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했다는 안전기준의 수준
중국 기준보다 정말 헐거울까

지난 10월 30일 노ㆍ사ㆍ민ㆍ정 협의체를 통해 소형 타워크레인 규격안이 확정됐다. 국토교통부는 “당초 정부안보다 강화된 규격안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국토부가 정부안보다 강화했다는 규격안은 중국 기준보다도 못해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강화했다는 소형 타워크레인의 안전기준을 취재했다. 

이번에 마련된 소형 타워크레인 규격 제한이 시민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사진=연합뉴스]
이번에 마련된 소형 타워크레인 규격 제한이 시민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사진=연합뉴스]

“소형 타워크레인 사고 예방을 위해 노ㆍ사ㆍ민ㆍ정 협의체를 만들어 수차례 협의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지난 7월 발표한 정부안(타워크레인 안전성강화방안)보다 규격기준을 더욱 강화한 개선안을 마련했다. 법령(건설기계관리법 시행규칙) 개정 등 후속조치를 신속히 추진하겠다.” 지난 10월 30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보도자료 내용의 일부다. 

그동안 소형 타워크레인은 ‘도심 속 시한폭탄’으로 통했다. 건설현장에 세워진 타워크레인이 툭하면 쓰러진 탓이었다. [※참고 : 쓰러지거나 부러져서 문제가 된 장비는 모두 3톤(t) 미만 소형 타워크레인이다. 3t 이상 일반 타워크레인은 설치 혹은 해체 작업 시 안전문제가 간혹 발생했지만, 쓰러지거나 부서진 적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국토부의 주장처럼 ‘안전을 강화할 수 있는 규격 개선안이 만들졌으니’ 이젠 좀 안심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실 소형 타워크레인의 안전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건 국토교통부가 아니라 현장 노동자(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었다. 한국노총 타워크레인조종사노조는 “사망자만 없었지 타워크레인 사고는 계속되고 있고, 따라서 안전은 하나도 담보되지 않고 있다”면서 타워크레인의 안전문제를 거듭 주장했다. 

국토부는 달랐다. 실효성 있는 안전대책을 만들기는커녕 논점을 흐리거나 되레 방해전선을 구축했다. 올 1월 1일 “2017년 11월 ‘정부합동 타워크레인 중대재해 예방대책’을 발표하고, 신속히 대책을 이행ㆍ점검한 덕분에 2018년엔 타워크레인 중대사고(사망자수 1인 이상)가 단 한건도 없었다”는 자화자찬성 자료를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건 대표적 사례다. 

불법 개조된 안전하지 않은 소형 타워크레인들이 시장에 넘쳐나도록 조장한 곳도 국토부다. 이들은 2014년 건설기계관리법 시행령의 개정으로 소형 타워크레인을 건설기계로 등록할 수 있게 되자,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측에 “제원표 작성을 지원하라”면서 이력이 불분명한 타워크레인까지 무더기로 등록되도록 부추겼다[※ 참고 : 더스쿠프 통권 340호 ‘끊이지 않는 타워크레인 사고, 누구의 잘못인가’ 기사]. 

국토부가 타워크레인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대책을 발표한지 2년 만에 소형 타워크레인 규격이 마련됐다.[사진=연합뉴스]
국토부가 타워크레인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대책을 발표한지 2년 만에 소형 타워크레인 규격이 마련됐다.[사진=연합뉴스]

그렇다고 국토부가 안전대책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2017년 소형 타워크레인의 사고가 잇따르면서 안전성 논란이 커지자 국토부는 그해 11월 ‘타워크레인 사고 예방을 위한 정부합동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이때 국토부는 “노후 장비 탓”이라면서 내구연한 규제에 나섰다. 

당시 노조 측은 “타워크레인 연식제한은 금시초문”이라면서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사고가 터지는 소형 타워크레인을 규제하면 그만인데 엉뚱한 규제만 했다”고 반발하자, 국토부는 다른 나라도 연식제한을 하고 있다면서 근거를 제시했다.

그런데 그 근거의 출처는 ‘중국건축업협회 건축안전분회’였다. 선진국 기준을 들이대도 모자랄 판에 중국에서 연식제한을 하고 있으니 우리도 하자는 논리였던 셈이다.[※참고 : 중국조차 그런 연식제한이 의미 없다고 판단, 이미 2016년에 이 기준을 폐기했다. 정부 기관이 최소한의 확인조차 하지 않은 셈이다.]

이번 소형 타워크레인 규격을 만들 때는 어땠을까. 국토부는 지난 7월 25일 타워크레인 안전성 강화방안을 통해 “소형 타워크레인은 3톤(t) 미만의 인양톤수 기준으로만 분류해 (폐기해야 할 노후) 6t 이상의 일반 타워크레인을 (불법적으로 연식을 조작해) 인양가능 하중만 줄여 3t 미만 소형 장비로 등록ㆍ사용하는 등 안전에 우려가 있었다”면서 “이에 따라 국제기준과 해외사례 등을 참고해 기준을 구체화한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3t 미만 소형 타워크레인의 기준을 이렇게 제시(예시)했다. “지브(물건을 드는 붐대) 길이는 T형의 경우 최대 50m 이하, L형의 경우 최대 40m 이하. 모멘트(지브 길이에 따른 인양 가능 중량) 기준은 최대 733kNㆍm(킬로뉴턴미터).” 

복잡한 용어들은 일단 접어두고 다른 기준을 한번 보자. 타워크레인 제조사인 독일 립펠사 기준에 따르면 3t 미만의 짐을 들어 올리는 타워크레인은 ‘지브길이 30m, 모멘트 300~400kNㆍm’ 수준이다. 언뜻 봐도 지브 길이는 10~20m가 더 짧고, 모멘트 수치는 절반가량 낮다. 간단히 생각해도 물건을 들어 올리는 지브길이가 더 길면 타워크레인이 받는 힘은 더 커지기 때문에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노조 측이 국토부의 예시 기준을 두고 “(안전하지 않으니) 소형 타워크레인 기준을 더 낮춰야 한다”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조 측의 주장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이번 노사 합의안으로 도출된 소형 타워크레인 규격은 ‘지브길이 T형 40m 이하ㆍL형 30m 이하, 모멘트 588 kNㆍm 이하(신규 장비 기준이며, 기존 장비 규정은 좀 더 수치가 높음), 높이는 건축물 10층 이하’였다. 다소 개선된 듯하지만 이는 중국의 기준보다 허약한 규격이다. 국토부가 올해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3t 미만 타워크레인의 제원은 지브 길이 25m, 모멘트 300~400 kNㆍm 수준이다.

국토부는 왜 이런 기준을 세운 걸까.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노사민정 1차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이 모멘트 기준을 710kNㆍm으로 제시했다. 이를 근거로 임의로 설정했다.” 설득력이 전혀 없는 주장이다. 

노조 측은 그 이유를 이렇게 유추했다. “제대로 된 기준에 맞추면 시중에서 사용되는 불법개조된 장비나 중국에서 수입한 기준 이하의 장비를 폐기해야 한다. 당연히 장비 임대업자들은 큰 손해를 보고, 애초 ‘3t 미만’으로만 규정해 건설기계 등록을 해준 국토부는 책임론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기준치를 최대한 넓게 잡아 문제가 없도록 하려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소형 타워크레인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국토부의 허술한 안전기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국토부가 2년여 만에 발표한 안전기준 역시 빈틈이 많다. 오죽하면 ‘중국보다 못한 기준’이란 비판이 나온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타워크레인을 둘러싼 공포가 해소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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