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경제의 진화와 가시

구독경제가 세계적인 소비트렌드로 떠올랐다. 2020년 구독경제 시장은 5300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구독경제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다. 기회가 무궁무진하지도 않다. 가능성을 보고 수많은 업체가 뛰어들었지만 살아남는 업체는 거의 없다. 꽃 한송이, 술 첫잔 등 구독제품의 대상이 갈수록 디테일해지는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진화하는 구독경제시장을 세밀하게 들여다봤다.

구독경제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뛰어드는 업체는 많지만 살아남는 곳은 많지 않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구독경제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뛰어드는 업체는 많지만 살아남는 곳은 많지 않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트리밍 라이프. 소유보단 경험을 중시해 구매 대신 공유하는 소비 행태를 말한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발표한 2020년 소비트렌드 중 하나로, 세계적인 소비 트렌드로 부상한 구독경제(Subscrip tion Economy)도 여기에 해당한다. 

구독경제란 일정금액을 지불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정해진 기간에 이용하는 경제모델이다. 구독경제 시장은 2015년 4200억 달러에서 2020년 530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점쳐진다(크레딧스위스). 2015~ 2016년 국내 시장에 뿌리를 내린 구독경제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크고 작은 기업들의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년 사이 구독경제 스타트업이 가파르게 늘어난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다양해진 구독경제 대상 = 구독경제 서비스는 크게 생활(의식주)과 취미로 분류할 수 있다. 의류와 생필품 구독은 1인 가구의 증가만큼 수요가 늘어난 분야다. 빨래·청소 등 집안일을 해주거나(청소연구소·런드리고·화이트위클리) 면도기·생리대 등 필수 소모품을 채워주는(레이지소사이어티·와이즐리·해피문데이·29BOX)  업체는 이미 숱하다.  

셔츠(위클리셔츠)나 양말(미하이삭스)처럼 직장인에게 필수적인 제품을 서비스하는 곳도 적지 않다. 김진 미하이삭스 대표는 “따로 챙길 필요 없이 매월 다른 디자인의 양말을 신을 수 있어 좋아하는 고객이 많다”며 “질 좋은 양말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미하이삭스는 본래 30년 업력의 양말 생산 업체(태우산업)다. 시장 가능성을 본 김진 대표가 온라인쇼핑몰(발싸개)에 이어 구독경제 업체(미하이삭스)를 세웠다. 

‘술담화(전통주)’ ‘나물투데이(데친 나물)’ ‘스낵트립(수입과자)’ 등 식품 분야에 뛰어든 스타트업도 많다. 이중 ‘데일리샷’은 월 9900원을 내면 제휴업체가 공급한 맥주·와인·칵테일의 첫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안주나 1잔 추가 주문은 필수다. 데일리샷의 회원은 현재 5000 명에 달한다. 김기범 데일리샷 CFO는 “지난해 말 100여개 업체와 제휴를 맺었는데, 1년 만에 370여개로 늘었다”며 “매출도 10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취미나 기호성 제품을 구독 서비스로 연결한 업체도 있다. 매달 미술작품을 대여해주는 핀즐·오픈갤러리, 소확행을 누릴 수 있는 꽃을 서비스하는 꾸까·블루미·모이, 책을 정기배송해주는 플라이북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엔 정기구독 서비스 업체를 모아서 중개하는 플랫폼도 생겼다. 구독 플랫폼 ‘꾸준’은 소규모 구독 서비스 업체를 모아 소개한다. 업체의 제품·업력·특징 등을 상세히 게재해 소비자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생산·판매업체 중에서 구독 서비스를 하고 싶은 곳에는 솔루션도 제공한다. 지난 여름 베타서비스를 선보인 꾸준은 11월 말 정식 서비스 오픈을 앞두고 있다.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베타서비스 기간에만 구독자 1000명이 몰렸다.

■디테일해야 살지만… = 이처럼 구독 서비스 품목이 세세해진 이유는 ‘차별화’에 있다. 국내 구독경제 시장이 초기 단계인 만큼 선점한 경쟁자가 있는 분야에선 살아남기 어렵다. 김기범 데일리샷 CFO는 “사업 초반엔 유사한 업체가 3곳 정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부 문을 닫은 것으로 안다”며 “투자금 유치, 좋은 팀원 등도 사업 운영에 중요한 요소지만 시장을 초기에 선점한 것이 생존에 주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디테일’이 생존을 담보해주는 건 아니다. 오래 살아남기 위해선 자체 생산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독자의 니즈에 맞춰 제품을 정기적으로 보내려면 생산량과 재고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 업체가 아이디어만 가지고 뛰어들었다가 재고를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김진 미하이삭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양말은 최소 생산 단위가 300~500켤레다. 우리는 원래 양말 제조업체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소량 생산이 가능했다. 반면 양말 공장에 위탁했던 경쟁업체들은 재고가 쌓여 결국 사업을 접었다. 정기 배송 외에도 생산이나 단품 판매가 가능해야 한다.”

난관은 또 있다. 수익성이다. 예상만큼 수익성이 나지 않아 정기배송을 포기하는 업체는 수두룩하다. 한 업체의 관계자는 “구독 서비스를 여러개 이용하다 보면 십만원이 훌쩍 넘는다”며 “그중에서 ‘구독 취소’ 당하지 않기 위해 꾸준히 가치를 입증해야 하는 점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규제에 막혀 사업을 접는 곳도 적지 않다.

수제맥주 배송업체였던 ‘벨루가브루어리’는 소비자의 호평을 받았지만 2년 사이 사업을 두번이나 접어야 했다. 주류 통판이라는 이유로 국세청의 제재를 받은 탓이었다. [※참고: 현재 수제맥주 구독 서비스는 중단했다.] 

유통의 전반적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도 구독경제 스타트업의 공통적인 문제점이다. 배운철 소셜미디어 전략연구소 대표의 말이다. “오프라인 구독경제 시장에 많은 업체가 쉽게 진입하지만 확장은 못한다. 사업이 성장하면 배송 지역과 구독자가 늘어나고, 배송·포장·재고 등의 문제도 생기지만 이를 관리할 여력은 없다.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스타트업의 한계다. 처음 뛰어들 때부터 사업 유지를 넘어 확장까지 고려한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 구독경제시장을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는 경고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