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 부활기의 함의

2015년 미국 유통업계는 충격을 받았다.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의 시가총액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유통업계 패권이 온라인으로 넘어간 셈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오프라인의 종말을 예견했고, 실제로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고전하던 월마트가 지난해를 기점으로 반등하고 있다. 오프라인 기반의 온라인 결합 서비스, 식품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내세우면서다. 쿠팡에 밀려 설자리가 좁아진 국내 대형마트들엔 월마트가 한줄기 빛으로 작용하고 있다. 월마트는 국내 대형마트의 미래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마트3사의 꿈과 몽상을 취재했다. 

아마존의 공세에 밀리던 아마존이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반등에 성공했다.[사진=연합뉴스]
아마존의 공세에 밀리던 아마존이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반등에 성공했다.[사진=연합뉴스]

아마존의 공세에 밀려 고전하던 월마트가 반등에 성공했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는 지난해 4분기 어닝서프라이즈 수준의 실적(매출액 1388억 달러ㆍ영업이익 61억 달러)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3분기에도 시장의 기대치(2.9%ㆍ전년 동기 대비)를 웃도는 3.2%의 매출신장률을 기록했다. 이로써 월마트는 미국 시장에서 1280억 달러(약 150조원)를 벌어들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57년 업력을 뒤로하고 고꾸라질 것 같던 월마트의 선전善戰은 국내 대형마트 업계에 한줄기 희망을 선물하고 있다. 이커머스 업체 쿠팡에 일격을 당한 국내 대형마트 업계에 월마트가 롤 모델이 될 수 있어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그렉 포란 월마트 CEO와 접촉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정 부회장은 지난 2월 자신의 SNS 채널에 그렉 포란 CEO로부터 매장 운영방식을 듣고 있는 모습의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월마트 아직 안 죽었지만…

실제로 정 부회장의 고심이 깊어질 만큼 국내 대형마트의 설자리는 좁아지고 있다. 업계 1위 이마트는 올해 2분기 사상 첫 영업손실(71억원)을 기록했다. 3분기에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8.1%(4억292억원→3억7031억원), 영업이익은 36.4%(1984억원→1261억원) 감소했다는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롯데마트 역시 같은 기간 매출액이 7.2% (1조7070억원→1조5840억원), 영업이익은 61.3%(310억원→120억원) 줄었다. 분기별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 홈플러스의 사정도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홈플러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6조4101억원으로 전년 대비 3.8%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1510억원으로 같은 기간 44.0% 줄었다. 

하지만 국내 대형마트들이 월마트의 부활기를 이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월마트의 성공 모델을 국내에 적용하기 쉽지 않아서다. 대표적인 게 월마트 실적 개선 요인으로 꼽히는 ‘클릭 앤 콜렉트(Click&Collect)’ 서비스다. 클릭 앤 콜렉트는 온라인이나 모바일에서 상품을 주문하고 월마트 주차장에서 제품을 수령하는 서비스다. 소량 제품의 경우, 매장 내 픽업센터에서 받을 수 있다. 

소비자로선 온라인 쇼핑의 저렴한 가격 혜택을 누리고, 번거로운 쇼핑시간과 배송비를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월마트는 2015년 아마존에 대응하기 위해 이 서비스를 처음 선보였다.

현재 미국 내 2100여개 매장(총 매장 수 4600여개ㆍ대신증권 추정치) 매장에서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 연말까지 3100여개 매장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월마트가 보유한 오프라인 매장을 기반으로 온라인을 결합한 ‘옴니채널(omnichannel)’ 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국내 대형마트 업체들도 월마트처럼 옴니채널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2015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차량으로 물건을 픽업하는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형태의 ‘드라이브 앤 픽(Drive & Pick)’ 서비스를 노원구 중계점에서 처음 선보였지만 서비스를 확대하진 못했다.

이후에도 온라인에서 주문하고 매장에서 수령하는 ‘스마트픽(Smart Pick)’를 강화했지만 떨어지는 매출을 묶어두지는 못했다. 

정연승 단국대(경영학) 교수는 “미국과 한국은 지리ㆍ경제ㆍ소비환경 차이가 크다”면서 “면적이 넓고, 주로 차량으로 이동하는 미국 소비자에겐 월마트의 픽업 서비스가 유효하게 작용했지만 국내에선 실효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마트도 옴니채널을 강화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국내 대형마트도 옴니채널을 강화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국내 대형마트가 월마트처럼 부활하기 힘든 이유는 또 있다. 미국과 한국의 시장은 경쟁 강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2007년 식품 배달 서비스 ‘아마존 프레시’를 선보인 아마존은 2017년 오프라인 식료품 업체 홀푸드를 인수했지만 월마트의 식품 경쟁력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아마존 대비 월마트 제품의 선호도가 높은 품목으로 식품(49.0%ㆍ알파와이즈)이 1위로 꼽히고, 월마트 매출액의 절반 이상(56.0%ㆍ2019년 기준)이 식품 판매에서 발생하는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쿠팡ㆍ마켓컬리 턱밑까지 추격

월마트의 가격경쟁력도 빼어나다.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조사 결과(2019년), 미국 식료품 업체 6곳(월마트ㆍ타겟ㆍ크로거ㆍ퍼블릭스ㆍ홀푸드 등) 중 월마트의 제품가격이 가장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채소와 유제품을 포함한 54개 품목의 동일한 제품가격을 합산한 결과다. 

특히 아마존이 운영하는 홀푸드(167.01달러)와 월마트(119.44달러)의 가격 차이는 47.57달러(약 5만6000원)에 달했다. 정연승 교수는 “글로벌 유통 체인인 월마트의 소싱 능력이나 가격 경쟁력은 국내 업체와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국내 대형마트의 현실은 다르다. 월마트와 달리, 식품 분야에서도 이커머스 업체들이 턱밑까지 추격했다.

지난해 하반기 온라인 식품 전문몰 마켓컬리와 쿠팡이 식품 판매 마케팅을 강화한 이후 대형마트의 실적이 가파르게 고꾸라진 건 단적인 예다. “식품은 보고 사야 한다”던 소비자의 니즈를 맞추기 위해 이커머스 업체들이 품질 관리에 공을 들인 게 대형마트엔 역풍이 됐다.

실제로 올해 9월 온라인 쇼핑 거래액(1조5020억원) 중 신선식품 거래액은 3757억원으로 비중은 아직 적지만, 전년 동기(3108억원) 대비 15.0% 증가하는 등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유통시장을 호령하던 대형마트의 황금기는 지났다는 평가가 많다.[사진=뉴시스]
유통시장을 호령하던 대형마트의 황금기는 지났다는 평가가 많다.[사진=뉴시스]

이커머스 업체이 성장세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오픈서베이(2019년 1분기)에 따르면 온라인 신선식품 구입 채널 순위에서 이마트(18.6%)가 1위를 차지했지만, 2위 쿠팡(16.9%), 3위 마켓컬리(14.4%)와 차이가 크지 않았다. 식료품의 경우엔 쿠팡(21.5%)이 이마트(15.4%)를 앞질렀다. 

물론 대형마트의 위기만 있는 건 아니라는 분석도 많다. 주영훈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온라인으로 패권이 옮겨가고 있지만 식품의 경우 온라인 침투율이 10%가 채 되지 않는다”면서 “주요 이커머스 업체들의 적자가 계속 쌓이고 있고, 대형마트들이 온라인을 강화하는 만큼 대형마트의 반등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마트 3사(이마트ㆍ롯데마트ㆍ홈플러스)는 월마트처럼 ‘부활의 축포’를 터트릴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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