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적 부실 예산심사에 필리버스터 카드까지…

2020년 예산안 심사과정 역시 ‘밀실ㆍ깜깜이ㆍ졸속’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국회 스스로 존재 이유를 져버렸다는 비판이 잇따르는 이유다. [사진=연합뉴스]
2020년 예산안 심사과정 역시 ‘밀실ㆍ깜깜이ㆍ졸속’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국회 스스로 존재 이유를 져버렸다는 비판이 잇따르는 이유다. [사진=연합뉴스]

어느새 2019년 달력도 달랑 한장 남았다. 가는 해를 아쉬움 없이 마무리하고, 새해를 기대와 희망 속에 맞을 준비를 할 때다. 그러나 이 땅의 정치현실은 국민을 절망시킨다. 

해마다 11월 말~12월 초, ‘정치 1번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제목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올해도 ‘밀실ㆍ깜깜이ㆍ졸속’ 예산심사…법정 처리시한 넘겨” “민생ㆍ경제 법안 ◯◯◯건 무더기 처리” 등등. 1년 전 기사를 찾아내 연도와 등장인물, 법안 이름 정도만 바꾸면 될 정도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이미 다 알고 있는 만성질환인데도 정작 당사자들은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올해도 변함없이 새해 예산안은 밀실에서 몇몇 실세 의원들이 주무르는 식으로 졸속 심의됐다. 

그나마 2014년 예산안 본회의 자동 상정 규정을 도입한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법정시한(12월 2일) 언저리에 처리하던 것마저 지키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200여건에 이르는 민생 및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도 기약하기 어려워졌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 등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이 11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카드를 꺼내들었다.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가 사실상 마비되며, 10일 정기국회 폐회까지 예산안 및 법안 처리에 차질이 빚어질 판이다.

이에 앞서 국회 예산심사는 올해도 구태를 답습했다. 국정감사에 밀려 충분한 예산심사 기간부터 확보하지 못했다. 정부가 국회에 예산안을 회부한 것이 9월 2일, 개별 상임위원회에 정부 예산안이 상정된 것은 10월 28일이다. 그나마 대다수 상임위에서 10월 말이나 11월 들어서야 예산심사를 시작했다.

상임위 심사기간이 너무 짧은 데다 의원들의 관심은 소관부처 예산심사보다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 쏠렸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더 극심했다. 17개 상임위 가운데 12개 상임위 예비심사에서만 증액이 10조6000억원, 감액은 5000억원에 머물렀다. 

지역구 의원들의 민원성 의심이 짙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증액이 2조원을 넘었다. 정부 예산안 가운데 불요불급한 14조5000억원 감액을 공언했던 야당 의원들도 상임위 예산 증액에 다투어 가세했다. 

상임위의 부실심사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비대화로 연결된다. 50명씩 매해 바꿔주고, 15명 내외로 구성되는 예산안조정소위는 지역별로 안배한다. 예결위에 들어가면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많이 챙길 수 있다. 지역별 대표로 예산안조정소위 멤버가 되면 지역 국회의원들의 민원성 예산을 끼워 넣거나 지키는 일까지 맡는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513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경기가 침체된 탓에 세금징수가 원활하지 않아 60조원 규모 국채를 발행해 충당해야 한다. 예년보다 깐깐하게 심사해야 마땅함에도 예산안조종소위는 감액과 증액을 최종 조율할 ‘소小소위’ 구성을 놓고 충돌했다.

예산안은 법정기구인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가 심사해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에 넘기게 돼있다. 그러나 심사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여야 간사와 기획재정부 관계자 등 소수 인원으로 소소위를 구성해 증액ㆍ감액을 결정했다. 법정기구도 아니고, 회의록도 없어 당사자들이 밝히기 전에는 무엇이 어떻게 논의되고 결정됐는지 알 수 없다. 

의원들의 민원성 예산 요구인 ‘쪽지’가 난무하고 밀실에서 주고받기가 이뤄져 깜깜이 심사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이를 의식했는지 이번에는 여야가 소소위에 교섭단체 3당 간사만 참여하고, 속기록을 남기고, 언론에 매일 논의내용을 브리핑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작 소소위 구성을 놓고 갈등을 빚는 바람에 닷새를 허비했다. 심사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하겠다던 속기록 작성 약속도 번복했다. 회의내용을 적는 속기록 대신 회의 일시와 장소, 시작시간 정도만 기록으로 남기는 식으로 후퇴했다. 

예산안조정소위가 1차 감액 심사를 마치고 정리되지 않은 482건을 소소위에 넘겼다. 11월 28일 오후 소소위가 열렸으니 예결위 활동 시한 30일까지 주어진 시간은 3일이 채 안 된다. 그 사이 482건을 처리한다니 ‘슈퍼 소소위’라고 박수를 보내야 할까! 이번 예산안 심사 역시 ‘밀실ㆍ깜깜이ㆍ졸속’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20대 국회는 마지막 정기국회마저 예산안 부실심사와 파행으로 치달았다. 국민은 존재 의미를 스스로 저버린 여의도 정치에 실망만 하지 말고, 소중한 한 표, 한 표로 심판해야 할 것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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