송 때도 국내외 배터리 업계를 떠들썩하게 했으니 말이다. 실적 부침 때문인지 시장의 선발주자다운 여유로움이 전혀 없었다. 

양사 이익 위해 합의해놓곤 …

SK이노베이션은 합의서만 믿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배터리 분리막은 유독 특허침해소송이 자주 벌어지는 부품이다.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보자. “유독 분리막에만 소송이 집중되는 건 특허 침해 시비가 발생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양극ㆍ음극ㆍ전해질 등은 비율을 조금만 달리해도 완전히 다른 성능을 보이기 때문에 특허권리를 주장하는 게 어렵다. 반면 분리막은 코팅된 비닐 제품일 뿐이다. 눈에 띄는 진보성을 증명하는 게 쉽지 않다.” 

SK이노베이션의 주장이 옳다면, 결국 LG화학은 ‘합의를 어기는 걸 알면서도 무리한 소송’을 제기한 거다. 사진은 당시 양사가 맺은 합의서와 합의서에 서명했던 권영수 LG그룹 부회장.[사진=뉴시스]
SK이노베이션의 주장이 옳다면, 결국 LG화학은 ‘합의를 어기는 걸 알면서도 무리한 소송’을 제기한 거다. 사진은 당시 양사가 맺은 합의서와 합의서에 서명했던 권영수 LG그룹 부회장.[사진=뉴시스]

만약 5년 전 소송이 합의 대신 판결로 끝났다면 어땠을까. LG화학이 이겼다면 기술의 우월성을 인정받고, SK로부터 로열티를 받아낼 수 있었을 거다. 법원이 SK이노베이션의 손을 들어줬다면, LG화학의 특허가 취소됐을 거고 이런 분쟁에 휘말릴 필요도 없었다. LG화학도, SK이노베이션도 가치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와 업계는 ‘제2의 반도체’로 배터리 사업을 꼽고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효한 전략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시장의 핵심기업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볼썽사나운 국제소송을 벌이고 있다. 5년 전 합의서 논란, 그들은 과거와 싸우고 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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