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고 부식된 기억들

❶남관, 푸른 땅⑶, 1967년, 캔버스에 오일, 114.5×87.5㎝, 현대화랑 제공 ❷남관, 음영, 1984년, 캔버스에 오일, 199×298㎝, 현대화랑 제공
❶남관, 푸른 땅⑶, 1967년, 캔버스에 오일, 114.5×87.5㎝, 현대화랑 제공 ❷남관, 음영, 1984년, 캔버스에 오일, 199×298㎝, 현대화랑 제공

자신만의 추상언어로 ‘동서양이 융화된 세계’를 표현했던 남관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는 1990년, 생을 마칠 때까지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창작 활동에 매진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영역을 선보이며 국제적으로도 크게 성공을 거뒀다.

‘남관의 추상회화 1955-1990’전이 개최된다. 전시는 작가가 파리로 건너간 1955년부터 세상을 떠난 1990년까지 제작한 주요 작품을 망라해 선보인다. 남관은 1955년 44세의 나이로 프랑스로 떠났다. 국제 미술의 중심지 파리 몽파르나스에 화실을 마련한 그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작가들의 아지트인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수학하며 추상화 작업을 시작했다.

1956년 파리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현대국제조형예술전’에 참여하고, 1958년 한국인 최초로 파리 화단을 이끈 전위적 예술모임인 ‘살롱 드 메’에 초대받았다.

❸남관, 정(靜)과 대화, 1978년, 캔버스에 오일, 73×115.5㎝, 현대화랑 제공 ❹남관, 삐에로 가족 85-A, 1985년, 캔버스에 오일, 129×159㎝, 현대화랑 제공
❸남관, 정(靜)과 대화, 1978년, 캔버스에 오일, 73×115.5㎝, 현대화랑 제공 ❹남관, 삐에로 가족 85-A, 1985년, 캔버스에 오일, 129×159㎝, 현대화랑 제공

‘파리 시대(1950~1960년대)’의 남관은 고대 유물에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때 묻은 벽, 황폐한 뜰, 오래된 성처럼 보이는 풍경을 회색이나 자색 계열의 물감을 사용해 녹슬고 부식한 듯 표현했다. 그는 수많은 이야기가 응축된 시공간의 질감을 캔버스에 담고, 동양적이고 종교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일련의 추상화들을 발표했다.

이 시기의 남관은 작품의 모티브를 자신의 전쟁 경험에서 얻었다. 해군종군화가단으로 활동하며 목격한 전쟁의 참상을 작품에 담아낸 것이다. 작가 역시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내 그림의 모티브는 자주 전쟁의 기억에서 온다”고 밝혔다. 1962년부터는 고대 상형문자나 한자와 유사한 형상을 화면에 도입하는 실험을 전개하기도 했다.

1968년 귀국 이후 ‘서울 시대’의 남관은 독특한 인간상과 색채에 집중했다. 콜라주와 데콜라주(콜라주 방식을 역이용해 화면에 붙인 재료를 떼어내 그 부분에 다시 색을 칠하는 기법)를 자유롭게 구사해 자신만의 추상 언어를 완성해갔다. 어두웠던 ‘파리 시대’의 회색빛 화면이 청색을 중심으로 밝아졌고 남관 회화의 핵심적 조형 언어로 꼽히는 얼굴(마스크) 이미지도 이 시기 등장했다.

‘정과 대화’ ‘내 마음에 비친 상들’ ‘어떤 형태’ ‘삐에로의 꿈’ 등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이 시기 작품들은 명상적이며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흐른다. 
남관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11월 30일까지 개최된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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