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만 CGT, 조선업 ‘부활 숫자’로 충분한가
527만 CGT, 조선업 ‘부활 숫자’로 충분한가
  • 고준영 기자
  • 호수 362
  • 승인 2019.11.04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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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부활론과 침체의 늪

한국 조선업의 부활론을 말할 때 시장점유율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한국이 중국을 제치고 1위 자리를 탈환했을 때 부활찬가가 울려 퍼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는 조선업 부활과 별 관련성이 없다. 중요한 건 침체된 조선시장이 살아날 것이냐는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글로벌 금융위기부터 조선 시장을 살펴본 결과, 조선업은 여전히 장기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감한 선박 발주량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조선 부활론이 섣부른 이유다.[사진=연합뉴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감한 선박 발주량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조선 부활론이 섣부른 이유다.[사진=연합뉴스]

“한국 조선이 되살아나고 있다.” 업계에서 ‘조선 부활론’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 건 조선업의 수주절벽이 지나가던 2017년 이후부터다. 조선사들의 수주실적이 바닥을 찍고 회복세를 보인 것을 사람들은 ‘부활의 시그널’로 받아들였다. 

기대치는 올해 정점에 달했다. 연초부터 “조선업이 오랜 침묵을 깨고 부활의 뱃고동을 울릴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이 쏟아졌다. 국내 민관연구기관들도 조선 부활론에 힘을 실었다. “조선업의 침체기가 끝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회복세를 그릴 것이다.”

그럴듯한 근거도 있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7년 만에 중국을 제치고 조선 1위 자리를 탈환하면서 희망의 신호탄을 쐈다. 국내 조선사들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이 대량 발주될 거란 소식도 들려왔다.

2020년부터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가 시행된다는 점도 기대 요인이었다. 선박연료의 황 함유량을 낮춰야 하는 해운사들이 오래된 선박을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수주절벽 이후 국내 조선사들의 실적이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조선업의 부활론을 부추겼다. 

그렇다면 한국의 조선은 정말 부활하고 있을까. 먼저 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환산한 수주실적을 따져보자. CGT는 선박의 무게단위인 GT에 선박의 부가가치와 작업 난이도 등을 고려해 산출한 단위다. 서로 부가가치가 다른 선종을 비교하기 쉽다. 이에 따라 CGT가 만족스러우면 조선업에 청신호가 들어온 것이고, 반대라면 조선업의 부활은 아직이란 얘기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9월 국내 조선사들이 따낸 수주계약은 527만 CGT다. 세계 1위 중국(598만 CGT)과 비교했을 때 양적으론 나쁘지 않은 수치다. 아직은 중국에 뒤처져 있지만 지난 5~8월엔 한국이 수주량 1위를 달성했다. 지난 4월 18.4%포인트까지 벌어졌던 점유율 격차도 9월엔 4.7%포인트로 좁혀졌다. 

하지만 527만 CGT만으로 부활론을 언급하는 건 곤란하다. 우리나라가 5~8월 수주량 1위를 차지한 것도, 중국 조선과의 격차가 줄어든 것도 어쩌면 합리적인 근거가 되기엔 모자라다.

시계추를 2017년과 2018년으로 돌려보면 금세 답이 나온다. 지난해 1~9월(이하 같은 기준) 국내 조선사들이 따낸 수주실적은 950만 CGT다. 527만 CGT의 약 1.8배다. 2017년 수주실적(547만 CGT)과 비교해도 20만 CGT가 적다. 범위를 더 넓혀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수주량 가운데 2016년을 빼곤 가장 적다. 

그렇다고 527만 CGT가 국내 조선사들의 목표량에 근접한 것도 아니다. 9월 기준 현대중공업그룹(현대중공업ㆍ현대삼호중공업ㆍ현대미포조선)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의 수주목표 달성률은 각각 40.8%, 35.4%, 53.8%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카타르와 모잠비크, 러시아 등 대형 LNG 프로젝트가 지연되면서 올해 안에 실적을 잡긴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사실상 수주목표량을 채우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참고 : 조선사는 시장 상황과 예상 발주량을 감안해 그해의 수주목표량을 정한다. 시장이 좋으면 목표량이 높고, 나쁘면 목표량이 낮다.]

 

이는 글로벌 조선시장이 위축되면서 발주량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조선업에서 발주량은 곧 수요다. 수요가 살아나지 않으면 시장이 침체하고, 기업도 회복이 어렵다. 발주량이 회복돼야 점유율을 높이는 것도 수주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문제는 유독 올해만 업황이 나빴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감한 발주량이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10~2019년 평균 발주량은 2681만 CGT. 그나마 발주량이 반짝 증가했던 20 13년에만 4068만 CGT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이전 시장이 좋을 때 5000만~7000만 CGT가 발주됐다는 걸 감안하면 시장 침체가 심각하다.

뉴노멀 시대 맞은 조선업

더 심각한 점은 이번 침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거다. 전문가들은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한다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가 도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해운전문 매체 로이드리스트는 “2040년께에나 호황이 찾아올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세계시장이든 국내시장이든 조선업은 아직 ‘침체기’를 걷고 있다. 올 1~9월 조선 수주량이 긍정적이라고 하더라도 시계열을 넓혀놓고 보면 실적은 ‘밑바닥’ 수준이다. 월별 또는 분기별로 나오는 수주량 순위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이유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가 중국을 제치고 수주량 1위에 오르든, 중국에 밀려 2위에 머물러 있든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는 거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점유율 회복과 수주목표량 달성 여부가 조선 시황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순 없다”면서 “업계에서도 과거처럼 시장 규모가 확 커질 거라고 예상하는 이들이 적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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