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업황 제대로 보고 싶다면…

구리를 흔히 ‘닥터코퍼(Dr.Copper)’라고 부른다. 구리 가격이 오르면 경기가 살아난다는 데서 기인한 말이다. 조선업에선 컨테이너선이 구리와 같다. 컨테이너선 발주가 증가한다는 건 물동량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이는 곧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시그널로 읽을 수 있다. 문제는 최근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실적을 살펴보면 컨테이너선 물량이 쪼그라들었다는 거다. 지금은 수주의 양만이 아니라 질도 살펴야 할 때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한국 조선과 컨테이너선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컨테이너선 발주량이 증가한다는 것은 물동량이 늘고, 경기가 살아난다는 시그널이다.[사진=연합뉴스]
컨테이너선 발주량이 증가한다는 것은 물동량이 늘고, 경기가 살아난다는 시그널이다.[사진=연합뉴스]

국내 조선업을 둘러싼 부활론의 중심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LNG운반선은 국내 조선사들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주력 선종 중 하나다. LNG운반선은 건조가 까다롭기 때문에 기술력이 높고 노하우가 풍부한 국내 조선소에 유리하다. 세계 시장에서 발주되는 LNG운반선을 국내 조선사들이 싹쓸이하는 이유다. 

둘째, 최근 환경 이슈가 대두되면서 친환경 연료로 꼽히는 LNG 관련 선박 발주가 급증하고 있다. 일례로 LNG운반선 및 부유식 LNG 저장ㆍ재기화 설비(FSRU)의 발주량은 2015년 33척에서 지난해 68척으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 오는 2020년엔 카타르와 러시아, 모잠비크 등에서 대형 LN G 프로젝트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프로젝트가 본격화하면 총 70~80척의 LNG운반선이 발주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조선사들이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LNG운반선 발주가 늘고 있으니 조선업의 부활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게 당연하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세계 조선 1위 자리를 탈환할 수 있었던 것도 LNG운반선의 발주량이 늘어난 효과를 톡톡히 누린 덕분이다.

향후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실적에서 LNG운반선의 비중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높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3분기 콘퍼런스콜에서 “3분기 매출에서 LNG선의 비중이 약 38%를 차지했다”면서 “2020년엔 50%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실적이 회복될 만한 요인이 있다는 건 분명 반길 일이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발주량이 LNG운반선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수주의 양量이 아닌 질質의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컨테이너선 발주의 부재다. 글로벌 컨테이너선 발주량이 급감하면서 국내 조선사들의 컨테이너선 수주량도 쪼그라들었다. 올해 1~9월(이하 같은 기준) 조선3사가 수주한 물량은 총 72척인데, 그중 컨테이너선은 5척에 불과하다.

지난해와 2017년엔 각각 37척, 11척을 수주했다. 다만, 정부의 지원을 받아 현대상선이 발주한 20척의 컨테이너선을 제외하면 지난해 컨테이너선 수주실적도 17척에 그친다. 조선3사는 2015년만 해도 36척의 컨테이너선을 수주했다. 이를 감안하면 최근의 수주실적은 매우 저조하다.

혹자는 컨테이너선 발주가 줄어든 게 뭐 그리 대수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심각한 문제다. 예를 들어보자. “구리 가격이 오르면 경기가 살아난다”는 말이 있다. 자동차ㆍ건설ㆍ해운 등 제조업 전반에 쓰이는 구리의 수요 증가가 경기가 활발해질 거라는 시그널로 읽히기 때문이다. 구리를 ‘닥터코퍼(Dr.Copper)’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런 구리 역할을 하는 게 조선업계에선 컨테이너선이다. 컨테이너선 발주가 많아진다는 건 물동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라서다. 컨테이너선 발주가 경기를 읽는 선행지표로 쓰일 수 있다는 거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기가 회복되고 기업들이 살아나야 조선사들에도 선순환 효과가 돌아온다.

반면, LNG운반선은 환경ㆍ자원개발 이슈와 상관관계가 높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종이 하나에 치우치면 불안요소가 많다”면서 “특히 LNG는 프로젝트에 따라 발주가 있다 없다 하기 때문에 리스크가 큰 데다, 설비 효율성도 그리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컨테이너선의 앞날을 낙관할 수도 없다. 컨테이너선 발주와 경기 회복을 막는 걸림돌이 산적해 있어서다. 사실 올해 컨테이너선 발주가 급증할 거란 전망이 많았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에 따라 2020년부터 선박연료의 황 함유량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스크러버(황산화물 저감장치)를 장착하거나 LNG 연료를 사용하는 친환경 선박을 새로 발주할 거라고 내다봤다는 거다.

하지만 미중 무역갈등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ㆍBrexit) 등 악재가 맞물린 데 이어, 친환경 선박의 발주에 불확실한 변수들이 달라붙으면서 예측이 빗나갔다. 이은창 연구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일부 국가가 스크러버를 장착한 선박의 입항을 거부했다. 황 함유량이 적은 저유황유는 엔진의 기계적 결함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받았다. 선주들이 친환경 선박의 발주를 꺼린 이유다.” 

미중 무역갈등은 해상물동량의 회복을 막는 원인 중 하나다.[사진=연합뉴스]
미중 무역갈등은 해상물동량의 회복을 막는 원인 중 하나다.[사진=연합뉴스]

2020년 상반기께엔 컨테이너선 발주 추세가 어떻게 될지 가늠해볼 만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그때엔 미중 무역협상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은 교착상태에 빠진 브렉시트 문제를 풀기 위해 오는 12월 조기 총선을 치른다. 아울러 황 함유량 규제가 본격 시행되면 눈치를 보던 선주들이 스크러버를 장착할지, LNG추진선으로 전환할지, 저유황유를 쓸지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반짝 회복하고 말 게 아니라 진짜 호황을 맞으려면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고 제조업 부진이 해소되는 수밖에 없다. 조선업을 논하면서 수주의 양만 따져선 안 되는 이유다. 수주의 질을 봐야 앞날이 보인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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