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모르는 김장 경제학

수십포기의 절인 배추를 쌓아두고 삼삼오오 모여 김장하는 풍경은 이제 옛말이 됐다. 주부 2명 중 1명은 김장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상품김치를 사먹는 가구가 늘었다. 매일 식탁에 오르는 음식인 만큼 유명 브랜드를 선호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소비자는 ‘주위평판(입소문)’을 선호했다. 그런데도 김치시장은 유명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다. 모순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우리가 잘 모르는 김장 속 경제학을 들여다봤다. 

김장을 포기하는 이들이 늘면서 상품김치 시장이 빠르게 크고 있다. [사진=홈플러스 제공]
김장을 포기하는 이들이 늘면서 상품김치 시장이 빠르게 크고 있다. [사진=홈플러스 제공]

겨울이 왔다. 추위에 코가 시릴 때쯤이면 일부 가정에선 절인 배추를 사들이느라 분주하다. 김장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민간기상기업 케이웨더가 발표한 ‘2019년 김장 적정 시기’에 따르면 올해는 서울이 12월 3일로 김장 시기가 가장 빠르다. 가장 늦은 곳은 1월 4일인 부산이다. 하지만 이런 날짜에 무관심한 이들도 숱하다. 김장을 포기하는 가정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일명 김포족(김장을 포기한 이들)이 늘어난 배경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이른바 김장의 경제학이다. 

■주부 2명 중 1명 김포족 = 김포족은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식품업체 대상㈜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부 3115명 중 54.9%는 올해 김장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주부 2명 중 1명은 김장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 대신 상품 김치를 사는 이들이 늘었다. 2016년엔 김포족 중 상품 김치를 구입하는 주부의 비율이 38.0%에 그쳤지만 올해는 20%포인트 높아진 58.0%를 기록했다. 


특히 50대 이상 김포족 중에서 상품 김치를 이용하겠다는 응답자는 76.0%로 전년(61.0%) 대비 15%포인트 상승했다. 젊은층이 아닌 장년층도 사먹는 김치를 선호한다는 얘기다. 김포족은 3~5㎏대(배추 1~2포기)의 중용량을 가장 많이 구입(50.0%)했지만, 집에서 김장을 하는 이들은 20포기 이하(56.0%)가 가장 많았다. 

■노동값 고작 3만원 = 한편에선 김포족을 두고 ‘게으르다’고 꼬집는다. 하지만 주부가 김장 포기를 선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김장의 노동을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대상㈜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부들이 꼽은 김장 포기 이유 1위는 ‘고된 노동과 후유증(75.1%)’이었다. 김장을 하는데 드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전체의 21.0%가 ‘24시간 이상’, 20.0%가 ‘15~18시간’ 걸린다고 답했다.

그렇다고 뼈 빠지게 김장을 해봤자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김치지수(4인 가족 기준 김장 비용)는 26만원, 상품김치(20포기·52㎏)는 28만9500원으로, 차이는 2만9500원에 불과했다. 김장을 한 주부 중 24.8%가 “후유증 탓에 병원에 다녔다”고 답할 정도로 노동 강도가 세다는 점을 감안하면, 3만원은 감수하고도 남을 노동값이다. 


■만만찮은 배춧값 = 배춧값 등 원재료 비용이 오른것도 김포족이 늘어난 이유다. 지난 10월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김장 비용은 30만원대로 전년(27만원)보다 10% 올랐다고 발표했다. 김장 수요가 줄었지만 태풍 피해로 생산량도 줄어든 탓이다. 배추 가격은 2018년 기준 10㎏당 9275원으로, 4년 전(2014년) 4789원에 비해 무려 93.7%나 올랐다. 무(20㎏당)는 74.3%, 건고추(30㎏당)는 64.1% 상승했다.  

■대용량 김치 인기 = 김포족의 증가 덕에 상품김치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배추김치 소매시장 규모는 2014년 1128억원에서 지난해 2037억원으로 80.5% 커졌다. 홈플러스는 김장 시기의 시작인 11월 1~17일 포장 김치의 매출신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10%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구매하는 용량도 커졌다. 2016년에는 1.001~3㎏ 미만 배추김치의 판매 비중이 가장 높았지만(31.6%), 2018년엔 3㎏ 이상 제품이 32.9%로 가장 인기를 끌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2019가공식품 세분시장 보고서에서 “기존에는 1인 가구 중심으로 소용량 판매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김장을 포기하고 김치를 구매하는 가구 덕에 3㎏ 이상 대용량 제품의 소비량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브랜드보다 입소문 = 김치의 경제학 중 가장 흥미로운 건 상품김치를 고르는 기준이다. aT가 네이버블로그에 2018년 7월 1일부터 2019년 7월 31일까지 올라온 게시물 1만5220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구매 고려 요인은 다음과 같았다. 1위 주위평판, 2위 배송, 3위 재료 원산지, 4위 가격…. 브랜드는 12위에 머물렀다.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김치시장의 면면을 엿볼 수 있는 통계다. 식품의약안천처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김치제조업체(HACCP업체)는 958개에 달했다. 

■시장점유율은 브랜드 =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김치 B2C 소매시장에서 점유율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대기업이다. 1위는 ‘종가집’ 브랜드를 가진 대상 FNF로, 점유율은 46.7%를 기록했다. 2위는 ‘비비고’ ‘하선정’ 브랜드를 보유한 CJ제일제당(34.5%)이 차지했다. 김치 소매시장서 이들 두 기업의 점유율만 80%가 넘는다(2018년 기준). 주위 평판이 김치를 고르는 기준 1위였다는 점과는 대조적이다. 


이 결과는 시사점이 많다. 유통망을 확보하지 못한 김치제조업체가 숱하게 많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대상㈜의 조사에 따르면 배추김치 기준 채널별 소매시장 규모는 할인점이 50.7%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체인 슈퍼 17.7%, 편의점 13.9%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김치시장마저 대기업에 유리한 환경이라는 얘기다. 김치의 경제학 중 가장 뼈아픈 부분이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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