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 금리비교, 환전 … 혁신금융의 허와 실

‘혁신금융서비스’는 금융위원회가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사업이다.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를 통해 금융산업 발전·일자리 증가·투자유치 등을 꾀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혁신금융서비스에 ‘혁신’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혁신성이 떨어지거나 비슷비슷한 서비스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혁신적이지 않은 금융혁신서비스를 취재했다.

금융위원회가 4월부터 지금까지 68건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했다.[사진=뉴시스]

금융위원회가 ‘혁신금융서비스’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혁신금융서비스가 정부의 국정과제인 ‘8대 혁신성장 선도사업’ 세부추진계획에서 세번째로 거론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분위기는 금융위 전현직 수장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9월 “금융혁신 과제를 마무리하지 못한 점이 특히 안타깝다”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금융혁신의 길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사퇴의 변을 밝혔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취임 후 가진 첫 혁신금융심사위원회에서 “앞으로 일관성을 가지고 더욱 과감하게 금융규제 샌드박스 운영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금융위의 자부심도 높다.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2019년 최우수 적극행정 사례로 선정한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금융위는 ‘금융혁신지원 특별법(2019년 4월 1일 시행)’ 시행 전부터 우선심사대상 선정 등의 제도 도입을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시장의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한 것을 성과로 꼽았다.

사활 건 혁신작업 성과 있나

실질적인 규제 개선을 통해 금융시장에서 새로운 형태의 금융서비스가 나올 수 있도록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얘기다. [※참고: 금융규제 샌드박스는 혁신금융서비스에 금융업법상 인허가 및 영업행위 등의 규제를 적용하는 것을 최대 4년간 유예하는 제도다.]

그렇다면 혁신금융서비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금융위가 4월 17일부터 11월 20일까지 8차례에 걸쳐 선정한 혁신금융서비스는 모두 68건이다. 이중 19건의 서비스가 출시돼 소비자의 판단을 받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내년 3월까지 총 100개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선정하는 게 목표”라며 “올해 한차례 정도 더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금융위가 선정한 서비스가 혁신적이냐는 점이다. 한편에선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고 소비자의 편익증대로 이어진다면 혁신으로 봐야 한다”며 긍정론을 펼친다. 다른 한편에선 “혁신이라 부르기 민망한 서비스가 많다”고 꼬집는다.

조동근 명지대(경제학) 명예교수는 “혁신이라는 말을 남용하고 있는 것 같다”며 “물건으로 치면 과대포장·과대선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란한 선전에 비해 성과는 기대를 밑돌고 있다”며 “혁신이란 말을 앞에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리가 없는 얘기가 아니다. 일례로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은 기존의 서비스를 그대로 가져온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숱하게 받고 있다. 가뜩이나 경영사정이 좋지 않은 중소 알뜰폰 업체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비슷비슷한 서비스가 혁신금융서비스에 중복선정되고 있다는 점도 혁신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대출비교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총 68건의 혁신금융서비스 중 대출검색·금리비교 등 대출관련 서비스는 11개에 달했다.

비바리퍼블리카·핀크·카카오페이·레이니스트 등 금융소비자에게 익숙한 핀테크 기업은 모두 하나씩 내놓았다. 심지어 3차 혁신금융서비스 선정에선 ‘맞춤형 대출검색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똑같은 이름의 3건의 서비스가 혁신금융서비스에 선정되기도 했다.

반복되는 중복서비스 지정

세 서비스의 심사결과와 기대효과를 기록한 금융위의 비평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금융위 관계자는 “혁신금융서비스로 선정하는 건 시장에서 테스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테스트 차원이기 때문에 혁신성·사업 영위 가능성 등의 요건이 갖춰지면 유사한 서비스도 특례를 인정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서비스의 질質이다. 가령, 대출비교 서비스는 제휴 금융회사가 턱없이 적거나 저축은행·보험사 등 제2금융권에 국한돼 있는 경우가 많다. 혁신이라는 이름이 붙이기엔 민망한 서비스란 얘기다. 핀테크 업체와 금융위는 ‘시중은행 등 금융회사와의 제휴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항변하지만 이는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대출비교 서비스를 내놓은 업체의 제휴사가 2곳에 불과하다는 건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서비스를 출시했다는 방증”이라면서 “혁신금융서비스라는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무리하게 출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위가 혁신이란 이름으로 핀테크 기업 등에 새로운 사업모델을 제공한다는 건 높이 살만하다”면서도 “그럼에도 서비스의 혁신성보다는 특례부여가 필요한 사업을 선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 아쉽다”고 꼬집었다.

금융위가 올해 혁신금융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밝힌 예산은 101억원이다. 내년엔 이보다 96% 늘어난 198억을 핀테크 산업 활성화에 사용할 계획이다. 사업에 투입하는 혈세가 늘어난 만큼 혁신서비스를 솎아내는 과정과 결과도 이젠 냉정하게 평가해 봐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학과 교수는 “혁신은 사전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나 제품이 일으킨 변화를 평가하면서 사후事後에 붙이는 수식어”라며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금융서비스를 혁신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는 데 급급한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규제혁신을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특례 허용이라는 한정된 범위에서만 새로운 서비스를 허용하고 있다”며 “기존의 문제점은 방치한 채 혁신만 강조해 혁신이 아닌 관치가 보인다는 비판도 나온다”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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