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의 경제학

언제 무엇이 뜰지 모르는 시대다. 배우 김응수처럼 자고 나니 스타가 된 이도 있고, 펭수처럼 뜬금없이 빅히트를 친 캐릭터도 있다. 요즘 말로 ‘밈(인터넷 상에서 유행하는 행동·양식, 혹은 그의 이미지나 영상)’을 잘 캐치한 덕인지, 어쩌다 유행의 물결에 올라탄 덕분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이런 유형의 마케팅은 한계도 내포하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밈의 경제학을 살펴봤다. 

홍보에 밈이나 유행어를 이용하면 단기간에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보에 밈이나 유행어를 이용하면 단기간에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4일, 버거킹은 유튜브에 새로운 광고 영상을 올렸다. 주요 제품인 ‘더블패티 더블 올데이킹’ 홍보 영상이다. 광고의 주인공은 배우 김응수다. 영상 속 그는 버거킹 매장의 계산대 앞에서 진중한 얼굴로 한참을 고민하다, “묻고 더블로 가!”를 외친다. 김응수가 연기한 캐릭터는 영화 ‘타짜’의 조연인 ‘곽철용’이다. 버거킹이 13년 전 영화에 나온 인물을, 그것도 주인공도 아닌 이를 광고 모델로 세운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 9월 “묻고 더블로 가!”라는 대사가 뜬금없이 온라인을 휩쓸었다. 타짜 시리즈 3편인 ‘타짜:원 아이드 잭’이 개봉하자 1편의 곽철용 캐릭터가 재조명을 받은 거다. 그가 ‘아이언드래곤 열풍’을 만들며 인기를 끌자 업계선 곽철용을 연기한 김응수에게 앞다퉈 러브콜을 보냈다. 

이후 ‘더블’이라는 단어에 착안해 누리꾼이 만든 패러디 광고가 쏟아지자 버거킹은 실제로 김응수를 캐스팅해 광고를 제작했다. 해당 광고의 유튜브 조회 수는  200만을 돌파했다(11월 15일 오후 3시 기준). 영상에는 “광고를 찾아서 본 건 처음이다” “장난삼아 얘기한 게 실제로 광고가 됐다” “진짜 광고로 볼 수 있어서 흐뭇하다”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콘텐트가 소비자의 공감대를 얻어 재생산되면 기업의 홍보보다 파급력이 강하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콘텐트가 소비자의 공감대를 얻어 재생산되면 기업의 홍보보다 파급력이 강하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언제 무엇이 뜰지 모르는 시대다. 수많은 유행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자고 일어났는데 전성기를 맞는 이들도 숱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바쁜 건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마케팅 업계다. 브랜드의 홍보수단으로 이용할 ‘유행’을 좇기 바쁘다. 화제가 된 콘텐트의 인기가 식기 전에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곽철용처럼 특정 캐릭터가 인기를 끄는 것을 두고 ‘밈(meme·인터넷 상에서 유행하는 행동·양식, 혹은 그의 이미지나 영상)’이라고 부른다. 어디서 유행하는 밈이 나올지는 예측할 수 없다. 최근엔 새로운 캐릭터가 ‘대세’ 자리를 꿰찼다. EBS가 만든 펭귄 캐릭터 ‘펭수’다. 사기업뿐만 아니라 공기업, 언론사까지도 펭수 모시기에 혈안이다. 식품업계의 한 홍보 관계자는 “요즘은 사람들이 어떤 포인트에 열광하는지 짐작하기 어렵다”며 “나도 펭수의 영상을 좋아하지만 어떻게 급작스럽게 떴는지는 의문”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온라인 신조어나 언어유희를 브랜드 홍보에 사용하는 기업도 늘었다. 업력이 긴 브랜드도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인 제품은 올해 출시 35주년을 맞은 ‘팔도 비빔면’이다. 팔도는 지난 2월 기존 비빔면보다 5배 매운 한정판 제품을 출시했다. 레트로풍 패키지로 출시된 제품의 이름은 ‘팔도 비빔면’이 아닌, ‘괄도 네넴띤(괄도=팔도, 네넴띤=비빔면)’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유행

괄도 네넴띤은 팔도가 만든 말이 아니다. ‘야민정음(한글 자모를 모양이 비슷한 다른 자모로 대체하는 것)’으로 만든 신조어다. 장수 제품에 과감히 온라인 신조어를 적용한 거다. 팔도는 당초 500만개만 생산했지만 빠르게 품절돼 500만개를 추가 생산했다. 현재는 비빔면 매운맛으로 정식 판매 중이다. 팔도 관계자는 “스테디셀러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도전이었다”며 “소비자의 공감을 얻은 덕에 좋은 결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언어유희를 사용한 곳은 또 있다. 올해로 론칭 46주년을 맞은 코오롱스포츠다. 최근 청계산에 콘셉트스토어를 열면서 간판을 ‘솟솟618’로 달았다. 언뜻 코오롱스포츠와 관련 없는 말 같지만 눈으로 보면 다르다. ‘솟솟’ 글자 위로 겹치는 익숙한 그림은 바로 코오롱스포츠의 로고(소나무 두 그루)다. 코오롱FnC 관계자는 “아웃도어 시장이 갈수록 침체하는 상황에서 리브랜딩이 필요했다”며 “브랜드의 DNA를 담은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밈이나 유행을 이용한 마케팅은 빠르게 홍보 효과를 내기엔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공감대만 잘 형성한다면 소비자가 홍보 콘텐트를 스스로 재생산한다는 것이 장점이다. 소비자의 재생산은 기업이 직접 홍보하는 것보다 훨씬 파급력이 강하다. 소비자의 코드를 잘 공략한다면 소위 ‘대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주의할 점도 있다. 유행을 이용한 마케팅의 타깃층이 협소해서다. 온라인에서 빠르게 떴다 사라지는 ‘밈’을 아는 소비자는 한정적이다. 평소 SNS나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젊은층이라도 이를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유행의 주기가 워낙 빨라서 막상 홍보에 활용했을 때 반응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소비자의 반응이 긍정과 부정으로 극명하게 나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한계점이다. 정연승 단국대(경영학과) 교수는 “신조어나 은어를 이용해 반짝 관심을 끄는 마케팅 전술은 오히려 만인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며 “기존의 고정 소비자 중에선 유행을 이용하는 홍보에 거부감을 느껴 되레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만한 요소를 가려내는 것도 중요하다. 패션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엔 가치소비가 대세지 않나. 제품을 구입할 때 기업의 도덕성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됐다. 광고 문구·모델·이미지 등을 정할 때도 꼼꼼히 조사하고, 사회적 맥락을 잘 읽어야 한다. 자칫하면 한번에 소비자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정연승 교수도 “특정 시점에선 문제가 없더라도 사회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기도 한다”며 “유행을 따르는 마케팅에는 항상 리스크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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