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중견 면세점 잔혹사

면세점 시장에서 중소·중견 면세점은 약자다. 규모의 경제에 밀리고 출혈경쟁에 치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면세점 시장에 진출한 중소·중견 면세점이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시내 면세점을 더 늘린다는 계획이다. 시장의 현실을 보지 못한 주먹구구식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중소·중견 면세점 잔혹사를 흐름대로 짚어봤다. 

면세점 시장의 성장세에도 중소‧중견 면세점의 실적은 알화일로를 걷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부흥기 = 2012년은 면세점 산업의 성장세가 본격화한 때다. 한류韓流 열풍에 한국을 찾은 일본과 중국인 관광객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한일 관계가 냉랭해졌지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일본을 대신한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가 대거 몰려왔기 때문이다. 일본어가 가득했던 명동에 중국어가 들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면세점 사업은 부흥기를 맞았다. 국내 면세점 시장은 2010년 4조5000억원에서 2014년 8조3000억원으로 3년 만에 2배가량 성장했다. 통 큰 왕서방의 등장에 면세점 업계는 쾌재를 불렀다. 롯데면세점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2012~2014년 각각 40.1%, 73.6% 증가했다.


신라면세점의 매출액은 2012년 1조9018억원에서 2013년 2조6122억원으로 37.3%나 증가했다. 당시 유일한 중소·중견 면세점이었던 동화면세점의 실적도 나쁘지 않았다. 빅2의 틈바구니서도 2012년 4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듬해 70억원의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지만 2014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70억원, 50억원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격동기 = 면세점 산업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독과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황금알을 낳는 면세점 시장을 롯데와 신라 두 대기업이 독차지(시장점유율 80%)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시장과 정치권에서는 면세점 사업을 재벌 특혜사업이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면세점 사업의 공공성을 위해 중소기업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이는 2012년 홍종학(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한 관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현실이 됐다. 법안 통과로 면세점 특허권의 특허 기간은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됐다. 자동 갱신됐던 특허권 연장도 재입찰 방식으로 변경됐다. 여기에 면세점 특허권의 일정 비율을 중소·중견기업에 할당하게 했다.

■ 개방기 = 2015년 1월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3곳) 추가를 시작으로 면세점 시장의 문을 확대했다. 면세점이 황금알을 낳는 시장이란 생각에 너도나도 발을 집어넣었다. 면세점 특허권 입찰이 있을 때마다 ‘면세점 쟁탈전’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던 이유다. 그렇게 2014년 6곳이었던 서울 시내 면세점은 지난해 13곳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 참고: 현재 서울 시내 면세점은 롯데면세점(명동·코엑스·월드타워), 신라면세점(장충동), 신세계면세점(명동·강남), HDC신라면세점(용산), 현대백화점면세점(무역센터), 두타면세점(동대문), 동화면세점(광화문), SM면세점(인사동), 탑시티면세점(신촌) 등 12곳이다.]

새로 진입한 면세점들이 문을 열 때만 해도 시장의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면세점을 먹여 살린 유커가 2013년 432만명에서 2016년 806만명으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7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태가 터지면서 시장이 달라졌다.


■ 위축기 = 그때부터 유커 대신 급부상한 따이공代工(중국인 보따리상)을 잡기 위한 출혈경쟁이 시작됐다.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 면세점도 출혈경쟁을 버텨내지 못했다. 9월 사업을 철수한 한화갤러리아면세점63과 최근 사업 철수 의사를 밝힌 두타면세점이 대표적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신세계면세점은 3년 만에 매출액 규모를 3101억원(2016년)에서 2조4609억원(2018년)으로 8배 가까이 늘리는 데 성공했고, 롯데와 신라와 함께 빅3의 반열에 올랐다.

그 사이 중소·중견 면세점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다. 늘어나는 적자를 떠안아야 했다. 면세점 업계는 중소·중견 면세점의 상황을 고사 직전이라고 평가했다. 언제 철수를 선언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다. 동화면세점은 2016년 이후 3년 연속 100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다. 2017년 구찌와 루이비통이 철수한 데 이어 지난해 샤넬과 에르메스도 문을 닫았다. 인력구조조정 등을 통해 비용절감에 나서고 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하나투어 계열사인 SM면세점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2015년 이후 한번도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다. 문을 열 당시 6개층이었던 면세점 매장은 2개층으로 줄었다. SM면세점 관계자는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적자폭이 줄어드는 등 실적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과의 싸움이 쉽지는 않지만 나름 자구책을 찾고 있다”며 “면세점 사업에서 철수할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생존 위협받는 중소·중견 면세점


면세점 시장이 중소·중견업체에 기회가 아닌 죽음의 땅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 건 오래전 일이다. 그럼에도 중소·중견기업을 회생시킬 방법도 마땅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서울 시내 면세점을 3곳 더 늘린다는 계획이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시장에 뛰어든 기업의 상황은 외면한 채 경쟁 활성화, 외국인 편의 증진 등을 이유로 면세점을 늘리기만 하고 있다”며 “대기업도 5년을 버티지 못하는 시장에 누가 참가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서용구 숙명여대(경영학) 교수는 “상위 3곳의 쏠림 현상이 심한 상황에서 추가로 면세점을 허용하는 건 출혈경쟁만 부추길 것”이라며 “면세점 시장은 공급을 늘리기보다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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