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 마케팅 염증 현상

상술로 만들어진 각종 기념일이 쏟아지면서 피로감을 느끼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상술로 만들어진 각종 기념일이 쏟아지면서 피로감을 느끼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년 10월 말부터 11월 중순이면 유통업계는 ‘데이 마케팅’에 분주하다. 할로윈데이(10월 31일)와 빼빼로데이(11월 11일)가 잇달아 있어서다. 이뿐만이 아니다. 각종 소비를 조장하는 기념일 문화는 1년 내내, 50개 넘게 이어진다. 쏟아지는 기념일에 피로감을 느끼는 소비자는 수두룩하다. ‘기념일 문화는 기업의 상술일 뿐’이라고 꼬집는 이들도 많다. 지금은 ‘상술의 시대’가 아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데이 마케팅의 그림자를 취재했다. 

10월 중순이 되면 거리 곳곳에서 호박과 마녀 모자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31일 할로윈데이를 앞두고 각종 유통채널은 할로윈 마케팅을 펼친다. 카페에선 호박이 들어간 음료를, 마트에선 유령과 박쥐가 그려진 과자를 판다. 

놀이동산이나 호텔도 마찬가지다. 할로윈 축제를 열거나 할로윈 패키지를 만들어 내놓는다. 이어 2주도 지나지 않아 편의점과 마트의 매대에는 리본 등으로 요란하게 포장한 빨간색 상자가 무더기로 쌓인다. 이어지는 11월 11일 ‘빼빼로데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쏟아지는 ‘데이 마케팅’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8명이 ‘요즘 들어 지나치게 많은 기념일이 생긴다(80.4%)’고 느꼈다. 

 

단지 느낌만이 아니다.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기념일은 50개가 넘는다(성년의 날, 만우절 포함). 챙겨야 할 기념일이 한달 평균 최소 4개에 이른다는 얘기다. 직장인 김소영(27)씨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밸런타인데이)과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주는 날(화이트데이)이 나뉘어 있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며 “연인끼리 사랑을 담은 선물을 주는 게 목적이라면 함께 주고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기념일의 종류도 다양하다. 밸런타인데이(2월 14일), 화이트데이(3월 14일) 등 익숙한 날만 있는 게 아니다. 클로버데이(4월 4일·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선물하는 날), 그린데이(8월 14일·연인끼리 삼림욕을 즐기는 날), 애플데이(10월 24일·서로 사과를 주면서 화해하는 날) 등 낯선 기념일도 수두룩하다.

‘기념일이 많아져 점점 더 피곤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69.6%에 달하는 이유다. 이준영 상명대(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크리스마스·밸런타인데이처럼 나름의 전통이 있는 기념일과 달리,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데이’가 워낙 많아 사람들의 피로감도 커졌다”고 지적했다.

소비자가 기념일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둘로 나뉜다. 먼저 부정적으로 여기는 이들(53.6%)은 기념일 문화가 ‘기업의 상술’이라고 느꼈다. ‘요즘은 데이 마케팅 전성시대’라고 답한 이들도 65.1%에 달했다. 상업성을 띤 기념일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다. 성인 65.3%가 ‘특정 기업의 상품을 상술로 내세운 기념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여겼다. ‘소비자의 소비 성향을 이용하는 전략적인 기념일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60.2%나 됐다. 소비를 조장하기 위해 만든 ‘◯◯데이’에 소비자의 거부감이 크다는 거다. 

소비자는 상업적이지 않은 기념일은 긍정적으로 여겼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소비자는 상업적이지 않은 기념일은 긍정적으로 여겼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학생 이유정(25)씨는 “전통 없이 소비만 조장하는 기념일은 챙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개인적으로는 상술에 당하기 싫고, 딱히 챙기고 싶지 않다. 그러나 주위에서 다들 선물을 주는 분위기인데다 연인 등 상대방이 실망할까봐 어쩔 수 없이 챙기게 된다.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을 거다.”

설문조사 결과도 이씨의 말을 뒷받침한다. 성인 44.2%는 ‘유통업계가 일제히 데이 마케팅을 펼쳐 갈수록 쉽게 넘어가기 어렵다’고 느꼈다. 또한 45.2%는 ‘남들이 기념일을 챙기면 나도  챙겨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10명 중 4명은 이씨처럼 부담감과 압박감에 기념일을 챙긴다는 거다. 

그렇다고 소비자가 기념일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상술을 배제한 기념일은 긍정적으로 봤다. 응답자 10명 중 7명(71.4%)이 ‘상업적이지 않은 기념일은 마음에 든다’는 입장에 섰다. ‘기업의 상술이 문제이지, 기념일 자체는 문제없다’고 답한 이들도 62.3%에 달했다. 특정 상품을 소비할 필요 없이 타인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벤트 자체는 선호한다는 거다.

‘기념일은 친밀감을 높이고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응답률이 42.9%에 이른 건 이를 방증한다. 성인 2명 중 1명(50.1%)은 ‘기념일 문화가 자연스럽게 주변과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생각했다. ‘기념일 문화가 친구·연인과의 관계를 오래 지속하게 해준다’고 느끼는 이들도 42.1%나 됐다. 

난립하는 데이 마케팅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성인 10명 중 7명(69.9%)은 ‘또 다른 기념일이 앞으로도 계속 생길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준영 교수는 “기존의 데이 마케팅은 지속되겠지만 이미 포화상태여서 새로 생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소비자도 상술임을 인지하고 데이 마케팅에 의미를 부여하는 대신 축제처럼 가볍게 즐겨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