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의 내밀한 함정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사퇴했지만 사모펀드 관련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사진=뉴시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사퇴했지만 사모펀드 관련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사진=뉴시스]

권력형 비리로 번질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모펀드 투자 논란의 핵심 쟁점이다. 이를 둘러싸고 곳곳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지만, 진실을 가려내는 일은 검찰과 사법부의 몫이다. 우리가 진짜 경계해야 할 건 이번 사건이 ‘제2, 제3 조국펀드’의 시발점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익명을 원한 사모펀드 운영업체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조국 일가의 사모펀드 투자 내역은 올해 초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당시 적혀있었다.

그땐 대수롭지 않던 일이 왜 지금 와서 문제가 되는가. 인사청문회라는 촘촘한 검증 시스템 덕분이다. 거꾸로 말하면, 인사청문회 수준의 검증 시스템이 아니면 권력을 지닌 이가 사모펀드를 활용해 시장을 교란해도 국민들이 알 길이 없다는 뜻이다.” 사모펀드, 어찌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사모펀드 시장의 맹점을 짚어봤다.


“사모펀드라는 포장이 횡령, 배임, 주식 차명보유 등의 범죄를 숨기려는 논리에 쓰일 수 있다.” 김경율 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의 설명이다. 김 전 소장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의 투자를 두고 ‘권력형 범죄’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모펀드가 사건의 본질을 가리고 있지만 핵심은 주가조작과 차명투자이고, 그 중심에 조 전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와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씨가 있다는 거다.

지금껏 드러난 자금의 흐름을 보면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정 교수는 지난해 1월 조씨 아내의 이름을 빌려 코스닥 상장기업인 WFM의 주식을 사들였다. 이후 이 회사는 배터리 사업 관련 호재성 공시를 잇달아 냈다. 이 주식 실물증권이 정 교수의 동생 집에서 발견돼 검찰에 압수됐다.

계속되는 투자 논란

정 교수와 WFM의 접점은 이뿐만 아니다. 가로등점멸기 회사 웰스씨앤티가 합병ㆍ우회상장을 노린 것으로 알려진 기업이 바로 WFM이다. 웰스씨앤티는 조 전 장관 가족이 투자한 블루펀드 운용사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코링크PE)가 최대주주다. 정 교수는 WFM으로부터 자문료를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 정 교수와 조씨가 WFM의 주가를 의도적으로 띄우기 위한 작전을 벌였다는 김 전 소장의 주장은 합리적인 의심이다.

하지만 이 논란을 파고드는 건 여기까지만 하자. 이른바 ‘조국 사태’가 권력형 범죄로 커질지는 아직 예단할 수 없다. 검찰이 핵심관계자인 정 교수와 조씨를 구속해 수사 중이니, 엄정한 결과가 나올 거다. [※ 참고 : 조 전 장관이 청와대 근처 자동입출금기(ATM)에서 정경심 교수 계좌로 송금을 했든, 조 전 장관이 인사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했든 논외로 치자. 이 역시 검찰 수사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사모펀드가 ‘진실을 가리는 눈’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조국 사태’ 다음을 경계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조국사태가 터질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중견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 A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조국 일가의 사모펀드 투자 내역은 올해 초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당시 적혀 있었다.

그땐 대수롭지 않던 일이 왜 지금 와서 문제가 되는가. 인사청문회라는 촘촘한 검증 시스템 덕분이다. 거꾸로 말하면, 인사청문회 수준의 검증 시스템이 아니면 권력을 지닌 이가 사모펀드를 활용해 시장을 교란해도 국민들이 알 길이 없다는 뜻이다.”

사모펀드는 말 그대로 사적으로 모집된 자금이다. 현행법상 사모펀드는 경영참여형(PEF)과 전문투자형(헤지펀드) 둘로 나뉘는데, 시장 규모는 400조원에 육박한다. 공모펀드(257조원)보다 되레 몸집이 큰 셈이다. 사모펀드의 장점이자 단점은 규제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공모펀드의 경우 자본시장법상 동일 주식 종목에 자산의 10% 이상 투자할 수 없다. 한 종목에 지나치게 쏠리는 것을 막고 투자위험을 분산하려는 의도에서 금융당국이 만든 규제다. 반면 사모펀드는 한 종목에 100% 투자가 가능하다.

그들만의 리그 사모펀드

이 때문에 사모펀드는 서민이 아닌 ‘큰손’이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PEF의 최소 가입금액은 3억원, 헤지펀드는 1억원이다. 돈만 있다고 누구에게나 가입의 문이 열려있는 것도 아니다. 공모펀드처럼 투자 상품이 공시되지 않아서다. 소개ㆍ추천 등 인맥을 타고 소수(최대 49인)의 개인만 모인다.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정경심 교수의 범죄는 일반적인 금융사범의 혐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사진=뉴시스]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정경심 교수의 범죄는 일반적인 금융사범의 혐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사진=뉴시스]

그렇다고 사모펀드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건 아니다. 나름의 울타리는 있다. PEF는 이름 그대로 상장사든, 비상장사든 ‘경영참여’를 위해 마련된 펀드다. PEF의 경우 ‘기업 지분 10% 이상 확보’ ‘지분 6개월 이상 보유’ ‘대출 금지’ 등의 규정을 지켜야 한다. 헤지펀드는 별다른 규제는 없지만, 10% 이상 기업 지분을 확보하더라도 의결권이 제한되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 진입장벽만 넘으면 길이 순탄해진다. 주식ㆍ채권뿐만 아니라 인프라ㆍ파생상품에 기업 경영권까지 돈을 불릴 수 있는 대상이라면 뭐든 투자 타깃이 될 수 있다. 투자설명서 설명ㆍ교부 의무, 외부감사 등 엄격한 투자자 보호장치가 있는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는 이런 장치가 전무하다. 조 전 장관의 가족이 투자한 펀드의 공식자료, 회계장부, 실제 자금흐름 등이 제각각이었던 이유다.

이렇듯 사모펀드의 실체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누가 투자자인지, 누가 얼마를 투자했는지, 어느 기업에 어떤 목적으로 투자했고 어떤 과실을 거둬 어떻게 나눠 가졌는지는 ‘그들만의 영역’이다. 국내 사모펀드 관계자들도 언론이나 일반에 공개되거나 나서는 것을 극히 꺼린다.

그들 사이에만 오가는 고급 정보라면 조국 일가의 사모펀드 투자가 그랬듯 얼마든지 금융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 한 법무법인의 사모펀드 전문 변호사는 “사모펀드로 불건전 영업이나 법규를 악용하는 경우 이에 상응하는 제재가 현 시점에선 뚜렷하게 없는 상황”이라면서 “금융감독원이 소형 사모펀드 대상으로 전수검사에 나섰지만, 건건이 사후 규제를 하는 방식으론 이들의 불법 행위를 막을 순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사모펀드의 불법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게 곤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인私人간의 계약’이란 이유에서다. 지난 10월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조 전 장관 일가의 투자를 두고 “아직까진 뚜렷한 법률위반사항은 없다”면서 “펀드 시장의 틀 안에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규제를 무작정 강화할 수도 없다. 사모펀드는 기업 입장에선 리스크가 높은 분야에 자금을 공급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한다. 정부 주도만으로 한계가 있는 ‘모험자본’의 공급원이다. 아울러 기업인수와 함께 구조조정 기업의 자산 투자와 인수ㆍ합병(M&A) 시장에서도 사모펀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대규모 손실을 낸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불완전 판매,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중단 사태 등 잇단 금융부실 사태가 터졌음에도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서라도 사모펀드 시장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사모펀드 운용사 A 대표의 설명을 다시 들어보자. “이 시장엔 규제나 정보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투자자 보호가 필요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투자에 조예가 깊은 전문투자자만 들어오는 게 이 시장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하지만 조국 사태로 이런 룰이 손쉽게 깨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시장이 더 혼탁해질지도 모르겠다.” 사모펀드, 이대로 놔둬야 할까 규제책을 강구해야 할까. ‘조국 사태’가 사모펀드 시장을 딜레마에 빠뜨렸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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