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이 AI 만났을 때

VR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한계가 뚜렷했다.[사진=연합뉴스]
VR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한계가 뚜렷했다.[사진=연합뉴스]

가상현실(VR) 기술은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다. 스마트폰을 살 때 사은품으로 VR 기기를 주기도 하고, 주요 도심 곳곳에선 VR방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VR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의 기반 기술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감 나는 콘텐트가 구현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업계는 이런 VR의 한계를 극복할 열쇠로 인공지능(AI)을 지목했다. IBM과 더스쿠프(he SCOOP)가 VR과 AI의 시너지 효과를 분석해봤다. 

고개를 돌리면 시선이 그쪽으로 쏠린다. 걷는 대로 주변 환경이 바뀌고, 손짓 한번으론 총을 쏠 수도 있다.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한 게임 콘텐트 이야기다. 현실에서 이 기술을 마주하는 건 어렵지 않다. VR 콘텐트만 따로 모아놓은 공간인 VR방이 도심 곳곳에 있으니 말이다. 여기선 고글만 착용하면 놀이공원에 가지 않고도 놀이기구를 타는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VR 기술이 대중적으로 흥행했다고 보긴 어렵다. 실제 현실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즐기기엔 기술적인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한마디로 사용자를 끌어당길 만한 콘텐트가 없다는 얘기다. 

멀미 증상도 문제다. VR 콘텐트는 몸이 움직이는 만큼 가상의 시야가 똑같이 움직이지 않아 사용자의 어지러움을 유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몰입형 기술(Immersive technology)’이 본격 등장하면 무미건조한 VR 콘텐트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몰입형 기술은 시각ㆍ청각ㆍ촉각ㆍ후각ㆍ미각 등 오감을 가상현실에 재현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도 현실세계와 유사한 경험을 제공하는 콘텐트를 말한다. 눈속임이 아니라 현실과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꿈의 기술이란 소리다. 가령, 유저가 가상현실을 관찰하는 데 머물러 있는 VR 콘텐트에 AI를 활용한 몰입형 기술을 접목하면 더욱 실감나는 가상현실이 만들어지는 식이다. 

글로벌 VR 기기 제작사 오큘러스의 스타트업 페이블 스튜디오가 만든 ‘벽 속에 늑대가 있어’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공개된 이 영화는 늑대들이 자기 집의 벽 속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 어린 소녀, 루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닐 게이먼이 그림을 그리고 데이브 맥킨이 글을 쓴 동명의 유명 그림동화를 원작으로 했다. 

관객들은 VR 기술을 통해 영화의 세계관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리고 믿기 어려운 주장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이 소녀의 친구의 역할을 맡는다. 관객이 루시에게 말을 걸면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것은 물론 관객의 공간적 위치를 인식하거나 행동을 예측해 유연하게 반응한다.

가령, 물건을 건네거나 눈을 맞춤으로써 주인공인 루시와 친밀도를 높일 수 있다. 루시와 유대감을 형성한 관객이 스토리에 빠져들게끔 하는 게 이 영화의 전략이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현실과의 벽을 허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이때 루시의 대답과 행동을 결정짓는 건 AI의 머신러닝 기술이다. 대화 속 문장에 있는 가장 중요한 단어와 의도를 읽어내는 AI 성능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 덕분에 관객도 손쉽게 가상현실 공간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페이블 스튜디오의 공동 창립자인 에드워드 사치는 “AI는 가상현실 속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실감나게 만들 수 있다”라면서 “이를 본격적으로 활용하면 제작자가 만든 정형화된 캐릭터와 스토리가 아닌 관객이 결정하는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뿐만 아니라 게임업계에서도 VR과 AI를 접목하는 시도가 있었다. 미국의 인기 SF 드라마 ‘스타트렉’을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렉 브릿지 크루’다. 이 게임은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우주함선 ‘USS 아이기스’를 직접 조종하는 게 핵심이다.

게임 플레이어는 선장 혹은 승무원이 돼 화기관제, 에너지 관리 등 다양한 부분을 관리한다. 적의 습격에 맞서 싸우거나 워프로 도망을 칠 수도 있다. 이때 게임 속 인물에게 명령을 내리는 건 키보드나 컨트롤러가 아니다. 바로 플레이어의 음성이다.

플레이어가 말을 하면 게임 속 가상인물이 이를 이해하고 적절한 반응을 보인다. 음성 인식 및 자연어 처리에 강점이 있는 IBM의 AI 왓슨의 기술이 사용된 결과다. IBM 왓슨 개발자인 마이클 루덴은 “대화형 AI 기술을 통해 게임의 스토리가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몰입형 기술의 완성도는 아직 초기 단계다. 아무리 방대한 데이터를 모은 AI를 활용했다지만, AI와 주고받는 문장을 ‘대화’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점이 많아서다. 하지만 몰입형 기술은 IT 자문기관 가트너가 2019년 ‘10대 전략 기술 트렌드’ 중 하나로 선정할 정도로 기대가 높다. 

현실세계와 닮은 가상현실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면, ‘킬러 콘텐트 부족’란 VR 업계의 고민도 말끔히 해소될 공산이 크다. AI라는 든든한 아군을 얻은 덕분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도움말 | 한국IBM 소셜 담당팀 blog.naver.com/ibm_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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