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즙주스와 식약처의 모르쇠

시중에 유통되는 주스의 종류는 수십가지가 넘는다. 그중 대다수는 ‘100% 과즙’ 주스다. 언뜻 보면 신선한 과일로만 만들었다는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각종 첨가물이 들어가는 데다, 신선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농축환원주스도 100% 과즙주스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이를 한눈에 파악하고 구분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를 개선할 책임은 식약처에 있지만 수년째 바뀐 건 없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과즙 100% 주스의 진실을 취재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주스엔 대부분 100% 과즙이라는 문구가 있다. 하지만 이중 진짜 100%는 드물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시중에 유통되는 주스엔 대부분 100% 과즙이라는 문구가 있다. 하지만 이중 진짜 100%는 드물다.[사진=더스쿠프 포토]

# “우리가 진짜 100%입니다.” 한 대형마트의 냉장음료 코너. 음료제조업체에서 과일주스를 홍보하기 위해 파견 나온 판촉사원의 설명이다. 실제로 해당 제품의 겉면에는 ‘포도과즙 100%’라고 적혀있다. 그 제품만이 아니다. 냉장음료 코너에 비치된 5개 브랜드 주스 가운데 4개 제품엔 모두 과즙 100%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100%라는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과일 외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진짜 100%, 진짜일까. 

# 직장인 이보연(35세ㆍ가명)씨는 퇴근길에 집 앞 편의점에서 오렌지주스를 하나 집어 들었다. 처음 보는 제품이었지만 ‘과즙 100%’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평소 주스를 즐겨마시던 이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계산을 하고 나왔다. 100% 주스치고는 가격이 저렴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PB(Private Brand) 상품이라 그런가보다 여겼다. 

집에 돌아와 주스를 마신 이씨는 당혹스러웠다. 기대했던 맛이 아니었다. 의아하게 여긴 이씨는 옆면에 적힌 원재료와 함량을 살펴봤고,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오렌지농축액 9.4%(배합 함량 오렌지 100%).’ 이씨는 “오렌지농축액이 9.4%밖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어떻게 과즙 100%라고 적어놓을 수 있는 건지 의문이다”고 토로했다. 

과일 농축액 함유량이 9.4%에 불과한 주스가 어떻게 과즙 100%의 주스로 판매되는 걸까. 이는 주스를 만드는 방식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판매하는 주스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농축환원濃縮還元주스와 착즙주스다. 그중 농축환원주스가 여기에 해당된다. 

제조과정을 간략히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과일에 열을 가해 농도와 당도가 높은 걸쭉한 농축액을 만든다. 여기에 다시 물(정제수)을 넣으면 주스가 된다. 농축했다가 다시 환원했다고 해서 농축환원주스다. 과일을 농축액 상태로 만들면 장기보관과 운반이 용이하기 때문에 많은 음료제조업체들이 이 방식으로 주스를 만들고 있다. 

업계에서 이런 농축환원주스를 과즙 100%라고 부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10개의 오렌지를 10분의 1로 농축했다가 다시 9의 물을 넣으면 10개의 오렌지로 만든 주스가 된다는 셈법에서다. 그래서 농축환원주스의 원재료는 ‘정제수+농축액’으로 이뤄져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과즙 100%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농축환원주스를 제조하는 과정엔 각종 첨가물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일을 농축하는 과정에서 맛과 향이 손실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과당ㆍ향료 등 각종 첨가물이 들어간다”면서 “통상 이런 첨가물들은 농축액 단계에서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첨가물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면 착즙주스는 물을 섞거나 열을 가하지 않고, 과일에서 짜낸 즙만으로 만든 주스를 말한다. 당연히 향이나 맛,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고 신선도가 높다. 원재료 및 함량 표시를 보면 과일 99.9% 혹은 100%라고 표기돼있다. 

농축환원주스가 나쁘고 착즙주스는 좋다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차이를 자세히 알기 어려운 소비자로선 두 제품을 혼동할 여지가 크다는 거다. 실제로 마트에 진열된 농축환원주스엔 대다수 과즙 100%라는 문구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판촉사원이 설명한 ‘진짜 100% 주스’라는 것도 농축환원주스다. 되레 과즙 100%라는 광고문구를 사용하지 않은 유일한 제품이 착즙주스일 정도다. 농축환원주스를 과일만 들어간 주스로 오해하고 구매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은 이유다.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 적절한 규제책을 마련해야 하는 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역할이다. 하지만 식약처는 ‘뭐가 문제냐’는 입장만 거듭 밝혔다. 100% 과일로 만든 농축액에 물을 넣은 것뿐이니 100% 과즙 주스라고 표현해도 된다는 얘기다. 

식약처의 주장을 십분 받아들인다고 해도 소비자들의 혼란을 줄이고 알권리를 충족하기 위해선 100% 과즙이라는 문구와 농축환원 방식으로 제조됐다는 표기가 함께 기재되는 게 맞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농축액에 물을 탄 주스는 농축환원했다는 표시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 예컨대 미국 델몬트사의 같은 오렌지주스라도 일본에서 유통되는 제품엔 농축환원이라고 크게 적혀있고, 우리나라 제품엔 그런 표기가 없다. 

식약처가 이런 지적을 받은 전례가 없는 게 아니다. 2016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순례 의원은 “100% 과즙주스의 허위ㆍ과대광고가 심각하다”는 점을 꼬집은 바 있다. 과일 외에 첨가물이 들어가면 100%라는 표기를 해선 안 된다는 거다. 당시 식약처장이었던 손문기 처장도 이를 시인했다. 그럼에도 별다른 개선책이 마련되긴커녕 식약처는 ‘괜찮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어떤 제품이 좋고 나쁜지를 구분하자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정확히 알고 소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식약처가 지난번 지적을 받았을 땐 잘못을 인정해놓고서도 지금 다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건 분명 문제다”고 지적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