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SE7EN ❷

‘SE7EN’ 에 등장하는 베테랑 형사 서머셋(모건 프리먼)은 정년을 일주일 앞두고 방전 상태에 빠진다. 평생을 극악무도한 사건 현장에서 뛰어다녔지만 세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으니 허무할 따름이다. 제대 날짜만을 손꼽는 말년 병장과 같은 모습이다. 서머셋 형사는 퇴임하면 시골에 가서 농장 일이나 하며 평화롭게 말년을 보낼 꿈을 꾼다.

도시 아닌 곳에선 아이 낳아 교육시킬 수 없고, 도시에선 아이 낳아 교육시키고 싶지 않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도시 아닌 곳에선 아이 낳아 교육시킬 수 없고, 도시에선 아이 낳아 교육시키고 싶지 않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런 서머셋 형사 곁에 새파랗게 젊은 밀스(브래드 피트) 형사가 ‘시골’에서 후임자로 온다. 밀스는 서머셋과는 정반대로 시골의 따분함이 지겨워 ‘액션’이 넘치는 대도시로 기를 쓰고 찾아온 형사다. 서머셋이 보기엔 참으로 철딱서니 없거나 ‘미친 놈’이다. 그런 그들 앞에 연쇄살인의 조짐이 보이는 사건이 터진다.

밀스는 시골 구석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사건다운 사건을 마주하고 아연 생기가 돈다. 대도시로 애써 전근 온 보람이 있다. 그러나 서장은 밀스를 내치고 사건을 서머셋에게 반강제로 배당한다. 정년퇴임을 일주일 앞둔 그가 사건을 맡는 것은 실로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이지만, 그만큼 서머셋은 이 도시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베테랑이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이 도시의 속살을 모두 알고 있는 서머셋의 경륜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서장 외에 또 한 사람 있다. 전근 온 밀스의 아내 트레이시(기네스 팰트로)다. 서머셋에게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삐딱한’ 남편 밀스와는 달리 트레이시는 서머셋을 집으로 식사 초대도 하고, 밖에서 면담을 신청하기도 한다.

서머셋을 어렵게 카페로 불러낸 트레이시는 어렵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트레이시는 이 소돔과 고모라 같은 도시로 전근 오기 전 임신을 했는데, 이 도시에서 정말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아이에게 과연 ‘할 짓’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마약, 매춘, 강간, 강도 등 모든 죄악이 창궐하는 도시다. 이런 소돔과 고모라로 아기를 불러낸다는 것이 과연 할 짓인지 걱정이다. 

트레이시는 죄악이 창궐하는 도시에서 아이를 낳아도 될지 걱정이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트레이시는 죄악이 창궐하는 도시에서 아이를 낳아도 될지 걱정이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신참 밀스 형사의 주거환경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그야말로 ‘기찻길 옆 오막살이’다. 미국에서 기찻길 옆 아파트는 가난의 상징과도 같다. 우리나라 동요에서는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고 하지만,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온 집안이 흔들리고 모두가 식탁의 컵을 꼭 쥐고 앉아있어야 하는 아파트에서 ‘아기 아기 잘도 잔다’는 불가능해 보인다.

서머셋 형사는 자신의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한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서머셋에게도 한때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아이를 갖고 싶어 했지만, 서머셋이 아수라장 같은 이곳으로 아이를 불러내기 원치 않아 결국 그의 곁은 떠났다는 개인사를 들려준다.

영화 속에서 우울한 서머셋이 도서관에서 뽑아 드는 한권의 책 표지가 등장한다.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의 「캔터베리 이야기」다. 초서가 바라보는 세상도 우울하다. “세상은 불행으로 가득 찬 길거리다.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는 순례자들이다.” ‘순례’란 도달할 수 없는 ‘성지’를 의무적으로 찾아 떠나는 고행의 여정이다. 

결혼도 포기하고 아이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결혼도 포기하고 아이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머셋이 트레이시에게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낳든 안 낳든 너의 결정이다. 그래도 낳는다면 열심히 잘 키워라”라는 말밖에 달리 있을 수 없다. 의무적인 고행의 순례길을 떠나든 말든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서머셋 형사와 트레이시의 대화에서 결혼도 포기하고 아이도 포기하는, 소돔과 고모라를 사는 우리 시대의 고민이 전해진다. 18세기를 살았던 장 자크 루소도 이미 ‘도시는 신의 가래침’이라고 진저리를 쳤던 모양인데, 21세기 도시는 오죽하겠는가.

도시 아닌 곳에서는 살 수 없다. 그렇지만 ‘신의 가래침’ 같은 도시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도시 아닌 곳에서는 아이 낳아 교육시킬 수 없고, 도시에서는 아이 낳아 교육시키고 싶지 않다. 서머셋과 트레이시의 딜레마이자 우리 모두의 딜레마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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