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여성고위직 확대는 상식적인 행보

“왜 여자고위직만 인위적으로 늘려야 하느냐. 남성 역차별 아니냐.” 정부가 공공ㆍ민간부문에서 여성고위직 확대 제도를 도입하려 하자 이런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을 개선하기 위한 비영리단체 WCD의 이복실(59) 한국지부 회장은 “고작 3%밖에 안 되는 비율을 높이자는 것”이라면서 “이는 상식적인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이 회장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뭘까. 더스쿠프(The SCOOP) 김정덕 기자가 남성의 입장에서 이 회장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이복실 WCD 한국지부 회장은 “여성고위직 확대 제도는 상식적인 것”이라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이복실 WCD 한국지부 회장은 “여성고위직 확대 제도는 상식적인 것”이라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즘 젊은 세대들이 가장 열망하는 건 ‘공정경쟁’이다. 20~30대 젊은이들이 채용비리 사건과 같은 불공정한 경쟁을 접했을 때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공정경쟁’이라는 주제 앞에선 똘똘 뭉칠 정도다.

그런데 공정경쟁 프레임에 ‘여성’이 엮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여성가족부가 여성고위직 확대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자 젊은 남성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식이다. 그 자체가 역차별이라는 이유에서다.[※참고 :  여가부 캠페인의 공식 명칭은 여성고위직할당제 캠페인이다.]

여성 역시 물러서지 않는다. 남성 중심으로 기울어진 사회에서 ‘여성을 위한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근거다. 이를테면 젠더 갈등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이복실(59) 세계여성이사협회(WCD) 한국지부 회장에게 혜안을 부탁했다. WCD는 유리천장지수(직장 내 여성차별 수준 평가 지수)와 기업 여성 임원비율 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단체다. 

✚ WCD의 존재 목적 중 하나가 여성 임원비율 개선이다. 여가부의 여성고위직 확대 노력은 이를 위한 적극적인 활동이다. 그런데 이를 차별이라 생각하는 젊은 남성들이 많다. 
“사실부터 명확히 짚고 가자. 여성고위직 확대를 위한 여가부의 노력은 일종의 캠페인일 뿐이지, 제도화된 것도 강제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반대) 분위기는 잘 알고 있다.”


✚ 이전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남성들이 역차별론을 주장하는 근거다. 
“여성 지위가 예전보다 높아진 건 부정하기 어렵다. 여기에 낮은 청년취업률, 수십년 일해도 월급쟁이로는 서울에 집 한채 갖기 힘든 상황, ‘미투(me too) 운동’ 등도 한몫했을 거라 생각한다. 일자리가 많고, 먹고 살기 괜찮았다면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그럼에도 여성고위직 확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뭔가.
“그게 공정한 경쟁이기 때문이다.”


✚ 여성이 공정한 경쟁을 못하고 있나.
“그렇다.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 어떤 수치인가.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OECD 회원국(2019년 기준 29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유리천장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관리자 비율(올해 1분기 기준)은 12.5%, 여성임원 비율은 2.3%다.”


✚ OECD 회원국 중 어느 정도 수준인가. 
“29위다. 꼴찌다.” 

 

✚ 아무래도 선진국보다는 낮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럼 이건 어떤가. WCD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지역 20개국(1557개 상장기업 대상) 여성임원 비율 순위에서도 한국은 2.4%로 꼴찌(2017년 기준)였다. 놀랍게도 캄보디아의 여성임원 비율이 16.5%로 우리나라보다 높았다.”


✚ 다른 근거자료도 있는가. 
“지난 10월 15일 글로벌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가 39개국(세계 주요국 56개국 3000개 기업 조사, 샘플 추출이 가능한 39개국 선정)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 순위에서도 한국은 3.1%로 39위였다. 여성 차별이 심한 이슬람국가(파키스탄 5.5%)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 국내 대기업의 여성임원 비율도 낮은가.
“지난해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은 3.6%였다. 최근 유니코서치 조사에 따르면 매출액 100대기업 가운데 여성임원을 가장 많이 배출한 기업이 삼성전자(55명)였는데, 비율로 따지면 고작 5.2%다. 어떤 통계를 가져와도 한국의 여성임원 비율은 바닥 수준이다.” 


✚ 여성임원 비율이 낮다는 게 불공정 경쟁의 근거가 될 수 있나. 
“일부에선 채용에서부터 여성이라는 이유로 탈락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능력이 있다고 쉽게 올라갈 수 있겠나.”


실제로 가스안전공사, 대한석탄공사, 서울교통공사, 킨텍스 등에서는 여성지원자의 면접 점수를 인위적으로 낮추고, 대신 남성지원자를 뽑아 논란이 됐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 등 금융권에선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100명이 넘는 여성지원자들의 점수를 조작해 무더기로 탈락시켰다. 국립한국교통대에선 여성특성화고 지원자 전원을 배제하는 일도 있었다. 불과 1~3년 전에 벌어진 일이다. 

✚ 여성임원을 인위적으로 늘리면 부작용도 있을 듯한데.
“우려를 잘 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남성 중심의 경직된 조직문화가 유연하게 바뀔 수 있다.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시세이도의 사례는 본받을 만하다.”


지난 10월 15일, WCD 한국지부 설립 3주년 기념 포럼에서 우오타니 마사히코 시세이도 회장은 여성임원 비율 증가가 어떤 변화를 불러오는지 사례를 발표했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 화장품 전문기업 시세이도는 2000년대 이후 성장이 정체돼 있었다.

우오타니 회장은 2014년 취임해 경직된 조직문화를 개선한다면서 여성임원을 적극 늘렸다. 고객의 80% 이상이 여성이었지만, 사내에 여성임원이 단 한명도 없던 시세이도에 변화가 찾아왔다. 다양성이 뒷받침된 조직은 활기를 띠었고, 이를 발판으로 시세이도는 지난 5년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9%, 41% 증가했다. 

✚ 여성임원을 늘렸더니 기업이 살더라는 건가. 
“우오타니 회장이 말한 핵심은 ‘여성임원을 늘리라’는 게 아니라 ‘공정하게 승진 기회를 주라’는 거였다. 그가 임원 추천을 하라니까 줄줄이 남성후보자만 올라왔다. 여성 중엔 없느냐 했더니 그제야 여성을 추천했다고 한다. 바로 이런 거다. CEO가 편견을 버릴 수 있도록 분위기를 바꿔줘야 한다. 그런데 상당수 기업에선 그런 생각조차 못하니까 일정 수준까지는 여성임원을 적극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실제로 유럽 선진국들도 적극적인 여성임원 확대를 통해 조직문화를 개선해왔고, 지금도 이를 유지하고 있다. 

✚ 여성임원 비율을 높이려 해도 정작 결혼이나 출산 등으로 빠져나가는 인력이 많을 듯한데.
“좋은 지적이다. 그래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각종 제도들이 필요하다. 일례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는 기업들이 늘면서 가사분담이 가능해지고, 여성들의 부담도 줄고 있다. 우리나라 평균 근무시간이 너무 길어서 줄인 건데, 당연히 해야 하는 걸 했더니 여성의 기회도 늘었다는 얘기다. 여성임원을 확대하면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거다.”


✚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수년 전부터 남성들보다 뛰어난 ‘알파걸(리더십과 학업성적이 우수한 여성)’이 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숱하게 나왔다. 중요한 건 능력 있는 알파걸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느냐다. 앞서도 말했지만 여성에겐 분명히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여기에 막혀 나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동안 여성들에게 스스로 능력을 키워 유리천장을 깨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유리천장은 절대 혼자서 깰 수 없다. 위와 아래에서 함께 깨야 한다. 불공정하게 존재하던 유리천장을 깨는 건 결코 특혜일 수 없다.”

글 =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사진 = 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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