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경색과 건설업

지난해 4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시장에선 남북경제협력 기대감이 커졌다. 철도와 도로 등 인프라 조성이 우선 진행될 가능성이 높았고, 이에 따라 건설업종을 중심으로 형성된 남북경협 테마주는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남북관계 경색 국면으로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경협 테마주는 찬밥 신세가 됐다. 현재 상황에선 돌파구도 많지 않다. 개성공단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국내 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클 것으로 보인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남북관계 경색과 건설업의 관계를 취재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정책을 꾸준히 추진했지만, 성과라고 할 만한 건 별로 없다.[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는 대북정책을 꾸준히 추진했지만, 성과라고 할 만한 건 별로 없다.[사진=뉴시스]

남북관계가 냉랭하다. 10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 예선전에는 관중도, 기자도, 응원단도 없었다. 중계는 물론 선수간 접촉도 금지됐다. 10월 25일엔 북한으로부터 금강산의 남측 관광시설을 철거하라는 통지가 날아왔다. 실무는 문서로 하자는 전제와 함께였다. 얼굴조차 마주보기 싫다는 의미다. 지난해 4월 극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지 고작 1년 반 만의 일이다. 

사실 남북관계 기상도는 어떤 대북관을 가진 정부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크게 달랐다. 다만 유화적인 대북정책을 편다고 해서 늘 관계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남북관계는 변수가 많다. 문제는 시장의 기대를 한껏 모았던 남북경제협력마저 무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발언은 이를 뒷받침한다. 

10월 23일 북한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국무위원장은 “남측과 협의해 남측시설들을 싹 들어내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해야 한다”면서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 관광도 하지 못한다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고 잘못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발언이 ‘자체적인 개발’을 염두에 두고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언론 기고를 통해 “남북관계 경색의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금강산에서 남한의 흔적을 지우려는 것”이라면서 “현대적이고 세련된 관광시설들을 건설해 중국인 관광객들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개성공단에서도 남측 시설물 철거를 요구하고 독자적으로 개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당초 전략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대북제재를 없애고, 투자를 유치하는 데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자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은 남한과 경제협력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김 국무위원장의 발언이 나오면서 남북경협주가 일제히 하락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북한에 직간접적인 자산을 가진 기업들이다. 금강산에 골프장과 온천 리조트를 갖고 있던 아난티의 10월 23일 주가는 전날보다 8.1% 떨어졌고, 금강산 관광사업을 주도했던 현대아산의 장외주식도 11.98% 급락했다. 현대그룹의 주력사인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도 7.4%나 떨어졌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문제는 국가경제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업종이 받는 충격도 크다는 점이다. 당초 건설업종은 남북경협 수혜업종으로 꼽혔다. 남북경협에선 철도와 도로 등 인프라 조성이 최우선으로 논의됐고, 이에 따라 신규 사업 진출이 가능할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분위기를 띄웠고, 너도나도 건설업종 매수에 뛰어들었다. 이는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4월 27일) 직후인 4월 30일 대형 상장 건설사 5곳(현대건설ㆍ삼성엔지니어링ㆍ대림산업ㆍGS건설ㆍ대우건설, HDC현대산업개발은 분할 재상장으로 제외)의 주가는 전날보다 적게는 3%대(대림산업 3.8%), 많게는 20%대(현대건설 26.2%)까지 올랐다.

상승세는 약 한달간 이어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부동산 규제 정책 마련에 속도를 내던 시기였고, 실적과는 무관하게 고른 상승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남북경협 기대감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이들 건설사 가운데 당초 주가를 유지하거나 오른 곳이 거의 없다. 오른 곳은 대림산업이 유일하다. 

대북정책 올인, 말짱 도루묵

이런 면에서 건설업종은 사면초가다. 규제 정책은 지속되고 있고, 글로벌 경제 상황도 좋지 않다. 막연했던 남북경협 기대감마저 사라졌으니 기댈 곳이 딱히 없다. [※ 참고 : 실적이 확 떨어진 대림산업 주가가 오른 걸 설명할 수 없다. 다만, 대림산업은 건설 외에 석유화학제품을 제조하는데, 이 비중이 14.4%(2분기 기준)에 달한다. 타 건설사들과 차별화되는 이유로 풀이된다.] 

건설업종뿐만이 아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2년 전부터 꾸준히 방북을 통한 자원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지만, 현 정부 내내 방북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올해 5월 승인을 받았을 때는 이미 남북관계가 식은 후였고, 북한과의 일정 조율 과정에서 차일피일 미뤄지다 결국 방북은 물 건너갔다. 게다가 향후 남북대화가 재개되더라도 이미 올해만 해도 12발이나 발사체를 쏴 올린 상황에서 관계 개선이나 분위기 전환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대북제재 때문에 공단 재개를 못한다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공단 재개를 위한 북측과의 논의를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로 미루면서 소극적 태도를 취한 탓에 정책적 실패를 야기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 대북정책에 사실상 올인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내놓으면서 남북경협의 기대감을 한껏 올린 것도 정부다. 하지만 고작 1년 반 만에 남한은 ‘꼴도 보기 싫은’ 존재가 됐다. 남북경협은 지난해 12월 ‘남북 철도ㆍ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 외엔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건설업종 성장성이 사라진 것도 그래서다. 개성공단 문제는 이전 정부 이후 아무런 진척도 보지 못했다. 쌓아올린 공든 탑이 모래성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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