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제조업 전망

제조업 위기가 현실로 닥쳤다. 국내 10대 그룹사 중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을 제외하곤 올 3분기 누적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문제는 제조업에 불어닥친 칼바람의 위력이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 경기 둔화, 공급과잉, 내수부진 등 국내 제조업을 위협하는 악재는 여전히 숱하다. 우리나라의 제조업 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2020년 제조업의 업황을 전망해 봤다.  

2020년엔 반도체가 살아날 거란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반도체가 부활한다고 국내 경제까지 살아나는 건 아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0년엔 반도체가 살아날 거란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반도체가 부활한다고 국내 경제까지 살아나는 건 아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말 국내 제조업을 둘러싸고 심상찮은 위기론이 쏟아졌다. 글로벌 경기침체, 미중 무역갈등, 중국 굴기崛起, 반도체시장 침체 등 국내 제조업을 위협하는 악재가 맞물린 까닭이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데다 제조업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30%대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제조업 부활’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꼽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제조업 위기는 갈수록 심화했다. 올해 3분기까지 국내 기업들이 받아든 성적표는 ‘실적 빨간불’을 시사한다. 대기업집단 전문 데이터서비스 인포빅스가 국내 10대 그룹의 상장 계열사 실적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올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1%나 줄었다.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을 제외한 8개 그룹사의 영업이익이 모두 감소한 탓이다.

그중에서도 삼성은 무려 71%가 떨어졌다. 지난해(3분기 누적) 37조9605억원에 달했던 영업이익이 올해 11조7억원으로 쪼그라든 결과다.[※참고 : 10대 그룹사는 순서대로 삼성(12), SK(19), 현대차(11), LG(12), 롯데(9), GS(6), 신세계(7), 현대중공업(5), 한진(5), 한화(4)다. 괄호 안은 상장 계열사 수.]

문제는 제조업 위기가 당장 수그러들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업황이 더 악화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국내 10대 그룹사를 봐도 올 3분기 실적이 더 부진했다. 3분기 영업이익만 따지면 전년 동기 대비 75.6% 줄어든 데다, 현대차그룹을 제외하곤 모두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전체 제조기업들의 체감온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조기업들의 경기 동향에 관한 의견을 지수화한 제조업황 전망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올 3분기 90(기준 100)으로 떨어졌다. 제조업황 전망BSI는 제조업경기 선행지수나 다름없다.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경기가 악화할 거라는 의미고, 100보다 높으면 경기가 호전될 거라는 뜻이다. 제조업 위기설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던 지난해 3분기와 4분기 제조업황 전망BSI가 각각 96ㆍ92였다는 걸 감안하면 2020년 제조업 경기는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보고서에서도 2020년 제조업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10대 제조업의 영업이익 감소율이 적어도 2021년까지는 이어질 거라고 전망했는데, 특히 올해(2.7%)보다 2020년(8.1%)에 감소폭이 더 가파를 것으로 내다봤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대내외 경제이슈의 불확실성이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G2(미국ㆍ중국) 갈등과 중국의 성장세 둔화, 민간소비 부진 등의 거시적인 요인과 산업별 공급과잉 문제,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를 비롯한 미시적 요인에 2020년 제조업경기가 좌우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제조업별로 살펴보면 건설과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의 전망이 유독 어둡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부동산 규제 강화로 민간 건축 수주가 줄고, 내수수요가 저조해 자동차ㆍ석유화학 등 산업들이 침체기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선 국내 10대 그룹 실적에서 유일하게 좋은 성적을 거둔 게 현대차그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려가 크다.

그나마 긍정적인 건 ICT와 조선, 기계산업이 회복단계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다만, 회복속도가 기대만큼 빠르진 않을 거란 분석이 적지 않다. 5세대 이동통신 도입과 OLED 시장 확대 등 긍정적인 이슈들이 있지만 여전히 세계 경기의 회복세가 미약해 기저효과에 따라 소폭 개선되는 데 그칠 거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관건은 반도체다. 반도체 수요가 얼마나 회복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최근 메모리반도체 가격의 하락세가 완만해지고 있다는 건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아직 낙관하기엔 이르지만 말이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가격 하락이 둔화한 건 수요가 회복된 것보다 주요 업체들이 공급량을 줄인 게 더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면서 “문제는 설비투자와 생산량 사이엔 약 2년의 시차가 있어 2017~2018년 집행된 설비투자가 2020년까지 생산량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국내 메모리반도체 수출량은 지난 12월 이후 내리 마이너스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수요가 살아나 업황이 빠르게 회복한다고 해도 중요한 문제가 남는다.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이 함께 살아나지 않으면 반도체 의존도가 또다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일부 산업 의존도가 높으면 국내 제조업의 실제 경기 흐름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2018년에도 전년 대비 수출액이 크게 늘었지만, 이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착시효과였다. 

삼성은 국내 10대 그룹사 중 올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의 감소폭(전년 동기 대비)이 가장 컸다.[사진=연합뉴스]
삼성은 국내 10대 그룹사 중 올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의 감소폭(전년 동기 대비)이 가장 컸다.[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런 착시효과에 현혹되면 제조업에 닥친 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대책을 제때 내놓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면서 “일부 산업의 이슈에 따라 경제 전반이 좌우되는 것도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제조업 위기설이 고개를 들었다. 기우가 아니었다. 올해 국내 제조기업들은 실제로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다. 2020년에도 제조업 위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일부에선 반도체 업황이 살아날 테니 걱정 없다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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