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가 민중시위의 ‘상징’으로 떠오른 까닭
조커가 민중시위의 ‘상징’으로 떠오른 까닭
  • 이혁기 기자
  • 호수 362
  • 승인 2019.11.06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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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의 씁쓸한 경제학

세계가 ‘조커 신드롬’을 앓고 있다. 익숙한 캐릭터임에도 올해 들어 유독 조커를 찾는 이들이 많다. 영화 ‘조커’의 작품성이 뛰어나서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조커가 마주한 현실이 우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호응을 얻고 있다는 분석도 많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시위에서 조커옷을 입은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조커 속 씁쓸한 경제학을 살펴봤다.

세계 민중시위에서 조커는 상징적인 캐릭터로 떠올랐다.[사진=뉴시스]
세계 민중시위에서 조커는 상징적인 캐릭터로 떠올랐다.[사진=뉴시스]

올해 ‘할로윈데이(10월 31일)’의 주인공은 악당 ‘조커’였습니다. 할로윈데이 이전부터 이태원 거리엔 너나 할 것 없이 조커를 상징하는 피에로 분장을 한 이들로 넘쳐났습니다. 조금이라도 계단이 많은 장소에선 조커들이 유명 포즈를 잡기 위해 분주합니다. 이쯤 되면 ‘조커 신드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커에 열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건 영화 ‘조커’가 인기몰이를 하면서부터입니다. DC 필름스가 지난 10월 초에 개봉한 이 영화는 인기 만화책을 원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봉 직전까지 흥행 여부를 두고 말이 많았습니다. 기존의 리메이크 영화는 대부분 원작의 선善한 캐릭터들이 핵심인물이었는데, 이 영화는 악역인 ‘조커’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어서였죠. 조커역을 맡은 배우(호아킨 피닉스)가 얼마나 뛰어난 연기를 펼칠지도 관심거리였습니다.

어쨌거나 이런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 S)에 따르면 조커는 국내에서만 총 505만명(10월 30일 기준)의 관객수를 기록하면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전세계에서도 조커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개봉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총 8억5203만 달러(9930억원·10월 28일 기준)의 입장권 판매액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실 조커가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재창조된 건 아닙니다. 이미 조커는 ‘배트맨1(1989년)’을 시작으로 ‘다크나이트(2008년)’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년)’ 등 DC 필름스 영화에서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광기에 사로잡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조커의 성격은 그의 이번 영화에서도 대표적인 특징으로 자리잡았죠.

이미 익숙한 캐릭터임에도 사람들이 유독 ‘올해의 조커’에 열광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선 조금 더 깊게 영화를 파고들어야 합니다. 먼저 주인공인 조커는 기존 만화에서 주인공 ‘배트맨’의 대표적인 숙적으로 등장해 왔습니다. 다른 악역과 다른 독특한 점은 조커의 탄생 배경이 불분명하다는 것인데, 이 영화는 평범했던 주인공이 어떻게 조커로 변모할 수 있었는지의 과정을 다룹니다.

빈민층에 속하는 주인공은 코미디언의 꿈을 안고 소일거리를 하며 근근이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크고 작은 사건에 계속 휘말리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광대 일자리도 잃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이들은 별로 없었죠.

그러면서 주인공의 내면에 점차 분노가 쌓이게 됩니다. 영화는 주인공의 상황과 대조를 이루는 부자들의 호화로운 삶도 담고 있습니다.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내세워 조커의 분노가 더 극명하게 표현되도록 만들기 위해서죠. 결국 화가 극에 달한 주인공은 조커라는 악당으로 변합니다.

불행에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지금의 현실과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유엔이 발표한 ‘2019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행복지수 10점 만점에 5.8점을 받아 전체 156개국 중 54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2015년 47위에서 7계단 하락한 순위입니다. 기대 수명과 1인당 국민소득에선 9위·27위로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사회적 자유(144위)·부정부패(100위)·사회적 지원(91위)은 나쁜 점수를 받았습니다.

소득격차도 마찬가지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소득동향조사에서 올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70만4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의 월소득은 132만5500원으로 같은 기간 고작 0.04%(550원) 늘었습니다. 빈부격차가 그만큼 심해졌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소득 불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5분위 배율은 5.3배로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참고 : 5분위 배율은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평균소득을 1분위 가구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입니다. 수치가 클수록 소득 불평등이 심하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관객들이 조커에 자기 자신을 깊게 투영하고 있다는 점을 흥행 이유 중 하나로 꼽습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국내에서 악역 주연의, 그것도 예술영화에 속하는 조커가 500만명을 돌파한 사례는 이례적”이라면서 “주인공이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고 말했습니다. 소시민으로 현실에 치여 사는 주인공에게 관객들이 크게 공감하면서 영화가 입소문을 타게 됐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조커가 처한 현실에 공감하면서 동시에 매력을 느낀다.[사진=뉴시스]
사람들은 조커가 처한 현실에 공감하면서 동시에 매력을 느낀다.[사진=뉴시스]

조커가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중시위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도 이런 부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레바논에서 부패 청산과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반정부 단체의 시위에선 조커 분장을 한 이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부의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돼 3주째 이어지고 있는 칠레 산티아고의 시위에서도 조커 복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현실에 대항하는 조커의 방식마저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 속에서 조커는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행사하고 이를 정당화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악당을 만든 것을 전적으로 사회 탓으로 돌리는 영화의 전개 방식도 현실에 끼워 맞추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를 본 관객들은 조커를 매력적인 인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곽금주 서울대(심리학) 교수는 “폭력적인 언행의 인물임에도 관객이 조커에 매력을 느끼는 건 그가 일반인이 할 수 없는, 하지만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사회에 저항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만화영화 속 상상의 캐릭터였던 조커. 하지만 영화의 옷을 입으면서 어느새 전세계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거듭났습니다. 악인惡人임에도 조커가 저항과 자유의 상징이 된 건 그만큼 우리의 현실이 부조리하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IT전문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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