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와 가격 거품

1997년 빼빼로 가격은 300원이었다. 당시 여학생들이 300원짜리 과자를 주고 받으며 날씬해지자고 농담을 건네던 게 빼빼로데이(11월 11일)의 유래다. 그런데 오늘날 빼빼로데이의 평가는 그다지 순수하지 않다. 재미라는 호평도 있지만 상술이라는 비판도 숱하게 많다. 놀이문화로 시작한 빼빼로데이는 어쩌다 상술이란 평가를 받게 됐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빼빼로와 가격거품의 상관관계를 짚어봤다. 

각종 ◯◯day가 상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각종 ◯◯day가 상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할로윈 문화가 10월의 거리를 파고들고 있다. 마트나 편의점, 식당이나 주점에선 할로윈 분위기를 쉽게 느낄 수 있다. 할로 윈데이가 빼빼로데이나 밸런타인데이의 뒤를 잇는 기념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부 계층이 즐기는 축제 문화로 치부하기엔 할로윈데이를 노리는 식품·유통업계가 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축제나 놀이문화가 기업의 마케팅으로 상업적 기념일이 된 사례가 적지 않다. 빼빼로데이도 그중 하나다. 빼빼로데이는 당초 학생들의 놀이문화에서 시작했다. 1990년대 영남권의 중학생들이 숫자 ‘1’이 4번 반복되는 11월 11일에 ‘날씬해지자’는 의미로 빼빼로를 주고 받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진 놀이문화가 뜻밖에 롯데제과의 매출을 끌어올렸던 셈이다. 회사 관계자는 “빼빼로데이는 학생들 사이에서 시작돼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면서 “별도의 마케팅을 시작한 건 2000년 이후에서다”고 설명했다. 

당연히 빼빼로데이의 출발은 소박했다. 1997년 기준 빼빼로 가격은 300원으로, 친구들끼리 과자를 주고 받기에 부담 없는 가격이었던 셈이다. 여론의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당시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외국의 기념일을 그대로 가져온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와 달리 빼빼로데이는 국내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만든 건전한 풍습이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건전한 풍습’으로 평가받던 빼빼로데이에 유통업체가 숟가락을 얹기 시작한 건 1999년 이후다. 백화점 · 마트 등이 빼빼로데이 마케팅에 나서면서 기념일의 의미도 달라졌다. ‘날씬해지자’에서 ‘사랑도 우정도 길게 유지하자’는 내용이 덧입혀졌다. 타깃층도 확대됐다. 친구뿐만 아니라 연인 사이에서 마음을 고백하는 특별한 날로 변화하기 시작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빼빼로데이 시장 규모도 껑충 뛰었다. 2005년 관련 시장 규모가 900억원(업계 추정치)대에 달했는데 이는 밸런타인데이 시장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이중 롯데제과의 빼빼로 매출액은 250억원 가량으로 유사 빼빼로나 초콜릿 등 관련 제품들이 덩달아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연인들이 빼빼로와 함께 장미꽃을 주고받으면서 ‘장미 품귀현상’이 벌어진 건 대표적인 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빼빼로데이를 하루 앞둔 2010년 11월 10일에는 장미꽃(카버넷 10송이) 가격은 3345원으로 전주(2829원) 대비 18.2% 증가했다.

빼빼로데이가 성공은 식품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업체들이 자사 제품에 ‘◯◯day’를 붙여 마케팅하기 시작한 건데 ‘에이스데이(해태제과)’ ‘피앙세데이(웅진식품)’ 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일부 언론에선 빼빼로데이의 사례를 “대중성에 영합한 토종 상술의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상술이 성공하자 고급화 바람이 불었다. 2008년 편의점 GS25(GS리테일)는 빼빼로, 빼빼로 바구니, 초콜릿, 와인 등 관련상품을 700~5만5000원대에 출시했다. 도를 넘은 거품이 끼기 시작한 건 2011년이다. ‘밀레니엄 빼빼로데이’의 해였는데, (20)11년 11월 11일로 ‘1’이 ‘6번’ 겹치는 1000년에 한번뿐인 빼빼로데이라는 의미다. 당시 유통업계는 “이번 빼빼로데이 놓치면 1000년 기다려야 한대요”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마케팅을 했다.

빼빼로데이의 ‘바가지 가격’ 논란은 반복돼 왔다.[사진=뉴시스]
빼빼로데이의 ‘바가지 가격’ 논란은 반복돼 왔다.[사진=뉴시스]

이같은 특수성이 거품을 부추겼다. 주요 유통채널에선 대형 빼빼로 세트가 4만~5만원에 판매됐다. 꽃바구니와 결합한 상품은 10만원을 호가했다. 연인들을 겨냥해 빼빼로와 함께 공연티켓, 상품권을 결합한 상품도 쏟아져 나왔다. 당시 빼빼로 1개의 가격은 1000원에 불과 했지만 선물이라도 하려면 1만원 넘는 포장 상품을 구입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  

밀레니엄 빼빼로데이의 해를 성공적으로 치르자 유통업계는 다음해 ‘더 크고, 독특하게’ 전략을 펼쳤다. 롯데마트(롯데쇼핑)에선 빼빼로데이 기간 동안 길다란 막대과자 쿠션(1만9500~2만2500원)을 판매했다. 배(빼빼로)보다 배꼽(쿠션)이 커진 셈이다. 홈플러스에서도 대용량 빼빼로 자이언트 세트를 5만1100원에 출시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선 빼빼로와 대형 인형 등을 조합한 상품을 6만2000원에 판매했다. 

소비자의 비판이 터져나온 건 2014년 무렵이다. 매년 과대포장 · 바가지요금 기사가 전파를 탔기 때문이다. 일부 편의점에서 판매한 빼빼로 바구니의 가격이 2배가량 부풀려진 사례도 많았다. 4만4000원짜리 기획상품을 뜯어보니, 인형이나 과자, 초콜릿 등의 가격은 2만원 안팎에 불과했다는 게 골자였다.

반복되는 상술 논란에 염증을 느끼는 소비자도 증가했다. 비싼 기획 상품 대신 낱개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증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실제로 2014년 편의점 CU(BGF리테일)에선 3000원 미만 상품의 매출 성장률이 전년 대비 40.4%에 달했다. 세븐일레븐(코리아세븐)에서도 1000원 이하 제품의 매출 비중이 80%대에 달했다. 

2016년 이후 가성비 아이템이 주를 이룬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려한 포장이나 겉치레 대신 콜라보레이션 등으로 패키지를 차별화한 상품이 인기를 끌었다. 예컨대 GS25에선 지난해 기획상품 ‘유병재 빼빼로’를 출시해 인기를 끌었는데, 이 제품의 경우 빼빼로(롯데제과) 8갑 묶음 제품(1만2000원)으로 낱개 구입 가격(1500원)과 동일했다. 가격 거품은 빼고 패키지로 재미를 준 제품인 셈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값비싼 기획 상품은 이제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면서 “거품이 빠지고 있지만, 각종 ◯◯day들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사실 소비자의 외면은 이미 예견된 사실이었다. 빼빼로데이가 인기를 끌던 10여년 전에도 소비자의 반감은 적지 않았다. 실제로 2008년 알바몬 조사 결과, 대학생 (993명)의 82.6%가 “빼빼로데이는 상술이 빚어낸 기념일에 불과하다”고 답했다. 반면 “재밌는 기념일 중 하나”라고 답한 이는 15.8%에 그쳤다. 소비자를 외면한 마케팅은 결국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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