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큰 렌털산업 그림자

렌털서비스 산업은 가파른 성장세가 예상된다. 하지만 그만큼 부작용과 한계점도 많다.[사진=연합뉴스]
렌털서비스 산업은 가파른 성장세가 예상된다. 하지만 그만큼 부작용과 한계점도 많다.[사진=연합뉴스]

최근 냉장고를 렌털한 직장인 김영민(가명)씨는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가격 80만원대 냉장고를 5년 약정에 월 렌털요금 1만8000원에 빌리기로 했는데, 예상보다 비싸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냉장고를 청소해주는 등 서비스가 빼어난 것도 아니었다. 이는 김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알고 보니 값비싼 렌털에 뒤통수를 맞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렌털산업의 그림자를 취재했다.

대기업 싱글 직장인 정민수(37ㆍ가명)씨. 그런데 정씨가 집에서 쓰는 생활용품 가운데 정씨 소유의 것은 많지 않다. 빌려 쓰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정수기와 비데는 물론이고, 세탁소 방문이 쉽지 않아 들여놓은 의류관리기와 미세먼지 때문에 설치한 공기청정기도 모두 렌털 제품이다. TV는 IPTV 서비스를 신청하니 서비스 업체에서 대여해줬다. 이 역시 일종의 렌털이다. 침대 매트리스도 렌털 제품이다. 주기적으로 업체 담당자가 청소를 해주니 진드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정씨는 “지속적인 관리도 받을 수 있고, 재계약 시에는 새제품으로 교체되니까 신경 쓸 일도 많지 않다는 게 장점”이라면서 “목돈이 들지 않아서 그런지 너무 과하지만 않으면 오히려 돈을 모으기 더 쉬운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물론 예전에도 제품이 고가여서 부담스러운 제품 혹은 꼭 필요하지만 사용횟수가 많지 않은 제품은 빌려 쓰는 일이 흔했다. 기업이 수백만원의 복합기를 빌려 쓰고 렌털료를 지불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B2C 시장에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물건을 빌려 쓴다는 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내 호주머니에 돈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물건을 빌려 쓰는 것에 사후관리(AS)나 부품교체 등 서비스가 더해지면서 선택의 여지가 생겼다. 제품의 소유에 무게를 두느냐, 아니면 서비스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구매를 할지 렌털을 할지 달라진다는 거다.

물가는 오르는데 지갑은 얇다는 이유도 있다. 좋은 상품을 구매하고 싶지만, 빚을 갚기 위해 혹은 내집 마련을 위해 아껴야 하는 상황에서 렌털이 대안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인식의 변화에 따라 시장도 크게 성장했다. 지난해 KT경제경영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렌털 시장은 2006년 3조원대에서 2016년 26조원대로 성장했다. 연평균 76.6%의 성장세다. 연구소는 2020년 렌털 시장이 40조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이라 전망했다. 시장이 더 성장할 것이라 전망하는 근거는 뭘까. 

먼저 인구구조의 변화로 가구 수가 절대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가구 수가 늘어난다는 건 절대적인 수요가 증가한다는 얘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1인 가구는 578만8000가구다. 1년 전보다 17만4000가구(3.1%)가 더 늘었다. 통계청은 2020년 1인 가구 수가 719만6000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렌털 종류도 늘고 있다. 정수기ㆍ공기청정기ㆍ비데 등은 기본. TVㆍ세탁기ㆍ냉장고ㆍ의류관리기를 빌려쓰는 소비자도 많다. 생활가전, 침대ㆍ소파ㆍ책상 등 가구, 안마의자ㆍ러닝머신ㆍ전동스쿠터ㆍ전기자전거를 비롯한 헬스케어용품도 렌털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전엔 꿈도 못 꿨던 의류ㆍ액세서리를 빌려주고, 개인용으로 인식되는 컴퓨터나 악기까지 렌털해주는 시장이 있으니 말 다했다.

이진협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존에는 관리 서비스 대상이 아니었지만, 인식의 변화로 관리의 영역이 되는 가전(가구) 등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생활환경의 변화로 신규 가전제품이 필수가전화되는 제품들도 있다. 정수기나 공기청정기 등 환경가전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정수기와 공기청정기의 보급률은 약 45% 수준이다. 미세먼지 문제, 수질 문제 등이 부각하면서 렌털을 통해 정기관리 받으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걸 감안할 때 환경가전 렌털 시장은 더 늘어날 여력이 있다.”

시장에 참여하는 신규 렌털 기업도 증가하고 있다. 돈이 있는 곳엔 사업자가 몰리는 건 당연하다. 지난해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국내 렌털 기업 수가 약 3만개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2015년 약 2만4000개에서 25% 증가한 수치다.

참여 기업들이 늘면서 서비스도 다양해지고 있다. 일례로 현대차그룹은 제네시스 월간 구독 프로그램(월 단위로 차를 바꿔 탈 수 있는 서비스)을 선보였는데, 이 역시 렌털서비스의 일종이다. 

 

그렇다고 시장이 긍정적인 면만 내포하고 있는 건 아니다. 렌털비용과 서비스 품질을 조율하는 건 새롭게 떠오른 숙제다. A렌털업체 김치냉장고를 사례로 들어보자. 이 김치냉장고의 의무렌털기간은 60개월(5년), 월 렌털비용은 1만8000원이다. 계산하면 총 108만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같은 모델의 김치 냉장고는 얼마일까. 약 80만원이다. 5년 할부로 구입하면 대략 월 1만3000원이다. 시중은행 대출금리 최고치인 연 5%의 이자율로 계산해도 월 1만5000원이면 충분하다. 렌털업체 김치냉장고의 월 렌털비용을 같은 대출금리로 비교하면 대략 연 13%의 이자를 내는 셈이다. 일반 대출금리의 2.6배다.

금액 면에서 렌털의 메리트가 별로 없다는 건데, 문제는 서비스도 별로라는 점이다. A렌털업체가 렌털 냉장고를 청소해주거나 관리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단편적인 사례가 아니다. 

성장에 걸맞은 서비스 필요

지난 4일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2019 소비자시장평가지표’에 따르면 렌털서비스 부문은 77.3점을 기록하는 데 그쳐 31개 부문 중 19위(항공기이용ㆍ자동차보험과 동점으로 공동 순위)에 머물렀다.[※참고 : 소비자시장평가지표는 제품ㆍ서비스별 시장이 얼마나 소비자지향적으로 작동하는가를 측정하는 것이다. KCMPI는 이를 점수로 나타낸 것이며, 100점 기준으로 점수가 높을수록 소비자지향성 수준이 높다는 의미다.]

소비자원은 “렌털서비스의 KCMPI 점수는 2017년과 비교해 가장 크게 하락한 시장”이라면서 “소비자 지향성이 미흡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수준의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렌털시장 플레이어들이 눈여겨봐야 할 지표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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