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상가 죽어가는 이유

지하철상가에 입점하려면 공개경쟁입찰을 통해야 한다. 공개경쟁입찰의 장점은 뚜렷했다.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기회가 열려있었고, 사업을 시작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막대한 권리금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나빠지자 부작용을 노출했다.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솟았고, 재입찰 때마다 들어가는 철거ㆍ인테리어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활력이 감돌던 지하철상가에 텅 빈 공실만 늘어난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지하철상가가 죽어가는 이유를 취재했다. 

지하철상가의 공실이 늘고 있다. 온라인몰에 경쟁력이 밀려 매출이 감소한 탓도 있지만 비싼 임대료가 부담스러운 이유도 크다.[사진=연합뉴스]
지하철상가의 공실이 늘고 있다. 온라인몰에 경쟁력이 밀려 매출이 감소한 탓도 있지만 비싼 임대료가 부담스러운 이유도 크다.[사진=연합뉴스]

한 때 지하철상가는 소상인들의 터전이었다. 권리금으로 줄 목돈이 없어도 작은 점포를 열 수 있었다. 유동인구가 많아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손님이 많았다.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많아 입점 경쟁도 치열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옛말이다. 최근엔 지하철상가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상인들은 더 이상 입점하려고 목매지 않고,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도 숱하다. 지하철상가엔 휑한 공실만 늘고 있다. 

이런 현실은 통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하철상가 내 임대계약을 맺은 점포 수는 지난 2015년 1747개에서 올해 9월 1597개로 150개 줄었다. 같은 기간 공실률은 15.6%에서 11.8%로 하락했지만 지하철상권의 변화를 감지한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상가 규모(2071개→1811개)를 축소한 결과다. 

지하철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교통공사의 임대수익도 같은 기간 1061억원에서 68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지하철상가 위주로 매장을 운영하다 현재 철수 단계에 접어든 한 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하철상가는 더 이상 황금알을 낳던 거위가 아니다. 상권이 죽어가고 있다.” 이게 지하철상가의 현주소다. 

그렇다면 지하철상가는 왜 죽어가고 있을까. 일부에선 급격하게 커진 온라인 시장을 이유로 꼽는다. 값싼 온라인몰을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지하철상권의 열기가 급속하게 식었다는 얘기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온라인 시장의 성장으로 직격탄을 맞은 건 지상 상권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지하철상권의 침체가 유독 심각하다. 지하철상가에 둥지를 틀었던 수많은 소상인과 기업들이 서둘러 발을 빼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어서다. 그중 하나는 임대료다. 2000년대초 지하철상권에 활력이 감돌 때, 자금력이 있는 기업들이 입점 경쟁에 뛰어들면서 임대료가 부쩍 올랐다. 

임대료가 높아도 그만큼 돈이 잘 벌리면 문제없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지하철상가에서 액세서리 점포를 운영 중인 김명희(38ㆍ가명)씨는 “10년 전보다 임대료가 3배 이상 뛰었다”면서 “강남, 잠실, 사당 등 일부 목이 좋은 곳을 제외하곤 손님이 뚝 끊겨서 임대료를 충당하기에도 벅차다”고 토로했다. 


온라인몰과 대형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지하철상가의 경쟁력이 줄었다면 임대료도 낮아져야 맞다. 문제는 한번 뛴 임대료는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하철상가에 입점하려면 공개경쟁입찰을 통해야 하는데, 이 시스템이 가진 한계 때문이다. 

지하철상가의 임대료는 곧 공개경쟁입찰에서 낙찰된 가격이다. 하지만 아무 금액으로나 입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기준점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는 공개경쟁입찰 전에 감정기관을 통해 상가의 기초가액을 산정하는데, 감정평가에 이전(5년 전) 낙찰가액이 반영된다. 상권이 활발했던 시기의 임대료가 반영되기 때문에 현재의 침체된 시장상황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온라인에 밀린 지하철상가

서울교통공사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낙찰가격은 기존 가격이 반영되기 때문에 시장이 시들해진 현 상황에선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면서 “임대료를 현실적으로 낮추기 위한 방안을 고려 중이다”고 설명했다. 

상인들이 부담을 느끼는 건 임대료뿐만이 아니다. 재입찰 때마다 점포 인테리어를 다시 해야 한다는 것도 문제다. 지하철상가의 한 임차상인은 “재입찰을 한다고 해도 임차계약기간(기존 5년)이 끝나면 점포를 철거해야 하는데, 철거하는 데 약 1000만원이 들고 재입찰에 성공해 인테리어를 다시 하면 또 4000만원가량이 든다”면서 “계약기간이 5년이라고 치면 1년에 1000만원 꼴로 추가비용이 드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사업을 접을 때까지 타의로 인테리어를 손볼 필요가 없는 지상 상권과의 차이다. 

사실 이것도 공개경쟁입찰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지하철상가의 근본적인 한계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공공기관이라 지방계약법에 따라 특별한 예외 사유가 있지 않으면 공개경쟁입찰을 해야 한다”면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거나 명도문제가 남아있는 상품(점포)을 입찰할 순 없다”고 해명했다.

더 심각한 건 지하철상권의 침체가 소상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지하철상가에 진출했던 대기업이나 덩치가 큰 프랜차이즈 업체 중에서도 발을 빼는 곳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이들이 임대하고 있는 점포 수가 상당한 만큼 공실률도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는 거다. 일례로 지하철상가에서만 60~70개의 매장을 운영하던 화장품 제조ㆍ유통업체 에이블씨앤씨는 현재 일부 목 좋은 지역만 남겨놓고 모두 철수한 상태다. 

현실과 동떨어진 임대료 탓…

익명을 원한 지하철상가 입점 업체 관계자는 “서울교통공사는 목이 좋은 곳과 좋지 않은 곳의 여러 점포를 묶어서 임대하는데, 이젠 시장 상황이 나빠져 수십개의 매장을 모두 운영하기가 벅차다”면서 “간혹 1~2곳씩 나오는 스팟성 매물만 임차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인들이 지하철상가를 떠나고 있다. 1차 문제는 온라인몰과 대형쇼핑몰에 경쟁력이 밀린 탓이다. 하지만 2차 문제는 지하철상가 내부에 있다. 현실에 맞지 않는 임대료와 임대시스템 문제가 상인과 업체들을 내쫓고 있다. 상인들이 떠나는 게 자의 때문만은 아니라는 거다. 지하철상가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자정노력이 필요한 때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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