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50년만의 최악 성장률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는 3일 ‘세계가 바라본 한국의 소득주도성장’을 주제로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실패한 게 아니냐는 지적과 상반된 행보다. [사진=뉴시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는 3일 ‘세계가 바라본 한국의 소득주도성장’을 주제로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실패한 게 아니냐는 지적과 상반된 행보다. [사진=뉴시스]

한국의 겨울과 연말은 파엎고 새로 까는 보도블록 교체 및 도로포장 공사와 함께 온다. 미처 쓰지 못한 예산을 한해가 저물기 전에 서둘러 집행하는 연례행사다. 올해는 여기에 공원 산책로나 대로변 보행로의 낙엽을 치우거나 담배꽁초를 줍는 노인 공공 알바들이 자주 눈에 띄는 점이 추가됐다.

이렇게 미집행 예산을 연내 소진하도록 정부가 독려하는 데도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은 잘해야 2.0%에 턱걸이할 전망이다. 상당수 외국계 투자은행이나 예측기관들은 1%대에 그칠 것으로 본다.

이런 시각은 증시에 그대로 투영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 11월 7일부터 12월 5일까지 거의 한달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국 주식을 내다팔았다. ‘셀 코리아(Sell Korea)’ 행진이 이어지며 코스피지수는 4% 하락했다. 그 여파로 5일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1384조4020억원)은 미국 기업 애플(4일 종가 환율 기준 1388조9472억원) 한곳의 시가총액을 밑돌았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ㆍ채권을 팔아치우는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가 투자할 만한 매력을 잃고 지지부진하다는 방증이다(5일까지 21거래일 연속 총 5조706억원어치를 매각한 외국인들이 6일에는 427억원 순매수로 전환했다). 올해 2% 성장이 가물가물한 데다 내년에도 기껏해야 2%대 초반으로 전망된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가 “50여년 사이 최악”이라고 보도했을 정도다. 실제로 성장률이 2년 연속 2.5%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1954년 이후 처음이다.

한국 경제가 기진맥진한 데는 미중 무역분쟁과 반도체 가격 약세 등 외생변수도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고 외부요인 탓만 할 수는 없다. 정책 실패를 간과할 수 없다. 소득주도 성장을 외치면서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린 결과 최저임금을 받는 대표적 근로계층인 편의점 풀타임 일자리가 지난해에만 4만2400개 사라졌다(한국편의점산업협회 발표). 영세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이 큰 타격을 받았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월간 수출이 12개월 연속 감소했다. 기업들의 설비투자도 1년째 마이너스 행진이다. 그 결과, 제조업 등 괜찮은 일자리가 감소했다. 특히 경제의 허리인 3040세대 취업자는 2017년 10월 이후 25개월째 감소했다. 

가계소득과 소비가 부진한 가운데 물가도 거의 오르지 않는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1개월째 0%대 행진이다. 국민경제의 활력을 보여주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GDP물가=명목GDP를 실질GDP로 나눠 산출)가 1961년 통계 작성 아래 처음으로 지난해 4분기부터 4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국제신용평가사와 경제예측기관 여기저기서 불길한 디플레이션 우려를 경고하고 나섰다. 한국 경제가 1990년 중반 이후 일본처럼 장기침체에 빠져들 것이라는 ‘J(일본화ㆍJapanification)의 공포’를 거론하는 곳까지 나타났다. 

상황이 이럼에도 청와대와 경제팀 등 정부의 인식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는 3일 ‘세계가 바라본 한국의 소득주도성장’을 주제로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이튿날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주재한 혁신성장 전략회의 안건 자료도 자화자찬이 많았다.

팍팍한 민생경제 현실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되지도 않는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월 국민과 대화에서 “집값은 안정돼 있으며 부동산정책은 자신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민의 57.0%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했고, 55.0%는 앞으로도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한국갤럽 조사).   

지금부터라도 청와대와 정부는 우리 경제가 더 이상 나빠져 자생력을 잃지 않도록 다잡아야 마땅하다. 진영 논리를 벗어나 4차 산업혁명 물결에 순항할 수 있도록 낡은 규제를 혁파하고, 노동시장도 유연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경제팀을 포함한 개각을 통해 실패한 정책을 수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내년 총선에 나갈 장관들을 교체하는 선거용 땜질에 그쳐선 곤란하다.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 집권 후반기 성과를 낼 수 있는 쇄신 내각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캠코더(캠프ㆍ코드ㆍ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로는 안 된다. 결이 조금 달라도 정책 수행 경험과 리더십을 갖춘 인물을 부총리 등 주요 경제부처에 기용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에게 경제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하지 않는 청와대 참모진의 교체도 필요하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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