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관람객을 관람하다

❶박찬경, 해인海印, 2019년, 시멘트, 5×110×110cm(15), 20×110×110cm(1)
❷박찬경, 세트, 2000년, 사진, 슬라이드 연속 상영, 13분 40초

박찬경은 영상·설치·사진 작업뿐만 아니라 미술을 주제로 한 집필, 전시 기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해온 작가다. 분단과 냉전, 민간신앙, 동아시아의 근대성 등을 주로 다룬 그의 작품은 국내외 미술계에서 크게 주목받아 왔다.

‘박찬경–모임 Gathering’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와 신화를 중심으로, 재난 이후의 삶과 미술 제도를 향한 비판과 성찰을 담고 있다. 동아시아의 문화적·역사적 맥락에 집중했던 작가는 이번에도 이같은 관심사를 미술 언어로 풀어낸다. 또다른 주 소재인 한국의 민간신앙과 무속도 다뤄진다.

전시는 ‘액자 구조’로 구성되는데 입구 쪽에 설치된 ‘작은 미술관’이 그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미술사와 미술관이 인위적으로 주입된 틀이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작가의 미술 제도 비판과 성찰은 ‘재난 이후’라는 주제로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석가모니의 열반 등을 다룬 작품으로 이어진다.

❸ 박찬경, 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 2019년, 디지털 이미지로 전환한 필름 사진, 오토래디오그래피, 글, 슬라이드 연속 상영, 24분 40초. 카가야 마사미치, 모리 사토시와 협업. ❹박찬경, 모임, 2019, 디지털 사진, 80×80cm(24)
❸ 박찬경, 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 2019년, 디지털 이미지로 전환한 필름 사진, 오토래디오그래피, 글, 슬라이드 연속 상영, 24분 40초. 카가야 마사미치, 모리 사토시와 협업 ❹박찬경, 모임, 2019, 디지털 사진, 80×80cm(24)

‘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는 원전사고 피폭 마을을 촬영한 박찬경의 사진과 방사능을 가시화하는 일본 작가 카가야 마사미치의 오토래디오그래피 이미지가 교차되는 작업이다. 나란히 전시된 ‘세트’와 함께 서로 다른 소재의 유사성에 주목해 접점을 찾는 작가의 작업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전시실 중앙에 펼쳐진 ‘해인海印’은 물결무늬를 새긴 시멘트판과 나무 마루 등으로 구성된다. 미술을 ‘미술에 관한 대화’라고 규정하는 작가의 예술관처럼, 이곳에서는 5주간(11월 8일~12월 5일) 전시 주제와 관련된 강연과 토론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어서 만나게 되는 작품은 대표작 ‘늦게 온 보살’이다. ‘석가모니의 열반’이라는 종교적 사건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동시대 재난을 묶은 55분짜리 영화다.

마지막 작품은 지금까지 본 5전시실의 1대 25 배율 축소 모형인 ‘5전시실’이다. 전시를 보고 난 후 다시 전시장 전체를 조망함으로써 미술관의 관람 관습인 ‘액자 속 스토리’에 익숙해진 관객들을 액자 밖으로 끌고 나온다. 틀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식대로 깨어있는 관객들이 전시 제목처럼 ‘모임’에 초대받은 이들임을 이야기한다. 2020년 2월 23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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