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과 기형적 구조

국내 면세점의 매출은 증가세가 꺾인 적 없다. 지난해에도 19조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 상당수 면세점 업체들이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적자를 이겨내지 못하고 면세점 특허권을 반납해버린 대기업도 있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그 이유를 찾아봤다.

국내 면세점 업계가 송객수수료 경쟁만 벌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단일 점포 규모로는 사업을 지속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중장기적으로 수익성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특허권을 반납하기로 했다.” 10월 29일 두산이 면세점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보다 한달 전 폐점한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의 ‘갤러리아면세점63’에 이어 두번째 철수다.

2015년 면세점 특허권(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을 획득한 두산은 이듬해 5월 동대문에 ‘두타면세점’을 개장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동대문의 유일한 면세점이라는 점과 ‘심야면세점’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개점 첫해 매출액 목표를 5000억원으로 잡을 만큼 의욕도 충만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첫해 매출액은 1100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매출액이 6800억원 규모로 늘었지만 적자가 쌓여갔다. 두타면세점의 누적 적자는 630억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타면세점 관계자는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누적 적자가 컸다”며 “적자를 개선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사업을 철수했다”고 말했다. 그는 “면세점 빅3(롯데·신라·신세계)처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는 어렵다”며 “면세사업은 당분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두타면세점보다 앞서 사업을 철수한 한화의 갤러리아면세점63도 1100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줄이지 못한 게 컸다. 국내 면세점 산업이 대기업도 버티지 못하는 ‘레드오션’으로 전락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팔아도 남는 것 없는 면세시장

흥미로운 점은 투자업계의 전망이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면세점 업계와 달리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삼성증권은 지난 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국내 면세점 산업이 2021년까지 연평균 20% 수준의 매출 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내수 부진에서 자유로운 데다 따이공代工(중국인 보따리상)의 수요가 여전하다는 게 근거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면세점 업계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국내 면세점의 매출은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올 1~3분기 국내 면세점의 누적 매출은 18조98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액 18조9601억원에 육박하는 수치다. 올해 매출액이 25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매출 증가세가 올해에 국한된 일도 아니다.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 HAAD) 보복으로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반토막으로 줄어든 2017년에도 면세점의 매출은 2016년 대비 2조1927억원(17.8%)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는데, 정작 기업이 망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그 첫째 원인으로 ‘송객수수료(리베이트)’를 꼽는다. [※ 참고 : 송객수수료는 여행객을 유치해온 여행사나 가이드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비용이다. 최근에는 따이공에게 할인·환급 등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무슨 말일까. 의문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보자. 성장가도를 달리던 면세점 산업이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2016년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타격을 입은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때 구세주로 등장한 것이 ‘따이공’이다.

따이공은 SNS 전자상거래 플랫폼 웨이상微商에 한국의 면세품을 공급하는 보따리상으로,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이후 급증했다. 따이공의 효과는 확실했다. 유커가 발길을 끊었지만 면세점의 전체 매출은 2016년 12조2757억원에서 지난해 18조9602억원으로 늘어났다.


중국인이 국내 면세점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걸 감안하면 따이공이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낸 셈이다. 하지만 따이공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따이공이 매출에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석되자, 면세점 업체들은 ‘따이공 유치전’을 벌였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따이공 유치가 면세점 실적으로 연결되면서 면세점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10% 안팎이던 송객수수료가 40%까지 치솟은 적도 있다.” 그는 “따이공의 성장하면서 B2C (기업대 소비자간 거래)이었던 국내 면세점 산업이 B2B(기업대 기업간 거래)로 변화했다”며 “따이공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고 토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따이공은 기업 형태로 진화했다. 문제는 지금이다. 국내 면세점의 ‘따이공 의존도’가 심화했기 때문이다. 큰 손으로 성장한 따이공을 잡으려면 더 많은 송객수수료를 헌납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 면세점이 지출하는 송객수수료는 지난해 1조276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1조957억원) 대비 16.51%나 증가한 수치다. 국내 면세점의 매출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망하는 기업이 속출하는 이유다.

영업이익도 줄어들었다. 국내 면세점 점유율 1위 롯데면세점의 영업이익률이 2015년 8.88%에서 지난해 3.86%로 떨어진 이를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한화와 두산이 면세점 사업에서 손을 뗀 것도 실속 없는 송객수수료 경쟁에서 패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양날의 칼이 된 따이공

면세점 업계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한다. 사드 보복 등으로 유커가 감소하는 데다 정부의 시내 면세점 확대로 경쟁이 불가피했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당장의 이익을 좇은 결과라는 지적도 숱하다.

면세점 업계의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바잉파워를 높여야 한다던 면세점이 송객수수료 경쟁에만 열중하면서 따이공의 바잉파워만 높여준 꼴이 됐다. 면세산업에서 필수적이라는 규모의 경제가 송객수수료 지급 능력을 의미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또다른 관계자의 일침이다. “면세점 수를 늘린 정부를 탓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송객수수료 경쟁을 시작한 건 면세점이었다. 시장점유율을 지키려는 욕심이 대기업의 욕심이 많이 팔아도 남는 게 없는 이상한 시장을 만든 것 아니겠냐.” 시장이 무너질 땐 이유가 있다. 면세점도 마찬가지다. 면세점이 ‘기형적 시장’이 됐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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