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시절」
요동치는 세상 속 인간의 욕망에 관하여

저자는 한 남자의 변화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파멸, 타협과 공존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저자는 한 남자의 변화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파멸, 타협과 공존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문학의 위기가 대두되기 시작한 건 오래전부터다. 각종 볼거리에 밀려나 설자리를 잃던 와중에 등장한 스마트폰은 문화계의 패러다임마저 뒤바꿔버렸다. 가뜩이나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그나마 남아 있던 공간마저 스마트폰 화면이 차지해버렸으니 문학, 특히 소설이 파고들 틈새란 비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소설의 위기’에 외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문학계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글의 소재를 ‘현장’이 아닌 ‘카페’에 앉아 머리로만 찾으려 했다는 비판이다. 현대 소설에선 서사가 갈수록 퇴각하고 인간의 본질과 문체에 대한 탐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물론 내면과 문체에 대한 천착은 소설을 지탱해 온 중요한 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현장과 동떨어진 미학성만 추구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현실과 서사를 멀리하는 소설은 대중에게 환영받기 어렵고 결국 이러한 현상은 문학을 외면하는 원인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편 「일렁이는 시절」은 기존 소설과는 여러 측면에서 차별화된다. 집요한 묘사나 지루한 상황설명을 최소화하는 대신 간결한 문체와 다양한 서사를 담고 있다. 예술성과 미학성을 애써 붙잡으려 하기보다 빠른 호흡으로 재미와 가독성을 추구한다. 최근 출판부를 신설하며 사업을 확장한 ‘더스쿠프(The SCOOP)’가 내놓은 첫번째 책이기도 하다. 저자 유두진은 더스쿠프 창간 멤버 출신이다. 제7회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에서 대상을 수상한 뒤 본격적으로 창작 작업에 뛰어들었다. 

미군 부대 주변에서 태어나 현대사의 굴곡을 겪으며 성장한 한 남자가 있다. 이 책은 한 마을의 흥망성쇠와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포착한다. 저자는 그의 발자취를 찬찬히 따라가며 인간의 욕망과 파멸, 타협과 공존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전반적으론 성장소설이지만 그 속엔 마을의 내력과 그에 얽힌 여러 군상의 서사가 짙게 깔려 있다.

수도권의 노른자위임에도 미군 주둔으로 인해 수십년간 개발계획에서 소외됐던 곳, 미군 부대 이전계획이 흘러나오면서 투기 지역으로서 일대 전환점을 맞은 곳, 그 욕망의 땅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조용했던 마을에 미군 부대가 들어서면서 모든 게 변한다. 세월이 흘러 부대의 이전 소식이 전해지고, 마을엔 가공할 만한 광기狂氣가 몰아친다. 

소설 속 배경 마을인 ‘팽나무골’은 ‘용산’을 모티브로 했다. 그래서인지 작품 중ㆍ후반부엔 부동산 재개발과 지분 쪼개기에 관한 내용이 박진감 넘치게 그려진다. 부동산 재개발 전개 과정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소설 안에 쉽고 적절하게 녹여냈다.

소설 속에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건 상황에 따라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요동치는 세상, 그것 이상으로 변화무쌍한 인간의 마음을 이야기하며 저자는 불필요한 선악적 잣대를 섣불리 들이대지 않는다. 무리하게 작가의 사상을 주입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릴 뿐이다. 

세 가지 스토리

「좋은 디자인은 내일을 바꾼다」
김지원 지음|샘터사 펴냄


‘디자인’이라는 말은 특별하고 화려해 보인다.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의 것만 같다. 그런데 이 책은 우리 곁의 소소하고, 지나치기 쉬운 일상적인 것들이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삶을 보다 편안하고, 유익하게 해주기 위한 존재’가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여러 디자인 사례와 디자인 그루의 철학적 사고를 엿보며 디자인의 발전 과정이 우리 일상에 어떤 의미를 줬는지 살펴본다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을 당신이 알려주었다」
정우성 지음|한겨레출판 펴냄


「GQ」 「에스콰이어」의 에디터로 활동했던 정우성의 첫 번째 에세이다. 이 책은 사랑하는 순간들을 다채롭게 다룬다. 만나고 헤어지고 행복했다가 다시 아파하는 연속에 지친 이들에게 설렘과 위로를 건넨다. 저자의 개인적인 일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사소한 순간 속에서 더 많이 기쁠 수 있는 방법, 사랑하기 때문에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 등을 이야기한다.


「만화로 배우는 와인의 역사」
브루아 시마 지음|한빛비즈 펴냄


와인의 장대한 서사시를 소개한다. 이 책은 와인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그리스 신화에는 포도주에 대한 암시가 가득하다. 성서에서 노아가 대홍수가 끝나자 심은 것도 포도나무다. 로마제국이 멸망하자 가톨릭교회와 수도원이 와인의 명맥을 이었다. 중세에 들어서야 오늘날 와인과 비슷해졌다. 와인 전문가이자 경제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와인 역사를 유쾌하게 설명한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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