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1월 누적 4968억5948만 달러어치 수출
2015~16년 제외하면 2011년 이후 첫 5000억 달러 하회

수출 실적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린다. 얼마나 심각하기에 이처럼 소란스러운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1년간의 수출 기록을 들여다봤다. 여기서 추출된 숫자는 장기적인 수출 부진을 경고하고 있었다. 한국 수출 위기, 생각보다 심각하다. 

지난해 12월 이후 수출 증가율이 12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이후 수출 증가율이 12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사진=연합뉴스]

또다시 줄었다.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11월 수출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14.3% 감소했다. 지난해 12월 수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이후 12개월 연속 감소세다. 지난 6월 이후론 감소율이 내리 두자릿수다. 

심상치 않은 문제다. 수출 부진이 장기간 이어지는 건 한국 경제에서 드문 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 경기를 꽁꽁 얼렸던 2008년 이후 마이너스 수출 증가율이 1년 이상 지속된 건 단 두차례뿐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1월~2009년 10월(12개월), 저유가 쇼크가 발생했던 2015년 1월~2016년 7월(19개월)이다.

기저효과로 단언하기도 힘들다. 1~11월 누적 기준으로 올해 수출 실적은 4968억5948만 달러(약 591조원). 반면, 2015~2016년을 제외하면 수출이 본격 회복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로 실적이 5000억 달러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물론 세계 경기가 주춤하면서 전체 무역 규모가 축소된 건 사실이다.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인 것도 맞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만 수출 감소폭이 크다는 점은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산자부에 따르면 수출 상위 10개국 가운데 지난 9월(세계무역기구 11월 30일 최신 자료) 기준 수출 감소율이 두자릿수를 기록한 건 우리나라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저유가 쇼크가 세계 경기를 강타한 것과 달리 이번엔 우리나라만 직격타를 맞았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수출 실적이 부진한 이유를 크게 두가지로 분석한다. 첫째는 미중 무역분쟁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중국과 미국은 수출 비중 1ㆍ2위 국가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중對中 수출 비중은 26.8%, 대미對美 수출 비중은 12.0%였다. 

무역분쟁으로 양국간 교역량이 줄면 중국과 미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대미 수출 증가율은 지난 6월, 대중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11월 이후 내리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둘째 이유는 반도체 시장 악화다. 호황을 누리던 반도체 업황이 지난해 고꾸라지면서 반도체 의존도(2018년 기준 20.9%)가 높은 우리나라 수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거다. 우리나라 20대 주요 수출 품목 중 반도체의 수출 감소율(1~11월 -26.5%)이 가장 나빴다는 점을 감안하면 틀린 지적이 아니다. 

미국 대선 전까진 무역시장 위축

물론 우려의 목소리만 있는 건 아니다. 같은 이유에서 미래를 낙관하는 이들도 있다. 수출 부진의 원인만 해결되면 실적도 회복될 거란 기대에서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최근 해빙 기류를 타고 있고, 반도체 수요도 조만간 회복될 가능성이 높아 2020년 상반기엔 수출 실적이 반등할 거란 주장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는 “지나친 낙관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소한 2020년 미국 대선까지는 무역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면서 개인적인 소견을 밝혔다. “2020년 상반기에 수출이 회복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별다른 위기 신호가 오기 전까지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현재의 대중 강경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변화할 공산이 큰데, 재선에 성공하면 현 상황이 장기화할 우려가 상당히 크다.” 

 

반도체가 회복된다고 해도 우려가 말끔히 사라지는 게 아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국내 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어서다. 반도체에 쏠린 비중을 낮춰 수출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건데, 문제는 수출을 다각화할 요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종철 연구위원은 “과거 수출 견인차 역할을 했던 산업들은 이미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축소된 데다, 후발주자들이 치고 올라와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그렇다고 기존 산업들의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해답은 4차 산업 등 신규 산업 육성에 있는데, 우리나라는 출발이 늦은 데다 성장 속도도 느리다”면서 “이를 극복하려면 정부는 신산업을 육성하는 데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출이 무너지면 우리나라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어서다. 더 심각한 건 수출이 무너진 이후 버틸 힘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정인교 인하대(국제통상학) 교수는 “우리 경제에 당면한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지금이 더 안 좋다”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엔 재정적인 여력이 있어 곧 경제가 안정될 거란 기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재정 여력도 열악하다”고 우려했다. 정 교수의 지적처럼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은 썩 좋지 않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만 해도 28.0%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38.2%로 부쩍 높아졌다. 오는 2020년엔 40%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12개월간 이어진 수출 부진이 앞으로 더 얼마나 이어질지 미지수다. 정책당국자들은 올 하반기 좋아질 거라고 안심시켰다가, 수출 부진이 길어지자 12월엔 회복될 거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곤 다시 오는 2020년 상반기엔 수출이 살아날 거라고 말한다. 이번엔 믿어도 될까. 아니면 지나친 낙관론일까. 우리나라 수출 부진이 심상치 않다.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때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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