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혈경쟁에 따이공까지… 나가야 산다

롯데면세점이 창이공항의 담배·주류 면세점 운영권을 획득했다. 2015년 높은 임대료를 이유로 철수한지 4년여 만이다. 당연히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다. 임대료 때문에 발을 빼놓고 임대료를 감수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또 뭐냐는 거다. 하지만 롯데면세점이 창이공항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이곳에 진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국내 면세점 업계의 출혈경쟁이 임계점에 달했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롯데면세점의 창이공항 재진출에 숨은 함의를 취재했다. 

롯데면세점이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점의 담배‧주류 면세점 운영권을 따는 데 성공했다.[사진=연합뉴스]

# 2014년 1월 신라면세점이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점(1~3터널)의 화장품·향수판매장 운영권을 따냈다. 면적만 6000㎡(약 1996평) 규모로 2017년 완공 예정이던 제4터미널 화장품·향수 매장 운영권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시장에서는 2010년 세계 최초로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 유치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또 하나의 쾌거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2011년 창이공항의 면세점 매출은 10억 달러로 세계 공항 면세점 가운데 인천공항(15억3000만 달러)과 두바이공항(15억2000만 달러)에 이어 3위였다. 하지만 국내 면세업계 다른 한축인 롯데면세점은 신라면세점의 창이공항 진출을 ‘독이 든 성배’라고 깎아내렸다. 가격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창이공항 면세점 임대료의 영향으로 실적을 내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2012년부터 창이공항 면세점에서 패션·잡화 등 2개의 매장을 운영한 롯데면세점은 적자의 늪(2014년 40억원)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높은 임대료를 이겨내지 못한 롯데면세점은 2015년 9월 창이공항 면세점에서 발을 뺐다. 경험 덕분인지 롯데면세점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창이공항 신라면세점의 적자는 2014년 391억원, 2015년 610억원, 2016년 376억원 등으로 나날이 쌓였다. 2017년과 2018년엔 각각 199억원, 104억원으로 적자폭을 줄긴 했지만 ‘마이너스의 늪’에선 빠져나오지 못했다. 면세점 업계에선 이부진 사장이 무리를 했다는 분석이 쏟아졌고, 롯데면세점이 제때 철수했다는 해석이 주를 이뤘다.

# 그랬던 롯데면세점이 달라진 행보를 보인 건 올해다. 2015년 9월 철수한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점 사업(1~4터미널 입출국장 담배·주류판매권)에 또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신라면세점 역시 입찰에 참여했다. 결과는 롯데의 승리였다. 매장 면적만 8000㎡(약 2500평) 규모로 사업기간은 2020년부터 6월부터 6년(4년+2년)이다. 롯데면세점은 창이공항 면세점에서 연 5000억~6000억원의 매출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롯데면세점이 창이공항 면세점에 다시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익명을 원한 중소 면세점업체 사장 A씨는 “이 질문엔 국내 면세점의 고민과 한계, 그리고 위기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

■따이공 역효과 = 무슨 말일까. 질문의 답에 조금씩 다가가보자. 무엇보다 국내 면세점 업계의 침체가 길어지고 있다. 대기업인 한화·두산이 철수를 선언할 정도로 시장 분위기가 냉랭하다. 한국으로 물밀듯이 들어오던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가 줄어든 탓이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유커는 478만명에 그쳐, 최고점을 찍었던 2016년(806만명) 대비 40.6%나 감소했다.

혹자는 따이공代工(중국인 보따리상) 덕분에 실적이 늘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언뜻 맞는 말 같지만 사실이 아니다. 국내 면세점에서 중국인이 올리는 매출 중 80%를 차지하는 따이공이 면세점 성장의 ‘견인차’을 한 것은 맞다. 하지만 따이공 탓에 면세점의 수익성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일례로 롯데면세점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비 45.3% 줄어든 712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신라면세점의 3분기 영업이익도 전년비 24% 감소했다. 더 많은 따이공을 유치하기 위해 ‘리베이트’를 쏟아부은 게 역효과를 낳은 것이다. 외형이 훌쩍 성장한 국내 면세점 업체들이 적자에 허덕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롯데면세점이 해외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면세점 출혈경쟁 = 이유는 또 있다. 국내 면세점 시장은 ‘레드오션’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2014년 6개에 불과했던 서울 시내면세점은 정부가 특허권을 남발하면서 지난해 13개로 늘어났다(지난 9월 30일 갤러리아면세점63은 폐점했다). 이래저래 치열해진 국내 시장에서는 성장을 담보할 수 없게 된 셈이다.

롯데면세점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은 국내시장에서 안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해외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신라면세점 측도 같은 입장이다. “창이공항 면세점은 사업군별로 다른 업체를 선정해 입찰에 성공하기 어렵다는 걸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하지만 시장점유율과 입지를 높일 수 있는 기회라 입찰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롯데면세점은 창이공항에 또다시 입점했고, 만족할 만한 실적을 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롯데면세점의 창이공항 진출에서 봐야 할 건 실적만이 아니다. 레드오션이 돼버린 국내 면세점의 현주소, 출혈경쟁, 리베이트의 검은 그림자, 유커와 따이공 등 숱한 문제점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면세점이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해외로 나가는 건 국내 면세점 시장이 포화상태라는 의미일 것”이라며 “면세점 시장은 황금알을 낳는 ‘면세 특혜’ 시장에서 대기업도 생존하기 어려운 격전지가 된 지 오래다”고 토로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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