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스타트업 6편
조범동 브이엠이코리아 대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라.” 성공한 사업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그걸 실천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술 기반 제조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여기 특별한 배터리팩 제조기술로 자동차용 배터리팩을 생산해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이가 있다. 배터리팩 제조업체 브이엠이코리아의 조범동(37) 대표가 그다. 조 대표가 개발ㆍ생산한 자동차용 배터리팩은 국내는 물론 동토의 왕국이라는 러시아에서도 주문 의뢰가 들어올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유는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조범동 대표를 만나봤다. 월간 스타트업 여섯번째 이야기다. 

조범동 대표는 레드오션으로 통하는 자동차용 배터리팩 시장을 기술력으로 뚫었다.[사진=천막사진관]
조범동 대표는 레드오션으로 통하는 자동차용 배터리팩 시장을 기술력으로 뚫었다.[사진=천막사진관]

조범동 브이엠이코리아(VM e-Korea) 대표를 ‘스타트업 CEO’라고 소개하기엔 연식이 좀 있다. 9년 전인 2010년에 창업을 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그의 이름을 치면 관련 기사도 꽤 많이 나온다. 나름 유명인이다.[※참고 : 최근 조 대표는 이름 때문에 괜한 오해를 받고 있는데, 조국 전 법무장관과는 무관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조 대표의 도전의식은 여전히 ‘스타트업’스럽다. 그의 의지를 활활 불태우게 만드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배터리팩’이다. 초창기 그의 주력사업은 전기자전거 제조(엄밀히는 전기자전거용 고성능 배터리팩과 인버터, 계기판 제조)였다. 이후엔 배터리팩 제조기술을 기반으로 전기스쿠터와 전기삼륜차도 만들었다. 

흥미로운 건 다음 행보다. 배터리팩 개발 노하우를 기반으로 2018년 4월 별도 법인(브이스페이스)을 설립해 자동차용 배터리팩을 제조ㆍ판매하고 있다.[※참고 : 자동차용 배터리팩은 SLI배터리, 12V배터리, 시동배터리 등으로도 불린다. 현재 자동차용 배터리팩은 브이스페이스가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는 브이엠이코리아가 자본금 40% 정도를 출자한 관계사다. 조 대표는 브이스페이스의 설립자이며, 브이스페이스 기술이사직을 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선 의문이 있다. 자동차용 배터리팩 시장이 레드오션이란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이 시장을 오랫동안 쥐락펴락해온 대기업도 있다. 그런데도 조 대표는 자동차용 배터리팩 시장에 호기롭게 뛰어들어 승승장구하고 있다. 비결이 뭘까. 

✚ 자동차용 배터리팩 시장에 진출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엔 전기자전거를 개발ㆍ제조했어요. 이를 발판으로 시장에 진입해보니, 국내에 리튬배터리 셀을 이용한 배터리팩 제조시장이 불모지에 가깝더라고요. 새로운 시장을 뚫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신사업을 계획했죠.”

 

조 대표의 당초 창업아이템은 전기자전거 제조와 판매였다.[사진=브이엠이코리아 제공]
조 대표의 당초 창업아이템은 전기자전거 제조와 판매였다.[사진=브이엠이코리아 제공]

✚ 자동차용 배터리팩이 신사업이었군요. 
“네, 맞아요. 다만, 조건이 있었어요.” 

✚ 뭔가요. 
“제가 갖고 있는 기술과 연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첫째, 대기업이 하지 않는다는 점이 둘째 조건이었죠. 지속가능한 사업이라는 점도 까다롭게 체크했어요. 그러다 2014년 인천과 경북의 대학 2곳과 연계해 자동차용 배터리팩을 개발하는 산학연 연구개발 과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 연구에 참여하면서 시작하게 됐죠.”

그로부터 5년 후인 2018년 조 대표는 자동차용 배터리팩 개발을 완료했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 ‘대기업들이 하지 않는 분야’란 조건을 만들어놓고 자동차용 배터리팩를 만들겠다고 나선 건 이해하기 힘듭니다. 자동차용 배터리팩을 만드는 대기업은 많지 않나요?
“물론 그렇습니다. ‘대기업이 하지 않고 있는 분야’라는 의미는 제가 생각한 방식의 배터리팩을 생산하지 않고 있다는 거예요. 그들은 모두 납배터리팩을 생산하지만 우리는 리튬인산철배터리팩을 생산하거든요.” 

여기서 말하는 ‘대기업’이란 로케트나 아틀라스 같은 브랜드로 더 잘 알려진 자동차용 배터리팩 제조사를 의미한다. 삼성SDI나 LG화학 등이 만드는 건 배터리팩이 아니라 배터리팩에 들어가는 배터리 셀이다. 이 배터리 셀의 기반은 리튬이온이다. 

✚ 어떤 차이가 있나요.
“납배터리팩의 기반은 화학기술이에요. 납을 녹이고, 양극과 음극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 등이 관건이죠. 반면 리튬은 영역 자체가 다릅니다.” 

 

✚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리튬배터리팩의 관건은 각각의 배터리 셀을 어떻게 배치하고, 과전압이나 저전압이 생길 때 셀들을 어떤 방식으로 제어하느냐 등이죠. 배터리팩에 별도의 하드웨어(전자회로)와 소프트웨어(프로그램)가 더해지는데, 말하자면 중앙처리장치(CPU)가 들어간 일종의 컴퓨터인 셈입니다. 납배터리팩과 리튬배터리팩은 이런 점에서 완전히 다릅니다.” 

시장의 룰 바꾸는 기술력

✚ 그렇다면 기존 국내 자동차용 배터리팩 제조사들은 납배터리팩만 사용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자동차용 배터리팩 99.9%가 납배터리팩입니다. 그래서 리튬배터리 셀을 이용해 자동차용 배터리팩을 만들어보기로 한 겁니다.”

✚ 리튬배터리 셀과 그 셀을 이용한 배터리 시장의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겠어요?
“현재 리튬배터리 셀을 만드는 곳(삼성SDI나 LG화학 등)은 있지만, 이 셀을 이용해 배터리팩을 제조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전기자동차(대형)나 노트북(소형)에 들어가는 배터리팩을 OEM(주문자상표부착제조방식)으로 만드는 곳들도 있지만, 국내에서 사용하는 배터리팩의 99%는 유럽(고가)이나 중국(저가)에 의뢰해서 제조합니다. 우리처럼 자체적으로 리튬배터리팩을 개발해 양산하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 거의 없다는 걸 보니, 경쟁업체가 있긴 있는 모양이네요.
“당연하죠. 하지만 우리보다 영세합니다. 국내 전기스쿠터급 배터리팩 제조시장에서 저희의 입지는 독보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실제로 조 대표가 2018년 설립한 배터리 제조업체 브이스페이스의 실적은 만만치 않다.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국내 전기이륜차 제조사에 파워모듈(배터리팩+인버터+계기판 세트) 독점 공급 ▲이탈리아 전기이륜차 제조사 파워모듈 납품(이상 2014년) ▲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전기추진 비행체 연구개발용 배터리팩 납품(2019년).

브이스페이스의 자동차용 배터리팩 브랜드는 ‘브이파워’인데, 조 대표는 올해 ‘브이파워’ 예상 매출액을 약 25억원(브이스페이스 전체 매출은 약 45억원 예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 말하자면 독보적인 중형급 리튬배터리팩 제조기술로 자동차용 배터리팩 시장을 겨냥했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브이스페이스에서 생산된 자동차용 배터리팩.[사진=브이엠이코리아 제공]
브이스페이스에서 생산된 자동차용 배터리팩.[사진=브이엠이코리아 제공]

✚ ‘브이파워’가 시장에서 꽤 인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요즘 자동차 튜닝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어요. 중요한 건 우리 제품의 성능이 기존 납배터리팩보다 훨씬 좋다는 점이에요. 충방전 효율은 30~40% 더 좋고, 수명은 4배가량 길죠. 무게도 납배터리팩이 훨씬 무거워요. 모두 실험을 통한 데이터로 증명된 결과죠.”

✚ 가격은 어떤가요. 
“1개당 제품 단가는 조금 더 비싸요. 하지만 가성비는 우리가 월등하다고 봐요.” 

✚ 무슨 뜻인가요.
“이 제품 하나로 납배터리팩을 4번 교체할 만큼 쓴다고 가정하면 가격은 4분의 1로 뚝 떨어지죠. 이게 저희 ‘브이파워’의 경쟁력입니다.”

✚ 자동차용 배터리팩 교체 시장을 노리는 건가요.
“아직 자동차 제조사엔 납품하지 않고 있으니 그런 셈이죠. 그런데 교체 시장이 생각보다 꽤 큽니다. 도로를 다니는 모든 차가 사실상 교체 대상이기 때문이죠.”

✚ 무슨 말인가요.
“현재 전기차에 달려 있는 자동차용 배터리팩도 ‘납배터리팩’입니다. 차는 저만큼 앞서가고 있는데, 자동차용 배터리팩 시장은 멈춰 있다는 방증이죠. 전기차 구매자들은 주로 얼리어답터라 볼 수 있는데, 이들은 기존 자동차용 배터리팩의 문제점을 잘 알아요. 그래서 차를 사자마자 자동차용 배터리팩부터 바꾸는 이들이 아주 많죠. 데이터와 경험치를 바탕으로 입소문이 나다보면 소비자들이 알 거라 생각해요.”

자동차용 배터리팩의 세대교체는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조 대표에 따르면 차량이 잠시 멈춰 대기할 때 엔진이 자동으로 꺼지고, 브레이크를 떼거나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다시 시동이 걸리는 ISG(Idle Stop & Go) 시스템을 적용하는 차들이 늘고 있어서다. 공회전을 줄여 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기능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에서도 정확하게 구현되려면 자동차용 배터리팩이 제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존 납배터리 성능으로는 힘들다는 게 조 대표의 주장이다. 

 

조 대표가 개발한 배터리팩 기술을 적용해 만든 전기삼륜차.[사진=브이엠이코리아 제공]
조 대표가 개발한 배터리팩 기술을 적용해 만든 전기삼륜차.[사진=브이엠이코리아 제공]

자동차 블랙박스가 일반화되고 있는 상황도 호재다. 주정차 시에도 블랙박스가 작동하려면 거의 대부분 보조배터리가 필요한데, 브이파워는 별도의 보조배터리가 필요 없을 만큼 충ㆍ방전 효율이 좋아서다. 

✚ 브이파워는 리튬배터리팩이긴 하지만, 요즘 대세인 리튬이온배터리 셀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셀을 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리튬이온 셀이 아니라 리튬인산철 셀을 사용해요.”

✚ 리튬인산철 셀을 고집하는 이유가 뭔가요.
“리튬이온 셀로는 해결되지 않는 기술적인 문제들이 좀 있었어요. 리튬인산철 셀이 리튬이온 셀보다 좀 더 안정적이기도 하구요.”

✚ 다른 이유는 없나요.
“가격적인 면도 고려했어요. 2014년 당시만 해도 삼성SDI가 리튬인산철 셀을 생산했는데, 너무 비싸서 시장가격을 맞출 수가 없었죠. 그러다 또다른 셀 제조사인 벡셀에 별도의 리튬인산철 셀 제조를 의뢰했는데, 협의가 잘 됐어요. 현재 벡셀로부터 셀을 공급받아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 시장이 커지면 기존의 납배터리팩 제조사들도 진입할 가능성이 있지 않나요.
“앞서 말했듯 방식이 달라요. 만약 사업에 뛰어들려 한다면 리튬배터리팩 분야 인력을 끌어와야 하는데, 리튬배터리팩 제조시장은 불모지나 다름없으니 쉽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리튬배터리팩 개발부터 시작해야 하니 더욱 그렇죠. 나중에 시작한다고 해도 저희는 저만큼 앞서 있을 겁니다.”

✚ 바꿔 말하면 경쟁자가 유럽이나 중국이라는 얘기인가요.
“그렇습니다. 중국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업체나 독일이나 미국의 선두 업체와 경쟁해야 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 그만한 기술력을 개발해 확보하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요.
“사실 기술은 이미 있었는데 양산화 과정이 힘들었어요.”

✚ 무슨 이유에서인가요.
“자동차 제조사별로 혹은 차량 모델별로 자동차용 배터리팩 규격이 다 제각각이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적은 예산으로 다양한 규격들을 다 커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약간의 규격화가 필요했어요. 그러려면 일일이 차량 모델별로 배터리를 떼어내보기도 하고, 시운전 해보고, 문제점도 살펴봐야 했죠.” 

 

 ✚ 2014년에 시작된 연구개발이 지난해에야 마무리된 것도 그 때문이었겠군요.
“그렇습니다. 때로는 배터리가 바뀔 때 연결된 차량 소프트웨어까지 건드려야 해서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죠. 규격이 정해져 있었다면 훨씬 빨랐을지 모릅니다.”

국내외에서 러브콜 봇물

✚ 고생의 보람이 있나요.
“애써서 만든 제품이 잘 팔리면 그게 보람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 더 다양한 시장을 발굴할 계획입니다.”

브이스페이스는 최근 숱하게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국내에선 철도차량에 들어가는 배터리팩 제조 의뢰를 받아 협의 중이다. 언급했듯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는 전기추진 비행체 연구개발(R&D)에 쓰이는 배터리팩을 납품하기도 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기술혁신형 R&D 사업으로 추진하는 상용차 SLI배터리 개발에도 참여해 마지막 검증단계를 밟고 있다. 조 대표에 따르면 올해 검증작업을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양산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상용차 가운데 레커차나 크레인차를 위한 별도 배터리팩도 개발 중이다. 

해외에서도 좋은 소식이 날아왔다. 낮은 온도에서도 작동이 잘 되는 리튬인산철배터리팩이라는 점을 확인한 러시아에서 지난 10월 제작을 문의해 샘플을 만들고 있다. 그가 만든 자동차용 배터리팩이 ‘동토凍土’를 녹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글=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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